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017. 9.

by 별바다

2017. 9. 저장
2018. 9. 게시

그림1.jpg 나무 사이로 지는 해를 볼 수 있었던 보츠와나 하루의 끝자락

올해 초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라는 나라로 파견되어 한 해 동안 보츠와나 어린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처음 보츠와나에 와서 남아공 주재 한국 대사님과의 간담회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아프리카에서는 파리를 너무 싫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파리가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과거 아프리카 사람들을 파리에 비유하여 비하한 역사가 있어 자칫 인종차별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여덟 달을 지내오면서 파리에 많이 익숙-심지어친숙-해지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파리가 싫다. 여기에는 파리라는 생물에 대한 감정만 담겨 있을 뿐 인종차별적 의미는 없다.


누군들 파리가 좋을까 만은, 파리가 이래서 싫다고 특별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실외에서 실내로 들어가면 좀처럼 바깥으로 알아서 나갈 줄 모르는 파리의 행동 특성 때문이다. 아파트 15층에 살던 어릴 적, 일요일이면 어머니께서는 청소를 하시느라 방충망 마저 활짝 열어놓으시고는 하셨다. 집 안 보이는 곳에 음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그 고층까지 날아와 집안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청소가 끝나고 일요 아침 만화를 즐기고 싶을 때쯤 나가주었으면 싶었던 파리들은 내 바람과는 달리 실내 비행을 계속하였고, 때문에 나의 만화 타임은 텔레비전 화면에 앉는 파리와 눈 앞을 지나가는 파리, 가끔 나를 공격하려는 듯 혹은나와 친해지려는 듯 대담하게 내 근처로 다가오는 파리들로 종종 방해를 받았다. 너무 귀찮은데 살생은싫었고 어떻게든 쫓아 보내려 했다. 집의 삼 면에 위치한 베란다 문을 아주 활짝 열어놓았지만 녀석들은 나갈 줄을 몰랐다. 날개가 있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고 심지어 15층까지 날아오를 수 있는 뛰어난 비행 능력마저 지녔으면서 어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지 한심했다. 그렇게 주말마다 마주하게 되는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파리와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 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방충망을 열지 않았기에 모기와 파리로부터 꽤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 아프리카에 와서 방충망이 없는 집에 살다 보니 파리라는 존재가 주는 귀찮음과 함께 그때의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다. 파리가 싫기는 하지만 살충제를 뿌리고 싶지는 않아서 어떻게는 유인하여 밖으로 내보내려고하는데, 아프리카 파리도 한국의 파리처럼 도무지 밖으로 나가지를 않는다. 건강한 파견생활을 위하여 청결과 위생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기에 집 안 보이는 곳에는 먹을 것을 두지 않는다. 때문에 집 밖 쓰레기통 근처라도 가야 음식 냄새라도 맡고 연명할 수 있을 텐데 좀처럼 나갈 줄을 모른다. 심지어 창문 근처를 비행하고 있는 파리들을 위해서는 넓은 판자를 이용해서 창문 밖으로 고이 인도해 보려는 특별 서비스까지 제공하지만 그들에게 나가는 일이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보다.


파리가 정말 싫지만 그 중에 조금은 마음에 드는 파리가 있다. ‘미친 파리’라고 이름 지어준 유형의 파리인데, 유독 검고 큰 덩치의 녀석은 파리 계의 우사인볼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력을 자랑한다. 다른 파리들은 조금 날다가 잠시 어디 앉아 앞다리도 비비고 다시 유유히 날아다니는 데 비해, 미친 파리는 잠시 쉴 틈도 없이 계속 날아다닌다. 날면서 제법 큰 굉음을 내는 것도 특징이다. 또 다른 파리들에 비해서 공간을 굉장히 넓게 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여타의 파리들이 활동하는 범위는 넓어야 평균 2-3제곱미터 정도 된다면, 미친 파리는 이 방 저 방, 거실과 부엌을 넘나들면서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특별히 미친 파리가 ‘마음에 든다’라고 까지 표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온 집안을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추어 문을 열면 바로 나가기 때문이다. 이 녀석과의 절묘한 호흡으로 ‘파리 인도 작전’을 성공했을 때의 희열은 제법 커서 간혹 미친 파리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길을 터주었을 때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줄 알기에 기왕 파리가 집에 들어올 거면 미친 파리가 낫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파리일 거라면 미친 파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 파리.jpg 미친 파리의 비행

작년 초, 보츠와나라는 다소 생소한 나라와 모르는 곳에서의 생활이 주는 미지의 매력에 끌려 미친 파리 마냥 일단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나려는 마음을 내었다. 조금 더 넓게 살아보려고 내딛은 한 걸음에 스스로 뿌듯했었고, 모르는 곳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컸다. 어느덧 8개월이 지나 한 차례 추운 계절을 보내고 봄이 다가오고있다. 추운 날씨 덕에 한동안 없었던 파리가 다시 집으로 찾아오는 요즘, 마음 속에는 낯선 곳으로 내딛은 한 걸음에 대한 뿌듯함 대신 의문이, 미지의장소에 대한 설렘 대신 익숙함이 자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어느 시골, 멈춘 듯 움직이는 마을에서 나는 내가 싫어하던 머무는 파리가 된 것은 아닌지, 무엇을 위하여 미친 파리가 되어 세상에 나왔는지, 파견생활을 100일 남짓남겨둔 시점에서 파리를 보며 한 생각 일으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