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지보다 오답 내기

2025 상반기 회고

by 쪼이




우리 그룹에서는 2~3주에 한 번씩 구성원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미팅을 가진다. 지금까지는 ‘다시 태어나면 되고 싶은 동물은?’, ‘가장 좋아하는 맛집은?’, ‘10년 뒤 내 모습은?’ 등의 주제가 나왔다. 나는 내 차례가 돌아오면 정말 기깔나고 의미 있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주,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고 어떤 주제를 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대주제를 작성했다.


<2025년 상반기 회고: 당신의 지난 반년은 어땠나요?>


그리고 아래에 작은 꼬리질문들을 달았다. 2025년 새해 목표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지난 반년 간 가장 배운 게 있다면?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아쉬운 점은?...


2025년 상반기는 내게는 인생의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 것 같은 시기였다. 내가 던진 질문들에 뭉게뭉게 떠오르는 무수한 순간들 중에서, 그래도 회사 동료들 앞에서 얘기할 만한 것, 회사 일과 관련된 것이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업무적으로 배운 것과 성장한 것, 아쉬운 것들을 간략히 적다가 인상 깊은 순간을 적으려던 찰나, 강렬한 기억이 떠올랐다.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한 마디도 못하고 울었을 때.






작년 연말에 새로 옮긴 부서는 여러모로 이전 부서와는 달랐다. 업무의 성격도, 구성원의 성향도 달랐지만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조직문화였다. 실험이 주 업무였던 이전 부서는 (비록 업무량이 많았어도)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웠고, (비록 점점 더 같이 나이 들어갔지만) 다들 나이가 어린 탓에 회사보다는 대학교 같은 분위기였다. 실험이라는 게 결국은 혼자 하는 업무고 성과를 인정받기도 힘든지라 야망가보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지금의 조직은 달랐다. 애초에 이 조직은 상무님의 직속부서이고, 업무상 다른 부서들을 관리하는 상위 조직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난 가장 높은 사람은 부장급인 팀장님이었고 그조차 너무 어려웠는데, 여기서는 매주 상무님과 미팅을 하고 팀장님 그룹장님과 밥을 먹었다. 아침 8시에 미팅을 하는 일도 잦았다. 또래끼리 밥 먹고 어울려 다니던 지난 7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윗사람의 말에 토 달지 않고 비위를 맞춰야 하는 그 수직적인 분위기가 낯설고 어려웠다.


그중 특히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던 것은 팀장님이었다. 서울대 선배기도 한 팀장님은 이 회사의 창립 멤버로 엄청난 공을 세운 능력자셨다. 그리고 아랫사람 대하는 태도로 여러 번 인사팀에 호출된 꼰대시기도 했다.


이 부서로 오게 되면서 나는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나의 배경 때문이었다. 첫째로, 이 부서는 나의 기존 부서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상무님의 실적을 위해서 더 성과를 많이 내야 했는데, 기존 부서는 이미 한계까지 일하고 있던 터라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내가 이 부서에 오게 된 것은 병가까지 쓰면서 부서를 옮기려 하던 내 사정을 들은 상무님이 나를 빼왔기 때문이다. 반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각 부서에서 일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나만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회식자리에서 팀장님이 대놓고 말씀하셨다. “너도 유명했지, 관심병사로.”


내가 못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나의 기존 부서가 게으르다는 증거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옮긴 부서에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내가 문제라는 게 확실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할 필요 없다고 꾹꾹 스스로를 다독여왔지만, 내 솔직한 욕심은 잘하고 싶은 게 맞았다. 팀장님은 수시로 찾아와서 ‘네가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훈계인지 시비인지 모를 소리를 던지셨다. 그런데 나조차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긴 한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부서의 모두가 어려웠다. 팀장님 뿐 아니라 그 아래 그룹장님도, 가장 가까워야 할 직속 상사인 파트장님도 어려웠다. 이 조직은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기존에 속했던 조직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서 성과가 안 나온다고 보고했다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다. 혹은 나의 지난 보직장들이 욕을 먹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짊어질 필요가 없는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고 있었다. 그게 숨 막혀서 그토록 지긋지긋하던 실험이 그리웠던 날도 많았다.


문제의 그날은 팀장님과 월간 1:1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대충 한 세 번째 미팅, 그러니까 내가 부서를 옮긴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한 달씩 지날 때마다 팀장님은 내게 그동안 한 것에 대한 성과를 물어보셨다. 상투적인 말 밖에 못하는 내게 이번까지는 봐주지만, 다음 달에는 이 조직에서 무엇을 했는지 제대로 말해보라고 하셨던 게 지난 미팅이었다. 대충 머릿속으로 내가 한 일들을 생각하고 팀장님과 단둘이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그런데, 팀장님이 특유의 그 권위적인 말투로 “어디 한 번 나한테 질문해 봐”하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팀장님이 질문을 하면 받아칠 생각만 했지 내가 질문할 거리를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냥 그뿐이었는데,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평소 밥 먹고 떠들 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대화할 수 있었는데 이상했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일종의 면접이었다. 혹시 오답을 내뱉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머릿속으로 답을 고르고 고르고 또 고르기만 했다. 그런데 그건 결국 백지답안을 내는 것과 똑같았다.


얼마간 정적이 흐르고 팀장님이 지금 뭐 하는 거냐며 황당함을 나타내셨다. 평소에 그렇게 입 다물고 있더니, 여기서도 입을 안 여네? 너 안 답답하니? 그 말에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것들이 눈로 삐져 나왔다.


아마 그날 그 순간만의 중압감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서에 몸 담은 몇 개월 동안, 나의 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보여질 지를 나는 늘 전전긍긍했다. 그런 나를 팀장님은 다 알고 계셨다. 내 눈물을 본 팀장님의 말투가 한층 너그러워졌다.


“너를 보면 항상 생각이 많아. 생각이 너무 많고 눈동자만 굴리는 게 보이는데 입밖에 내지를 않아. 틀릴까 봐 걱정하는 게 다 눈에 보여. 그건 일을 못하는 거야. 말을 해야 뭔가 달라지는 게 있지. 그래야 틀렸는지 아닌지라도 알지, 이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 너는 제대로 일하는 법을 모르고 있는 거야.”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박혔다. 그날 팀장님의 말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쓰린 말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속 시원했다. 내가 혼자 끙끙 앓고 있던 것이 훤히 드러나서 소독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혼내고 잔소리하는 것은 결국 상대에 대한 애정이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나는 다음 달 미팅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그 회의실을 나왔다.



그 마지막 미팅은 오지 않았다. 그때는 한창 사내 정치로 팀장님과 상무님의 입지가 위태하던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무님이 해임되셨고, 조직 구성원들을 잃은 팀장님은 퇴사를 선택하셨다.



그날의 면담을 곱씹을수록 팀장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의 동기가 뭐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팀장님은 원래 폭언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그때는 한창 일이 없어서 한가하시던 때였다. 그냥 정말 내가 만만해서 갈구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그 면담이 내 마음가짐을 크게 바꾸었다. 나는 할까 말까 할 때 무조건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비록 후회하는 일이 있더라도, 하지 않으면 했을 때의 미래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 말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더 현명하다. 나는 그 꼭 필요한 말과 필요하지 않은 말을 구분할 자신이 없어서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그러면 앞으로 계속 그 상태 그대로 멈춰있는 거다. 틀리고 혼나고 깨달아야 성장할 수 있는데, 나는 그게 무서웠다.



팀장님의 마지막 출근일, 간단히 회의실에 모여서 송별회를 진행했다. 커피 한잔이라도 사드리면서 그때 면담이 끝나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팀장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팀장님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퇴사하시게 되면서 그럴 시간을 내지 못했다. 송별회에서 팀장님께 다 같이 인사를 드리고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돌아섰다. 자리에 앉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메신저 창을 켜서 커피 한 잔이라도 사드리고 싶다는 말을 보낼까 말까 백 번 망설이다, 제발 좀 그냥 하자는 마음으로 엔터를 쳤다.


‘팀장님, 커피 한 잔 사드리고 싶은데 마지막날이라 바쁘시려나요?’ 바로 답이 왔다. ‘3층 회의실로 와.’


매번 면담 때 이용하던 회의실이지만 그날은 유독 마음이 편했다. 면담이 아니라 평소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실 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이 자리를 평가받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팀장님은 나의 팀장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웃으며 팀장님 앞에 마주앉았다. 팀장님께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고 사실 항상 팀장님께 궁금했던 것, 팀장님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여쭤보았다.


팀장님은 사업가가 되는 게 목표라고 하셨다. "사업가요?" 되묻는 내게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처음 창립 때부터 함께 한 이 회사가 이렇게 커서, 너 같은 애들한테 월급을 주면서 몇천 명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게 참 신기해. 그런 사업체를 만드는 게 재밌고, 보람 있어."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헉 역시 팀장님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었군요!’ 하는 생각과 ‘역시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더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의 면담이 내가 몇 달간 가지고 있던 문제의 핵심을 꿰뚫은 면담이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팀장님이 좀 속얘기를 털어놓으라고 해서, 좀 더 먼저 말을 꺼내고 벽을 허물려고 노력했다고. 사실 파트장님과도 계속 데면데면했는데,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대하니까 관계가 더 편해진 것 같다고. 그 말을 가만히 듣던 팀장님이 내뱉으셨다. "‘인정강박’을 한 번 찾아봐. 그게 내가 너한테 남기고 싶은 마지막 가르침이다." 나처럼 평범하게 공부해서 칭찬받은 서울대생 중에 인정강박이 많다나. 그 말에 나는 “저는 이제 그냥 잘 못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괜히 제가 여기 와서 부담을 많이 가졌나 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팀장님이 그렇게 자포자기의 마음을 먹으려는 것 또한 인정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하셨다. 또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팀장님은 한 벤처회사에 임원으로 가기로 했다고 하셨다. 본인의 지난 20여 년 간의 회사생활을 돌아보면, 가장 즐겁게 일했을 때는 처음 열몇 명으로 이 회사를 처음 시작하고 키워나가던 때인 것 같다고, 딱 그 정도 규모의 회사를 또 키우러 간다고 하셨다. 학교 놀러 가면 연락드려도 되냐니까 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이제 또 3개월 정도가 지났다. 이 부서에 온 지 이제 반년, 돌이켜보면 그때의 팀장님과 있었던 일이 확실히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지금은 팀장님처럼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무서운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내 할 말을 잘하고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윗사람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이 회사 생활을 잘하는 것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매 순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생각을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절대 독 되는 일은 없다는 것. 결국 또 면접이랑 똑같은 것도 같다. 눈치 보는 것보다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그렇지만 너무 강하게 말하지는 말고 눈치를 조금은 보기,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팀장님과 함께 했던 시간이 짧았던 게 아쉽기도, 다행이기도 하다. 팀장님과의 대화들을 떠올리면 내가 정말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낀다. 그 시간이 더 길었으면 더 주눅 들고 작아졌을 것 같다. 그렇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교훈을 얻는다는 건 나의 장점이다. ‘행복한 고구마’ 짤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가 비꼬는 말을 곧이곧대로 기쁘게 듣는 어벙한 사람들이 정신이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짤이다. 나는 그렇게 둔감하게 넘기기엔 너무 예민한 사람이지만,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려서 그 속에 담긴 선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좀 더 스스로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다독여주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