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 리뷰
올해는 유독 인상깊은 호러 영화가 관객을 찾고 있다. 상반기만 하더라도 <오멘: 저주의 시작> <악마와의 토크쇼>가 있었고, 하반기에는 <이매큘레이트>를 시작으로, 다수의 호러 영화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 한 편이 바로 아르헨티나에서 건너 온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다. 개봉 전 부터 화제를 모으며 평단과 장르팬 들이 무한 지지를 보낸 영화는 오컬트를 외피로 사용하면서 섬뜩하고도 피할 수 없는 잔혹극을 펼친다. 소리도 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수위는 가히 최상급.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수위보다 더 무서운 건 절망적인 아르헨티나의 현실이다.
외딴 마을 한 농장에서 참혹한 시신이 발견된다. 인간도 맹수의 짓도 아닌 것 같은 시신의 모습을 본 페드로(에세키엘 로드리게스)와 하이메(데미안 살로몬) 형제. 이후 사건의 실마리를 찾다가 마을 외딴 곳에 숨어 지내는 한 가족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악령에 빙의된 후 온 몸이 부패해가고 있는 한 남자가 누워 있다. 그의 엄마는 당국에 신고를 했지만, 방치했다는 이야기를 두 형제에게 말한다. 그 시각, 자신의 농장 지역에서 일어날 불길한 일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농장주 루이스(루이스 지엠브로우스키)는 형제들과 함께 악령에 잠식된 남자를 트럭에 실어 멀리 치워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악령의 봉인이 풀려버리고, 두 형제는 황급히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최근 핫한 호러 영화 전문 제작 배급사 셔더(Shudder)가 만든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장르로 구분하자면 오컬트라고 할 수 있다. 악마 빙의 자체가 주는 섬뜩함, 그리고 인간이 가진 죄의식을 건들면서 나약해지게 만들고 무력감을 갖게 하는 악마의 모습은 <엑소시스트> 이후 제작되는 오컬트 영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가보면 영화는 보란듯이 경로이탈을 한다.
악마와 신부의 대결로 치닫는 다수의 오컬트 영화와 달리,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계속해서 확인시킨다. 어쩌면 <엑소시스트> 보다는 결로 따졌을 때는 <유전> <곡성>과 더 가까워 보인다.
연출을 맡은 데미안 루냐 감독의 영화를 보거나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이 작품을 마주한 이들이라면 생경하고도 거친 공포를 만끽할 수 있다. 영화제를 제외하고 아르헨티나에서 건너온 호러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기존 할리우드 호러 작품과는 다른 느낌을 전하는데,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포스터에서 보이는 붉은 바탕에 도끼를 든 한 여성의 모호하면서도 위태로운 모습은 이를 잘 나타낸다.
영화의 차별화 포인트 중 하나가 언제나 곁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를 불러내지 않기 위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등 사용을 금지할 것, 동물을 가까이 하지 말 것, 그것의 이름을 부르지 말 것, 절대 총으로 쏘지 말 것,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 등이 있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어길 시 인간은 악마의 먹이가 된다. 감독은 이런 금기 사항을 정해놓고, 하지 말라면 꼭 하고야 마는 인간 본성에 기대어 그들의 말로를 보여준다. 인물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기심과 죄의식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 페드로 또한 가족에게 지은 죄를 안고 사는 인물인데, 악마는 계속해서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고, 괴롭히고, 시험에 들게 한다.
감독은 빛을 활용해 보이지 않는 공포도 선사한다. 첫 번째 규칙인 전등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을 따르기 위해 주인공들은 어둠속에서 최대한 빛을 사용하지 않는다. 종반부 페드로의 둘째 아들을 찾기 위해 하이메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헤드라이트 on/off를 반복한다. 이 때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착시 효과가 나오는데, 서서히 밀려오는 공포감과 높은 수위의 장면은 극강의 공포감을 전한다. 영화는 금기 규칙을 어길 때 보란듯이 파격적으로 선보이는 선정적 장면들로 공포 강도를 세게 가져가며 이들이 관통하는 지옥도를 보여준다.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테크닉적으로 관객에게 공포감을 확실히 전달하는 영화다. 스포일러라서 밝힐 수 없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가진 공포의 힘은 무한하게 커지는데, 그 동력은 현실 공포,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아르헨티나 사회를 겨냥한 현실이다.
어느 해외 영화제에서 제작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은 감독은 아르헨티나에서 농장 살충제가 광범위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뉴스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농민의 건강을 무시한 채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의 무관심과 잘못된 행태, 이런 마음이 만연된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자유롭게 퍼질 수 있는 잠복한 악에 대해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감독의 연출 계기를 들어보니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가 남긴 “장면에 대한 ‘묘사’보다 ‘설정’이 훨씬 더 공포스럽다”, 뉴욕타임즈가 전한 “공동체, 가족,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을 가장 어둡고 시의적절하게 그려낸 우화”라는 한줄평이 더욱 와닿는다.
신고를 해도 마을의 이미지가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무마한 경찰, 자신의 농장에 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역에 옮겨다 놓는 농장주의 이기심, 자신이 버린 가족을 뒤늦게 지키고자 했지만, 도리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가장의 모습은 사회 전체의 균열이 심각해지는 아르헨티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 하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페드로가 지켜야 하는 가족은 자폐증을 가진 첫째 아들과, 나이 어린 둘째 아들, 노모로 사회적 약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인물 조합 자체가 감독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극 중 “악은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악을 사랑한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말처럼 아이들은 악마의 표적이 된다. 아이들은 무해하고 순수한 존재이면서도 무지한 존재로, 영화는 농장 살충제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기업의 손과 발이 되어 노동력만 제공하는 이들을 아이들로 표현한 듯하다. 표면적으로 악마의 먹잇감이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불안하고 섬뜩한데, 여기에 숨겨진 의도를 알게 되면 그 강도는 더 세집니다. 이런 점에서 후반부 끊임없이 몰아치는 공포와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소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과연 무엇을 본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올 하반기를 멋지게 장식할 호러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호러 영화는 그 시대의 가장 두렵고 불안한 것을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본다.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얼룩져가고 있는 세상과 그에 따른 공포를 이 영화로 만나보시라. 악의 어둠에 점점 먹혀들어가는 극강 호러를~~
덧붙이는 말: 수위가 정말 세다. 기존 할리우드 호러 영화에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극강의 수위가 펼쳐진다.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들이 나오는데, 이를 뒤에서 조장하는 악마의 모습이 섬뜩하다. 마치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 앞에 무릎꿇고야 마는 인간의 나약함이 더 좌절감을 안긴다. 멈추지 않는 사회 혼란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아르헨티나 인들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평점: 3.5 / 5.0
한줄평: 악마가 활개치는 현실 사회가 더 큰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