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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전략이 될 수 있을까?

두 번째 마케터의 새벽

by 지원

오늘의 새벽 추천 곡, <윤종신 - 1월부터 6월까지>

https://youtu.be/DLZs4L0VE-Y?si=QXgoyINfhrxUmD0d


나에게 있어 퇴사는 전략이었다.


1. 첫 번째 모먼트, 부당함에 휩쓸리다.

2018년, 연봉 2천만 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연봉'이라는 개념이 나에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그저 일을 시켜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회사를 다녔다. 6개월이 되었을 때,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9시 출근 밤 11시 퇴근을 반복하며 몸을 갈아 넣는 업무 강도. 그리고 상사와의 잦은 갈등 속 짙어지는 우울증과 공황이 나를 쉽게 번아웃 시켰다. 그렇게 첫 퇴사는, 11개월 만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다. 너무 어렸고, 그렇기에 도망친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복기라는 것을 해본 순간이 저때였을 것이다. 내가 왜 퇴사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부당함'이라는 트리거가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를 다녔을 때, 그곳도 쉽진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1년을 넘겼고 연봉협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했다. 그 당시 인상률은 3%. 사실 협상이라기보단, 통보였다. 협상자리에 계약서를 들고 오셨으니까. 또 경험이 없는 주니어였던 난,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2년이 다되기 전에 그곳을 퇴사했다.


2. 두 번째 모먼트, 부당함에 맞서 싸우다.

그때부터 '연봉'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두 번째 회사에서도 10시 30분 출근, 11시 퇴근이 허다했고, 주말 출근까지 있었으니(평일 4일, 주말 1일) 또다시 부당함을 느낀 것이다. 몸이 갈린 만큼 배운 게 많아서, 다음 이직을 준비할 때 내 1순위는 내 능력에 맞는 연봉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 회사, 그곳은 350명 규모의 당시 굉장히 잘 나가던 회사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직이란 걸 할 때 연봉협상을 해봤다. 당시 인상률은 10%. 3%랑 비교하니 너무 크게 느껴져서 감사함을 느끼고 입사를 했다. 너무 즐거운 회사생활을 했고, 많이 배웠다. 많은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평가도 꽤 좋았다.


그래서 1년이 지났을 때, 연봉협상에 대해 굉장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호구처럼 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들어갔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결과는 2% 인상. 납득할 수 없었다. 좋은 평가를 받았고, 늘 늦게까지 남아 열심히 일했고, 규모가 있는 회사이니 적어도 5%까지는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동결과 삭감도 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하더라. 그렇게, 나는 '연봉'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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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 번째 모먼트, 전략은 한순간이다.

전략을 짰다. '자주 이직해서 연봉을 올리자'라는 전략.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만큼 내 가치가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 있었고, 한 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내 경험과 역량이 이 업계에서는 잘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건 사실이었고, 그렇게 연봉도 비교적 조금은 더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2025년 지금, 그 전략은 아직도 유효하냐고? 전혀. 콘텐츠 마케터라는 특성상 나이는 곧 독이 되었고 거기에 잦은 이직 경력을 더했으니, 다음 이직이 쉽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내가 있던 교육업계에서는 내 가치를 소중히 대해주셔서, 이직 제안 및 프리랜서 제안이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근에는 한 회사에 입사를 했다가(O2O 서비스를 하는 다른 업계였다) 적응을 하지 못해 퇴사를 하고 다시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다.




내 전략에 대해 후회 없냐고 묻는다면, 너무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다. 가정환경까지 내려가면 너무 딥해지니까 말을 아끼겠지만,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전략으로 한 푼도 없던 통장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뜯어말릴 거다. 길게 보고, 넓게 보라고. 너를 소모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말이다.


지금도 나는 내 역량에 자신이 있다.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역량이 없었다면 프리랜서 일도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꽤 오랫동안 신중하게 회사를 찾고 있다. 오래 있으면서, 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그런 곳.


퇴사도 습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브런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말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당신이 퇴사를 앞두고 있거나 퇴사를 전략으로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면, 반드시 신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얻는 만큼, 많은 것을 잃게 될 테니까. 나처럼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의 커리어가 길게, 단단하게, 가치 있게 지속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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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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