나에게도 독자가 있다면

모든 경험이 내게 가져다주는 것

by 쪼이



B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년 반 전 가을이었다. 그때의 나는 다녀온 지 반년이 지난 꿈같은 발리의 추억을 브런치에 글로 남기고 있었다. 그때, 내 글에 B가 댓글을 남겼다. 내가 다녀온 그곳이 궁금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바다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

재작년에 발리를 가게 된 것은 어떤 거대한 흐름이었던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마 바닷가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던 그 어느 순간, 웅장한 자연 앞에서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였던 것 같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생경한 감각을 느끼며, 나는 ‘아, 이렇게 될 거였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회사 다니면서 한없이 내가 작아졌던 것도,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는 생각에 휩싸였던 것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과를 찾아갔던 것도, 결국 내 삶을 '일시중지'하게 된 것도 다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일어난 일들인 것 같았다.

발리에서 나는 한 달을 넘게 머물렀다. 그중 대부분의 시간은 발리 옆 길리라는 작은 섬에서 보냈다. 바깥세상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그곳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새로운 면들을 알게 되었다. 는 생각보다 물을 아주 좋아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바닷속으로 깊이 잠수하는 법을 익히는데 몰두했다. 내가 그토록 목표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인지 미처 몰랐었다. 발리여행 카페에도 이런저런 글들을 올렸다. 여러 정보를 공유하고 질문에 답하며 물건을 주고받고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감각이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사람이 싫다고 떠난 곳이면서, 결국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경험과 깨달음을 열심히 블로그에 기록했다. 혼자 지내는 동안의 내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바로 언젠가의 나를 위해 쓴 기록들이었다.

다시 그 시간들을 돌아본 것은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 복직한 지도 몇 달 지난 때였다.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마주한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꿈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들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 일지를 가끔 더듬었다. 더 이상 그때가 잊히기 전에 블로그의 날것의 기록들을 정제해서 브런치에 올리기로 했다. 그새 희미해진 기억을 뒤로 하고 독자가 되어서 읽는 나의 경험들은, 재밌었다. 비단 여행의 기록뿐만이 아니었다. 힘들던 시기의 글들마저 그저 재밌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난 감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마치 어느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보는 듯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되뇌던 말이 어느새 현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 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될 거였나 보다, 하는.

감사하게도, 내 이야기의 독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간혹 잘 읽었다고 댓글을 남겨주는 분들이 계셨다. 그러면 나는 그분들이 쓰신 글도 보러 가곤 했다. 그중에는 놀랍도록 생각이나 감정의 결이 내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글들이 있었다. 어느 날 내 글에 달린 ‘글이 참 좋습니다’라는 댓글에 그 사람이 쓴 글들을 찾아 읽었고, 그렇게 B를 알게 되었다. 글을 통해 그려보는 B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소설가를 꿈꾸며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물속의 고요함을 사랑하는, 바로 나와 너무도 닮은 사람이었다. 이후로 한동안 우리는 서로의 글에 공감과 애정이 담긴 댓글을 주고받았다.

그 기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도무지 끈기라고는 없는 나는 한창 열심히 쓰던 브런치를 한동안 안 들어갔다. 새해가 되면서 부서가 바뀌고 연애도 시작해서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따금 브런치에서 만난 글들이 문득 떠올랐다. 글을 보여준다는 것은 영혼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외양은 모르더라도, 단숨에 가장 깊은 곳을 서로 나눈 것만 같은 자만의 유대감을 가지고 이따금씩 생각했다. 그분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계속 글을 쓰고 계실까. 그렇지만 현실을 살기에 바쁜 나는 이내 다시 잊곤 했다.

한 해가 거의 다 가고서야 브런치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은 글로 쓰고 싶은 주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10월에 예정되었던 시카고 마라톤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을 연재해 볼 생각이었다. 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댓글이 달렸다. 바로 B의 댓글이었다. B는 마찬가지로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고, 오랜만에 접속했는데 내 글이 올라와있었다며 반가워했다. 그 댓글에서 B는 말했다. 나의 블로그 글을 발견했다고. 헉! 발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우연히 읽은 한 블로그의 글에서 익숙한 등장인물들과 사연을 만났더란다. 긴가민가하다가 읽다 보니 확신하고 반가워서 댓글을 남겼다고 했다. 그 반가운 댓글을 보니까 참… 마음이 간질거렸다. 내가 이따금씩 B를 생각했던 것처럼, B의 마음속에도 내가 있었으려나 싶은 간질거림이었다. 고맙고 반갑고 머쓱하고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궁금했다. 내가 쓴 글들이 B에게 어떻게 느껴졌을지, B가 내가 쓴 글을 통해 그리는 나라는 사람이 좀 더 선명해졌을지, 그래서 우리가 주고받는 글에 담긴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내가 마라톤을 준비하는 동안 B도 새로운 연재를 시작했다. 나의 마라톤 훈련 일지가 부상 때문에 중단된 뒤에도 B의 연재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바빠서 읽지 못하다가 시카고를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새벽에 그 글들을 몰아 읽었다. 첫 번째 글을 읽는 순간, 주변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B는 그 글에서 본인의 공황장애를 고백하고 있었다. 사실 그간 본인의 호흡은 안녕하지 못했다고. 나는 B가 밝고 유쾌하고 살짝 허당 같아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글을 통해 어렴풋하게 그려보는 그는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글들 이면에는 또 얼마나 깊은 것들이 있을지 아득해졌다. 숨막힘을 고백한 문장들이 마음 한켠을 둥둥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그 여운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 오랜 시간 동안 진득이 남았다.

다행인 것은 그 이후로 이어지는 글들이 여전히 유쾌하고 단단했다는 것이다. 꾹꾹 눌러 적은 나의 염려 섞인 댓글에 B는 이제는 다 지나간, 괜찮아진 일들이라고 답글을 달았다. 그마저도 뭔가 익숙한 대답이라 왠지 눈물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다친 다리의 안부를 묻는 B에게, 곧 글로 소식 전하겠다고 답했다.

시카고에서 보낸 시간들은 찬란하고 인상 깊었지만 왠지 모르게 후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간 너무 부상 때문에 징징거리기만 한 탓일까. 모든 글은 쓰여야 할 때가 있다는데, 아직 그때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완주하는 과정을 그려보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연재는 한 달 넘게 기약 없이 뚝 끊긴 채였다. 혹시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마라톤을 뛰다가, 혹은 시카고로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우스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애초에 시카고 마라톤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시카고의 기억이 더욱 흐려질 때쯤이었다. 갑자기 브런치에서 누군가 내 글을 언급했다는 알림이 떴다. 뭐지? 처음 보는 종류의 알림이어서 바로 들어가 보니, B가 쓴 글이 올라와있었다. 바로 지금 길리에 도착했다는 글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를 이곳에 오게 만든 것은 바로 1년 전 내가 쓴 글이라며 내 글을 태그해두었다. 대체 이곳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글을 썼는지 너무 궁금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B가 태그한 그 글에서 내 일부를 길리에 두고 온 것 같다고, 떠나기가 아쉬워서 펑펑 울었다고 적었었다. 내가 두고 온 그 일부를 그녀가 만났을지 궁금했다. 내게 너무 특별했던 그곳에서 그녀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길 바란다고 댓글을 달았으나 답은 없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브런치를 통해 누군가 메일을 보내왔다. 뭐지? 바로 들어가 보니, B가 보낸 메일이 와있었다. 그녀는 지금 길리에서 발리 본섬으로 돌아왔으며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왜 그곳을 떠나기 전에 울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시카고 마라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 메일이 뭉클해서 몇 번을 읽었다. 나에게도 독자가 있었다. 내 연재를 궁금해하고 내 안부를 물어봐주는. 아니, 글이 아니라 그 글을 쓰는 사람을 궁금해하고 기다리는 존재라면 독자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 해야 되려나.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 글을 써서 올렸다. 길리에 있는 모든 순간의 자신이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고. 그 글을 읽으며 나는 1년 반 전 그곳에 있던 나를 떠올렸다. 단단히 지치고 날선 마음을 부여잡고 나 혼자 공감할 순간들을 기록하던 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고 나의 모든 면이 거슬리지 않았다. 그녀의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순간들이 ‘사랑스럽다’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때 별을 보면서 이렇게 될 것이었구나, 생각했을 때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시간이 흘러서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에서 비슷한 위로를 받은 그녀와 글을 통해 만날 수 있을 줄은. 또 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려고 나한테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감정들이 있었나 보다 싶은. 이제야 비로소 뭔가가 마무리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부푼 마음은 현실로 돌아오면서 바람이 빠진 지 오래지만, 그때의 경험 이후로 무언가 내가 얻은 게 있다면 모든 경험이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이다. B의 글에 댓글로 그녀의 글들이 내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전하며, 어쩌면 B의 힘든 시간들은 다 이렇게 글로써 뭔가를 이루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B는 공황장애가 아니었다면 길리를 혼자 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오히려 좋아’.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 시간들이 낳은 그녀의 글을 사랑한다고.


종종 글을 왜 쓰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어요." 나는 타인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글을 사랑한다. 내가 쓴 글의 영향을 받아 무언가 좀 더 달라졌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녀의 그 말 덕분에 내 글쓰기가 더 사랑스러워졌다는 걸 알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글들이 내게도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걸 알까. 아마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도 지난하겠지만, 쓰다 보면 언젠가 또 그동안 남은 글들을 보면서 다 지나갈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들이 이런 글들을 남겼다는 것을 돌아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모든 글은 의미가 있고,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고, 그것들로 이루어진 삶은 더 살만하고 재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