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방법 '거리두기'
2025년 하반기에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더 자주 느꼈다. 그 감정들의 대부분은 회사에서 비롯되었다. 집순이인 내가 사람들과 가장 많이 부딪히는 공간이자, 하루의 3분의 1을 보내는 곳이 회사였다. 나머지 시간은 잠과 출근 준비, 식사와 아주 짧은 자유 시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결국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 그리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은 회사였다.
회사에서의 일은 언제나 양면적이다.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지난 9월, 원래 내가 맡고 있던 ‘공동주택 재건축’ 프로젝트의 사업승인이 마무리되었다. 접수부터 완료까지 6개월, 계획 단계부터 따지면 14개월이 걸린 일이었다. 길고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 전반적으로 직원들의 퇴사가 이어졌고, 다른 팀에서 하나둘씩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정리를 할 틈도 없이 담당자의 능력부족과 시간부족으로 진행이 어려운 긴급한 프로젝트들이 넘어왔다. 결국 네 개의 프로젝트를 연달아 떠안게 되었고, 나의 일을 마무리한 뒤 숨을 고를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12월이 되었을 때,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지키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떠올린 선택이 ‘거리두기’였다.
나는 천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회사에서의 말투가 달라졌고, 웃음이 줄었다. 계속해서 매달려오는 요청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확실한 거절을 반복하며, 회사 사람들과의 거리를 조정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거리감은 감정이 아니라 상태라는 것을. 거리 두기를 시작하자 사소한 부탁들까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이래도 되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마음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회사에서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한 채 일하고 있다. 휘몰아치던 일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친절하게 대하고, 모든 것에 웃으며 응대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배려는 어느 순간 타인에게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고, 그 당연함을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책임감을 가진다는 이유로 그 선을 넘었던 쪽은 나였다. 넘어온 업무들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경고장 같았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말을 듣되 즉시 판단하지 않고, 판단하되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아니고, 무신경해진 것도 아니다. 다만 반응을 늦추는 쪽을 선택했다.
이 선택 이후 삶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기쁜 일에도 과하게 들뜨지 않고, 불편한 일에도 깊이 가라앉지 않는다. 행복의 진폭이 줄어든 만큼, 불안의 깊이도 함께 얕아졌다. 이 변화가 성숙인지, 무뎌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거리감은 관계를 끊어내지 않는다.
다만 관계의 깊이를 조절한다.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모든 행동을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오래 마음에 남았을 장면들이 이제는 며칠을 넘기지 않고 지나간다.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 덕분에 덜 상처받지만, 동시에 덜 몰입하게 된다. 가끔은 이 상태가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거리를 유지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것에도 깊이 관여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아직은, 이 거리감이 나를 삶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제 모든 관계에 같은 방식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어떤 관계에는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어떤 관계에는 이 정도의 거리가 적당하다고 판단한다. 그 판단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을 때도 많다.
'관계의 선'을 넘지 않기로 한 이후, 삶은 이전보다 덜 소란스러워졌다. 거리감은 외로움과 닮아 있지만 같지는 않다. 외로움이 연결을 갈망하다 실패한 상태라면, 거리감은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굳이 누군가를 찾지 않기도 한다. 이 모순 속에서 나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아마도 이 거리감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가까워지고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거리감이 필요하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아직 세상에 등을 돌리지 않았다.
다만 너무 가까이 서 있지 않을 뿐이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라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나 자신도 잃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나는 그 균형을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