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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Feb 04. 2016

제스타입 작업일지 #11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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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더니 어느새 2월. 시간은 정말 빠르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한 폰트 디자인. 작업을  정신없이 이어가고 있다.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고민들은 외면하고 그저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위태로운 외줄타기. 이상을 좇지만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에 이런 골치 아픈 고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쨌거나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내가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후원금을 모금하는 방법과 외주작업을 하는 것. 당장에 폰트 판매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후원에 많이 의지하고 있으나 굉장히 불안정하다. 외주작업 또한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혹은  언제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모든 것은 내가 하기에 달려있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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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희수 작가의 개인전을 다녀왔다.



이제까지 보았던 어떤 전시와도 달랐고 굉장히 인상 깊었다. 김희수 작가는 일상을 그렸다. 화려하지 않은 그저 소소한 일상을 그렸다. 벽면을 가득 채운 드로잉  하나하나가. 전시 공간을 가득 채워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빼곡한 그의 작품 속에서 노력이 보였다. 그가 이를 악물고 달려온 길이 보였다. 그가 나아갈 길이 보였다. 3년 동안 그린 그림들. 전시를 통해  하나하나의 작품이 아닌 김희수 작가가 보였다. 많은 영감을 받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개인전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작품을 내건다고 전시일까. 그 전시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보고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이 정도 작업이 모였으니 한 번 전시해볼까 하는 안일한 생각.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그의 노력 앞에서 나는 초라했다. 그 노력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고 한 없이 부족하다는 생각만 나를 짓눌렀다.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으며  그것을 본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단순히 멋지다. 우와. 좋다. 이런 휘발성 감흥이 아닌. 좀 더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모든 것을 기록할 수는 없었지만 전시장을 나와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나갔다. 나는 앞으로 3년이란 시간을 절실하게 내달릴 것이다. 이를 악 물고 어떻게 해서든 내가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룰 것이다. 그 후에 무엇이 남을지. 무엇을 얻을지. 무엇을 잃을지.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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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잘 쓰지도 잘 정리하지도 조리 있게 풀어내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혹은 내가 간과하고 있던 생각의 파편을 발견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작업일지에는 물리적인 과정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 고민들. 간접적인 경험이나 소소한 일상들까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한다. 이 전에는 굵직한 일들만 기록하며 이정표로 삼았다. 내가 걸어온 길들을 알려주는 이정표. 내가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 내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언제나 의식하고 있었다. 그 이정표를 통해서 나는 내 인생을 의식하고 있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목적지도 정했다. 살아가면 된다. 살아있다면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죽기 전에 꼭 다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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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실적인 고민으로 돌아온다.

살아가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나는 또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먹고살기 위한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되돌아왔다. 조금 더 영리하게 기획해야 한다. 단순히 폰트를 제작한다는 것에 사람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서체를 어떻게 제작할 것인가. 그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그저 보여주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내 진심이. 절실함이 담겨야 한다. 나는 이 길을 걷고 싶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담을 것인가. 아직은 고민이 충분히 깊지 않은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 사용자와 함께하는 디자인. 작업 과정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진행되는 작업. 사용자가 공감하고 납득하며 필요로 하는 그런 디자인. 한글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한다. 단순히 모든 라이선스를 오픈하고 무료로 제공하면 사용할 것인가. 그것이 좋은 서체인가.  끊임없이 되묻는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는다. 아마도 다음 프로젝트가 그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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