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하이드와 마주한 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의 시선에서 바라본 심연

by 쥰쓰

강렬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공연을 좋아하시나요?

2025년 4월 13일,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왔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신한카드 블루스퀘어에서 신성록 배우의 지킬/하이드로 만났습니다. 공연은 단순한 명작 감상의 기대를 넘어, 관람 이후 지금까지도 제 내면 깊은 곳에 질문을 남기며 사유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밤중, 나도 몰랐던 ‘또 다른 나’의 그림자와 조우한 듯한 체험이었습니다.


“무대 위의 한 인물은 곧 나의 분신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외면해 온 어떤 진실과 아주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주하게 되었죠.”

〈지금 이 순간〉, 욕망의 자기 대관식

뮤지컬의 대표 넘버 〈This is the Moment〉는 흔히 위대한 결단의 찬가로 기억되지만, 실상은 인간 욕망의 가장 위험한 경계선을 건너는 순간을 노래합니다. 이 곡은 지킬 박사가 이성의 이름으로 내면의 금기를 열어젖히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파멸로 걸어 들어가는 자기기만의 서사이자 과학적 오만의 선언입니다.


신성록 배우는 이 장면의 양가성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그의 눈빛은 확신보다는 고독했고, 목소리는 결단보다는 조심스레 무너지는 논리의 마지막 발버둥 같았습니다. 그 순간의 웅장한 선율은 관객에게 인간 존재의 이중성과 파괴성을 동시에 목격하게 했습니다.

“이 순간은 단순한 성공의 송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성의 외투를 입은 욕망의 대관식이며, 우리 안의 '하이드'가 탄생하는 장면입니다.”



원작에서 무대로: 심리에서 드라마로

〈지킬 앤 하이드〉는 원작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매체적 특성에 따라 다른 전략을 택합니다. 소설은 일기와 증언 형식의 다층적 구성으로 ‘심리적 미스터리’를 추적하지만, 뮤지컬은 이 분열의 갈등을 음악과 무대 장치, 인물 간 드라마로 극대화합니다.


특히 창조된 여성 캐릭터 루시와 엠마는 지킬/하이드의 양면성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엠마는 사회적 규범과 이성적 이상을, 루시는 욕망과 본능의 은밀한 표상을 담당하며, 이 둘은 지킬과 하이드의 정체성 투쟁을 상징적으로 외화 합니다.


뮤지컬은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심리 내면의 긴장을 관객의 체감으로 확장시키며, 단지 한 개인의 자아분열을 넘어 현대인이 겪는 ‘도덕적 긴장 상태’를 드라마로 구현합니다. 이는 일종의 ‘관객 중심 참여형 서사’로, 우리는 무대의 관찰자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반사시키는 주체가 됩니다.

“루시와 엠마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지킬과 하이드의 ‘관계성 속 자아’를 보여주는 메타포입니다.”

왜 우리는 하이드에게서 우리를 발견하는가

〈지킬 앤 하이드〉가 시대를 넘어 반복해서 공연되는 이유는, 그 중심에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한가? 악한가?'

혹은 그 둘은 정말 나눌 수 있는 것일까?


하이드는 단순한 악당이 아닙니다. 그는 억눌린 욕망, 사회적 페르소나 뒤에 감춰진 자아, 즉 무의식의 발현입니다. 현대인의 심리 구조로 보자면, 하이드는 '억압된 원초적 자아(id)'이며, 지킬은 '초자아(superego)'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이 둘의 충돌은 심리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한 갈등 구조입니다.


뮤지컬 속 하이드는 그러한 충돌의 상징이자, 우리가 외면해 온 진실의 얼굴일지 모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특정 시대의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내면에 지닌 ‘이중성’을 응시하게 합니다.

“하이드는 ‘타자’가 아닌, 우리가 끝내 인정하지 못한 자기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선택 앞에 서 있나요?

〈지킬 앤 하이드〉는 인간의 ‘윤리적 모멘텀’을 집중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어떤 결정은 우리의 선의를, 또 어떤 선택은 은밀한 욕망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지금 이 순간’을 지나며, 작고 큰 자기 선택의 갈림길에 놓입니다.


이 작품이 강하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무대 위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율성과 도덕적 판단,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충동 사이의 경계에서, 우리 모두는 지킬이기도 하고 하이드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비극은 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인지하고도 외면하는 선택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이제 여러분께 드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나요? 그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할 것은 낯선 괴물이 아닌, 오래도록 외면해 온 또 다른 나일지도 모릅니다.


그 얼굴과 마주하며 나누는 조용한 대화, 그곳에서 진짜 ‘자기 이해’가 시작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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