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무드 Feb 22. 2024

Ep.11 쓰레기봉투에 내 짐을 던져 넣은 엄마

그리고 100만 원 치 독립 살림



엄마랑 사는 집에선 빨래하려고 세탁기를 돌릴 때에도 온갖 눈치를 보았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입다가 더러워지면 옷을 쌓아두거나 버리거나 새로운 옷을 사는 게 엄마랑 부딪히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엄마랑 나는 멀어졌을까. 어느 날이었다. 아빠는 회사에 가고 나는 또 백수였던 스물일곱 살 어느 가을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배가 고파 부엌으로 가 먹을 것을 찾고 있는데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엄마가 나에게 말한다.


‘ㅇㅇ부동산 전화해서 전세 집 있나 물어봐’

‘다짜고짜 무슨 소리야 그게? 자세히 말해줘.’

‘나가서 혼자 살아. 독립해.’


늘 저런 식으로 얘기하는 엄마 입에서 나오는 ‘독립’ 얘기는 당황스럽고 두렵고 갑작스러워서 놀랍고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다가 내가 이 집에서 나가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반박 없이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멍청하게 질문을 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저 주흰데요. 혹시 전셋집 있어요?’

‘어디에 알아보는 건데~? 엄마가 구하시는 거니?‘

’다시 전화드릴게요!‘


정말 지금 다시 생각해도 멍청했다. 엄마의 저런 화법은 나를 정말 멍청하게 만든다. 부동산에 전화해서 매물을 알아보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정보는 주고 알아보는 게 맞는데 나이 스물일곱, 멍청하게 전화를 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끊고 엄마는 또 내게 상처되는 말들을 퍼 붓기 시작했다.


’ 너는 멍청한 거냐? 생각이 없는 거냐? 일부러 그러는 거냐? 에효, 됐다 됐어.’


또 나는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인간, 생각 없이 일부러 그러는 인간,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었다. 엄마는 저렇게 말하고는 부동산에 다시 전화해서 일목요연하게 아줌마에게 설명한다.


‘주희 독립시키려고요. 전세 5천 정도 나온 집 있어요? 아 그래요? 관리비는요? 아~ 지금 좀 볼 수 있어요?’


그제야 알았다. 나는 갑작스레 그렇게 독립을 해야 했고, 어릴 때 전학을 다닐 때처럼 갑자기 전셋집에 갑자기 독립을 해야 했다. 일사천리로 집 두세 군데를 보고는 마지막으로 본 집에 이사를 하게 되었고, 엄마는 나를 홈플러스로 데려가 카트에 100만 원 치 독립 물품을 그릇부터 컵, 수건이며 필요한 물건들을 말없이 담기 시작했다. 전셋집 전세금은 3000만 원, 엄마 현금 600만 원과 대출 2400만 원으로 나의 스물일곱 독립생활은 시작되었다.


엄마는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펼치곤 내 방에 들어가 장롱문을 열고 내 옷들을 쓰레기봉투에 마구 담았다. 아니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으나 내 눈엔 내 옷들을 미친 듯이 꺼내어 쓰레기봉투에 던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퇴근 한 아빠는 엄마 뒤에서 왜 그렇게 하냐고 뭐 하는 거냐고 말리긴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방 문 앞에 서서 버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기분이라곤 안중에도 없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내가 이 집에서 내 구실 잘하면서, 어우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빨래 돌릴 때 다른 가족들것도 돌려서 빨래를 넌다거나 설거지를 해도 어우러지는 가족 같은 모습을 엄청 바랬을 거다. 하지만, 나도 처음부터 안 했던 건 아니다. 설거지를 해놓으면 이게 설거지라고 해 논거냐부터 반찬이라도 해놓으면 왜 하나 더 못했느냐고 타박했고, 빨래를 돌릴 땐 왜 이렇게 돌렸느냐. 빨래를 개서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어놓으면 왜 이걸 여기에 넣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이래도 혼나고 저래도 혼나는 거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혼나는 게 차선책이라는 생각을 한지 오래. 그리하여 나는 이기적인 년이 된 거다. 그런 딸의 꼴을 보고 싶지 않았을 엄마가 지금엔 이해가 될 듯 하지만 그 당시에 매일 부딪혔던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8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생각도 들면서 이해가 될 듯 말 듯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만감이 교차하고 내가 그렇게 쓸모없는 인간이 된 건가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다 못해 또 한 번 못이 박혔다. 엄마와의 균열과 갈등은 내겐 언제 터질지 모를 테러나 전쟁 같은 것이었고, 갑작스러운 독립은 휴전이었다.


욕을 하더라도, 다시 불러서 차근차근 말해줬더라면, 부동산에 전화할 때 미숙한 모습이 보였을 때, 그 나이 먹도록 뭐 하고 살았냐는 타박보단 못 할 수는 있다. 근데 앞으론 해봐야 한다고 다독여줬더라면, 엄마에게도 그런 여유가 있었더라면 나 또한 엄마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해안이 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씩씩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Ep.10 할머니, 나는 사람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