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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Mar 28. 2024

Ep.16 살면서 수십 번씩 과거로 다녀옵니다.

그냥 문득 엄마가 생각나서 쓴 글.

엄마와 살갑게 대화를 나누게 된 건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오늘.

방금 전.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눌렀다가 두어 번 울리는 통화연결음 소리에 얼른 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엄마에게서 온 카톡.


"뭔 일 있어?"

"아닝 잘못 눌렀어 졸다가 ㅋㅋ"

"응 그럼 잘 자"

"응 그럼 잘 자..."

"응 그럼 잘 자................."


"엄마도.."


이 말이 내겐 오늘 되게 따뜻하다.

처음으로 엄마랑 이렇게 살갑게 메시지를 나눈 것 같다.








미국의 작가 나사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과거는 죽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더 생생한 것일수록
조용하게 잠재워져 있다가 다시 살아난다."




매우 중요하고 더 생생한 것.

내 기억 속에 그 시기는 아프다고만 생각했다.

여전히 아프고 꺼내고 드러낼수록 구멍이 뚫리고 아물지 않는 흉터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 흉터를 꺼내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아프다. 아팠다. 여전히 아프다고 하고 있으니, 오히려 반대로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처음 이 공개적인 곳에 내 마음을 드러내는 게 치부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게 약이 된 걸까.

아니면 내 기분이 그냥 단지 요즘엔 좀 좋아서 그렇게 드는 단면적인 감정인 것인가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

정말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아마 한 달도 넘는 시간을 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다 지나간 일들을 그리고 오지 않을 날들을 기다리는 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있어 '오지 않을 일들'은 무엇일까?

나에게 있어 '다 지나간 일들'은 무엇일까?


있어+ability(능력)의 합성어인 "있어빌리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나의 가면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은 사실은 허울뿐이고, 나는 있어빌리티가 엄청 뛰어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정할 수 없는 과거. 내 현실을 부정했던 것을 '인정'으로 바꾸려 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있는 걸까. 마냥 '나는 반짝이고 싶어! 나 여기 반짝이게 빛나려고 애쓰고 있잖아!'라고 발버둥 치고 소리치며 살던 삶을 그냥 무던히 흘려보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버리니까 편해지기 시작한 건가.


엄마에게 잘 자라는 인사도 건넬 수 있고 말이다.

어찌 됐든 조금은 마음 편해진 내가 내게 스스로 자문하며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새삼 나 자신이 예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드는 밤. 앞으로는 지나간 일들을 훌훌 털고 현재를 살아가길 소망해 본다.


아직 꺼내지 않은 치부들과 상처들 묻어놓고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있다.

그것은 마치 절대 열면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 같아서 꺼내어 다시 마주하는 순간 또 무너지고 넘어지고 엎어져서 한동안 일어나기 힘든 시간을 마주할 것 같아 아직은 열 수 없지만, 그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무던해질 수 있게 오늘을 잘 보살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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