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과 24년과 25년
2023. 10. 19
시간은 흘러 2023년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글자를 막 그리기 시작한 무렵을 떠올린다. 무지해도 무엇이든 시도했던 어제의 나를 생각하면 오늘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졌음에도 손을 놓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에 불타올랐었다. 몇 차례 파도를 마주한 나는 물에 젖은 장작마냥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 -
2025. 05. 12
해마다 시작과 끝에 글을 쓰고는 했지만, 발행하지는 않았다. 브런치의 서랍 속에는 발행하지 않은 여러 생각들이 잠들어 있다. 꾸준히 글을 쓰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서 글을 놓고 살았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육아를 전담하다보니 지친 머리가 더 이상 돌아가질 않았다. 올해는 간단하게 일기 쓰듯 매일 짧은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여유를 되찾고 싶다. 일이 바쁘고, 육아는 힘들지만, 글을 쓰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핑계만 찾고 있을 것인가. 뭐라도 좋으니 적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작업일지를 돌아보면 참 우습기도 하다. 유려하고 멋지거나 좋은 글은 아니더라도, 잘 못해도 괜찮으니 계속 무언가 시도했었던 지난 날들이 쌓여 지금을 이루었으니, 나 자신에게 만큼은 참으로 대견한 기록들이다. 결국 하다보면 나아지는 것이고, 지금 이 글도 나중에는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아지고 있다. 성장하고 성숙하자. 멈춰버린 머리를 다시 굴려보자.
- - -
2024. 09. 11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방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켰다. 아내는 6시 반이 되기 전에 먼저 출근한다. 엄마가 출근하면 3살된 정원이도 일어나서 배웅하거나, 조금 늦게 일어나면 엄마를 배웅하지 못했다고 슬퍼한다. 그렇게 일어난 정원이와 동물 피규어를 잔뜩 늘어놓아 농장놀이를 하고 영양제와 음료 하나를 주었다. 아침은 늘 그렇듯 비몽사몽 지나간다. 정원이 곁에 누워 노는 모습을 바라본다. 떼를 쓰면 같이 놀아주기도 하지만 아침에는 피곤하다보니 곁에 누워 대충 놀아주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유튜브의 키즈 컨텐츠를 보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영상 컨텐츠는 하루 20~30분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정원이가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이상적인 아침 루틴은 어렵다.
오늘도 아이가 등원하고 집에 돌아와 설거지와 세탁을 했다. 등원하고 오느라 흘린 땀을 샤워로 씻어내고 창문을 닫아 에어컨을 잠깐 켜서 쾌적한 상태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쓸 지 결정하는 것부터 내용을 정리하거나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2024 활자논의 강연을 앞두고 강연 내용을 400자 이내로 정리해야 한다. 강연 내용을 결정했지만 그것을 요약하여 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는가, 문장이 이상하진 않은가, 등등 고민이 많다. 일단은 너무 길어지는 문장들을 잘라내었다. 문장을 간결하게 다듬으면 읽기도 편하다. 내용을 이해하기도 편하지 않을까 싶다. 아내는 읽어보고 글을 너무 어렵게 쓰는 것이 아니냐 했지만, 강연이다 보니 너무 쉽게 풀어 쓰는 것도 조금 신경쓰인다.
오늘의 할 일은 강연 자료 준비와 이를 요약한 내용을 담당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발표는 늘 긴장되고 사실 한번도 잘 해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충분히 준비해서 잘 마무리하고 싶다. 강연 내용은 지금까지 그려온 글자의 표현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2012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며 그렸던 초기 레터링부터 2024년 지금 그리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레터링까지 시기 별로 정리하여 내가 추구하는 한글의 다양성을 풀어본다. 한번도 정리한 적이 없는 자료라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지난 12년의 글자들. 나는 과연 몇 자나 그렸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결국 발표는 주어진 시간을 넘겨 버렸고, 다행히 준비한 내용은 망치지 않고 발표할 수 있었다. 발표의 어려움은 항상 시간과 분량을 조절하는 것 아닐까. 수업은 편하게 진행할 수 있는데, 발표는 항상 어렵다. 이번 기회로 지난 10년을 돌아보았으니, 앞으로의 10년을 어찌 헤쳐나갈 지 잘 계획해봐야겠다.
- - -
매일의 기록을 잠깐 들춰 보았다.
오늘도 오전 중 두 가지 프로젝트의 작업물을 담당자에게 전달하였고, 하나의 견적서와 하나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였다. 내일 있을 어린이집 캠핑 프로그램 준비도 해야 하고, 지난 일요일 종강한 레터링 수업 결과물도 정리하여 피드백을 전달하여야 하고, 아내가 부탁한 중고 거래도 있고, 아이가 어린이집 하원 후 미술학원에서 놀다가 시간 맞춰 데리러 가야 한다. 아침 점심 끼니를 건너 뛰고 커피 한잔만. 하루는 길고, 시간이 어찌 가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