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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Feb 25. 2024

Ep.14 부모에게 독립 되지 못한 건 그가 아닌 나

걱정을 포장한 가스라이팅


그와 결혼을 전제하에 만남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가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금전적으로 부모와 독립되지 못하면 결혼 생활이 힘들 수도 있다는 말.


그 얘기가 엄마 입에서 나온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가 힘들어질 때쯤 어머니가 그가 번 돈을 관리하고 계셨고, 그의 돈을 아버지 사업 일으키기 위해 쓰시고 결국 채워주지 못하셨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모님 두 분은 본인들 노후대책까지 다 해결하시고 자수성가했던 분들이라 우리에게도 일찍부터 재테크를 시작하게 하였고, 재혼이라는 것을 리스크라고 생각하셨기에 각자의 돈은 각자의 것이라 여기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더욱이 그의 집안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랬기에 결혼 후 저렇게 의존적인 성향의 부모님이시라면, 게다가 금전적 독립이 되지 않은 분이라면 곧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인데 나는 거기까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 걱정은 내가 아닌 엄마의 염려인데, 마치 내 걱정인 것처럼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키웠지만 정작 조부모 손에서 자랐고, 정체성에 혼동이 와서였을까. 나는 내 인생을 개척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척, 무엇이든 재혼가정으로 만난 계부의 자식들보다 잘하는 척 살았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나는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고 엄마는 미안함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줘서일까. 내가 계획한 삶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냥저냥 던져놓고 방관하듯 흘러가는 대로 움직여지는 대로 그렇게 피해의식을 자처하며 줏대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를 선택한 건 나였지만,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에도 ‘엄마’가 있었다. 그가 좋은 건 엄마 같아서, 그가 좋은 건 엄마처럼 길을 만들어 줄 것 같아서, 그를 택한 건 엄마를 떠나 혼자 살아갈 때 내가 갈 길을 잘 알려줄 것 같아서 등의 이유였다.


기승전결 내 인생은 ‘엄마’ 구나.


그런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혼 준비 내내 나는 그의 단점만 보기 시작했다. 지랄 맞은 심통이 도진 것이다. 돈 앞에서 간사 해진 것이었다. 그 당시엔 그의 집보단 우리 집이 조금 더 부유한 줄 알았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이 다인줄 알았던 내 착각 때문이었다. 훨씬 부유했던 건 그였다. 청춘 시절을 항해사로 보낸 그에겐 그 당시 또래들이 벌 수 없는 돈을 벌었던 것도 그였고, 가세가 기울어 힘들 때도 그는 그가 번 돈으로 가세를 일으켰다.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나보다 부유한 그를 나보다 잘난 게 없다는 아주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이다.


신혼집을 구하고, 엄마가 내게 증여해 준 돈을 합쳐 계약을 했을 때도 마치 일확천금을 해준 거처럼 나의 콧대는 하늘을 찔렀었다. 반반씩 하기로 한 집에 엄마가 가전을 보내줄 때도 생색을 냈었다. 결혼식을 할 때도 우리 쪽에서 식장을 잡았고, 식대를 다 지불했을 때도 금수저 집안의 자식처럼 우쭐댔었다.


원래 자식들 결혼시킬 땐 자기 자식이 제일 잘났기에 부모들은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적어도 결혼하는 당사자들은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중간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늘 우쭐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작 살아가야 하는 건 우리고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건데, 돈으로 사람의 인생까지 판단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나와 결혼 준비로 다툼이 있을 때였다.

“그놈의 돈! 돈! 돈!”


그는 돈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돈 없는 본인을 내가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소리를 지른 것이다. 내가 좋아한 건 그였는데, 그도 내가 좋아서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건데, 옭아매고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던 나였다. 너는 나랑 결혼을 하고 싶은 게 맞냐고 물으면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았고, 긴 상의 없이 무턱대고 그의 집으로 내려간 꼴이 되었다.


그는 늘 모든 사건을 천천히 신중히 생각하는 편이고, 나는 너와 내가 뜻이 같다면 추진하는 불도저 스타일이라 어느 지점에서부터 서로 쌓여있던 감정이 돈 앞에서 터진 것이다. 상처가 되는 말들이 몇 초 간격으로 가슴에 꽂혔고, 파혼하자. 없던 일로 하자 라는 결론도 나왔었다.


싸움의 시발점은 나였다.

결국 가해자도 나, 피해자도 나였다.


나는 모든 포커스가 엄마였다. 엄마의 말은 독일 때도 있었지만 나는 엄마의 말에 맹신했다. 그 마음은 내가 홀로서기를 하려고 할 때, 독이 되었다. 엄마가 한 말을 내게 적용했어야 했다. 나는 그 화살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적용했고 우리의 관계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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