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매미의 사체를 유독 많이 보았다.

그 많은 매미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by 졸리

유독 내 눈에만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몇 해 전 여름에는 매미의 사체였다.


무더운 여름 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그 시기에 산책을 하다가 발 앞에 떨어져있는 매미의 사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30년 가까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매미의 사체를 본 것이, 아니 매미가 죽기도 한다는 것을 의식했던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매년 지구상에 수억 마리의 매미들이 여름마다 땅 속에서 깨어나, 소리 없이 나무에 기어올라, 힘차게 며칠 울다가 번식을 끝내고, 소리 없이 죽어서 나무에서 떨어질 텐데. 어째서 도시의 우리들은 수많은 매미들을 맴-맴거리는 소리로만 만나고 있었던 걸까? 나무나 방충망에 붙어 울고 있는 매미를 심심찮게 본 적은 있지만, 갓 숨이 끊어진 듯한 매미의 사체를 내 발이 차이는 곳에서 본 것은, 아니 이 사실을 머리로 인지한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해 여름은 이상하게도 동물의 사체를 많이 보았다. 로드킬당한 고양이, 도로 한 복판 차에 치여 죽은 까마귀, 그리고 그 까마귀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입을 벌린 채 꼼짝 않고 얼어버린 친구 까마귀, 아파트 단지 대로변 하수구 구멍에 끼여 반쯤 부패된 쥐의 사체, 수많은 매미의 사체, 매미 유충의 사체, 그리고 다양한 부패 상태.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생생하게 기억 난다. 여름을 함께 보낸 동료에게 말했다. '이번 여름 유독 죽음을 많이 목격했다'고.


보이기 시작하니 더 많이 보이고, 인지하고 나니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기괴했다. 그 모든 죽음들이. 징그럽거나 끔찍해서가 아니라, 죽음이 없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 오류처럼 죽음이 배치되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죽음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보지 못하고 살았을 뿐이지 삶과 죽음은 대낮, 대도시, 대로변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여름마다 우리를 소리로 괴롭히는 수천수만 마리의 매미들은 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그렇게 많은 매미들을 한 마리도 보지 못하고 소리로만 들으며 여름이 지나간다는 게 사실 더 이상하고 기괴한 사실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어떤 매미는 이번 여름 매미들 중 '처음으로' 울기 시작했을 거고, 어떤 매미는 '마지막까지' 울었을 거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수많은 매미 유충들이 굼벵굼벵 기어서 나무 위로 올라가고 있었을 거고, 죽으면 떨어져서 푸덕거리다 결국 가루로 분해되고 있었을 거다. 나는 그 진귀한 순간들 중 하나를 포착했을 뿐인데 그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간이 기괴하게 느껴졌다니.


이 매미와 그 해 여름 이야기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동물들은 태어나 본능처럼 번식을 하고 시간이 흘러 죽는다. 이번 여름엔 꼭 매미의 생애를 가까이서 관찰할 행운이 당신에게도 찾아오길 바란다. 새로운 세계가 당신 앞에 펼쳐질지도. 매미 사체 하나도 못 보고 보내버리는 여름은 마인드풀(Mindful)하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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