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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Mar 08. 2024

Ep.15 남 탓 만 하고 산 경력 30년차 입니다.

유기된 나를 지키는 건, 나라는 사실을.


나를 지키려고 시작한 일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생각이던 나쁜 생각이던 이로운 생각이던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내가 나를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쓰다가 좀 더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일. 취미라 적고 안식처라 읽는다.


브런치스토리나 블로그에 글을 적으면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여 다 풀어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서 워드에 적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아직 나는 그래도 브런치가 편하다. 기간으로 치면 6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 쓰는 행위는 잘 모르겠다. 잘 쓰기 위해선 역시 꾸준한 연료가 필요하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66일 동안 매일 글 쓰는 챌린지를 딱 한번 완주한 적이 있지만, 쓰는 것이 매번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다시 읽으면 지저분한 문장도 많았다. 오히려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쓰는 글도 있었다. 많이 읽으면 연료가 된다는 말에 뭐든 읽었다. 하지만 읽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방에 앉아 누군가의 세계를 빌리는 있는 일이 싫고 어려울 리가.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느꼈던 모든 것을 두서없이 나열하고 여기저기 흐트러 놓고 나열해 보면서 제 3자의 시선에서 살펴보았다. 챌린지도 잠시 멈추고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으면서 모든 문을 닫고 내게 집중했다.


그동안의 나는 내 감정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남의 복잡한 감정은 읽어서 뭐 하나 하는 마음이었다. 유튜브로 도피해도 마찬가지였다. 30초짜리 짧은 영상도 늘어지기 시작하면 우측 방향키에 손이 올라가 있다. 15초씩 미래를 볼 수 있는 마법의 버튼. 내 미래도 저런 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어느샌가 관에 누워있는 나를 보게 될까 봐서 가끔 두려웠다. 글쓰기 파업을 한지 몇 개월이 흘렀을까 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있는 하루 한 줄 감사하기 방에 들어가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파업은 불과 몇 개월 만에 끝났다. 감사할 일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글 쓸 연료도 이렇게 넘쳐난다는 걸 느꼈다. 주변의 발견, 관찰을 갈고닦아 광택을 낸 감사일기는 일기라기보단 관찰기에 가까웠다.


복잡했던 마음과 악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은 마치 테레사수녀나 득도를 한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이 마음이 감정이 또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제 3자가 되어 바라보고 나쁜 일도 감사하는 시선으로 바꾸니 내 자신이 편해졌다. 아직 용서하지 못한 관계와 앙금들은 남아있지만 역시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앞으로 무엇을 쓸지,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몇 년이 지나든 나는 여전히 쓰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글을 쓰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글이 어떻게 인생까지 바꿀까 콧방귀를 뀌었지만, 이제 알 거 같다. 유기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어 줄 사람은 나라는 사실을. 버려졌다고만 생각하고 미워할 사람과 미워할 일을 만든 건 나였다. 나를 보듬어주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이제 다음 스텝은 불특정다수 중 ‘너’를 안아보자. 그리고 나아가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오는 사람에게도 따뜻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온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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