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오> 리뷰
태초부터 인간은 별을 바라보면 궁금해 했죠. 우리는 혼자일까?(칼 세이건)
<엘리오>는 『코스모스』를 집필한 칼 세이건의 이 말에 대한 픽사만의 답을 한 작품이다. 외톨이로 지내는 소년의 특별한 여정은 외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사랑하는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이들이 어디엔가 살아 숨 쉬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걸 일깨워준다. 이번에도 픽사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 매력적인 캐릭터를 집어넣고,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위로와 공감 포인트를 넣어 끝내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아주 먼 곳에서 보내온 시그널이 마침내 수신했을 때의 쾌감이랄까. 픽사가 픽사했다는 말로 매듭짓기엔 이 영화는 특별하고 소중하다.
엘리오(요나스 키브레브)는 외톨이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부모 대신 우주 관련 일을 하는 고모 올가(조 샐다나)와 살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연히 외계인의 존재를 믿게 된 이 소년은 매일 요상한 모자를 쓰고 해변에 누워 외계인들의 납치를 기다린다. 간절히 바라면 꿈은 이뤄진다고 했던가. 고모의 일터에서 작은 소동(?)이 있은 후, 엘리오는 의문의 외계인들에게 소환된다. 그리고 엉겁결에 지구 행성 대표가 된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을 갖게된 엘리오는 어떻게든 이곳에 남고자 노력하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 글로든(레미 에드걸리)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곧 우주를 위험에 빠뜨릴 위기가 닥쳐온다.
<엘리오>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소년의 모습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SNS 등 초연결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 늘어난 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수가 아닌 외로움과 우울증을 더 느끼는 사람들의 수다. 그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기술의 발전이 되려 개인화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배가 된다.
극 중 엘리오 또한 원인은 다르지만 외롭고 우울하다. 소속감을 느꼈던 가족이 없어진 후,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어려운 이 소년은 혈연 간인 고모와도 소원하다. 더불어 그 지역에 사는 또래 친구들과도 잘 지내지 못하면서 이 지구상에는 자신과 연결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런 이유에서 저 멀리 우주 어딘가 자신과 잘 맞는 이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외계인을 기다린다.
그 바람 때문인지 몰라도 커뮤니버스에서 생활하는 엘리오는 한 가지 실수를 범한다. 바로 지구 대표 행세를 한다는 것. 어린 시절 이사나 전학을 갔을 때 새로운 커뮤니티에 속하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숨겼던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기 위해 좋은 모습만 SNS에 남기는 것처럼, 엘리오도 또다시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한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에 또 거짓말을 하고 자신이 아닌 남을 만족시키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엘리오는 결국 사달이 난다.
이 과오를 겪은 엘리오는 많은 것을 느끼며 한 단계 성장한다. 누군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아닌 나 자체의 모습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부족하고 못난 모습이 싫지만, 그 자체를 인정했을 때 진정한 용기가 생기고,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후반부 우주적 위험을 막기 위한 엘리오의 고군분투는 소년의 멋스러운 성장 과정을 잘 보여주는데, 이는 자신을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깨달음도 전한다.
픽사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치트키는 ‘가족애’. <엘리오>에서도 이 가족애는 유효하다. 극 중 엘리오는 부족하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로 나온다. 이런 조카를 보살피며, 살아가야 하는 고모 또한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키우기 위해 우주인이라는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그녀는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는 부모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그만큼 고모는 조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뒤늦게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이들의 모습은 찐한 감동을 전한다. 더불어 엘리오의 친구 글로든을 사랑하는 폭군 아버지 그라이곤(브래드 가렛)의 속마음 또한 잊고 있었던 가족애를 느끼게 한다. 특히 눈물 나는 건 계속 사랑한다는 시그널을 보냈지만, 이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주파수가 맞지 않아 닿지 못했던 사랑의 감정이 엘리오와 고모, 글로든과 그라이곤 등 서로에게 수신되면서 전해지는 감동이다. 여기에 후반부, 우주에서 위험에 처한 엘리오와 고모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이 등장하면서 가족애는 인류애로 그 영역을 확장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주요 소재인 ‘시그널(신호)’라는 그 의미를 가족애와 결부시켜 확장하고, 여타 픽사 작품과 사뭇 다른 가족애를 전한다. 부모라면 자식들이, 자식이라면 부모 생각이 절로 생각날 정도.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면 ‘사랑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혼자 본다면 멀리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 드리게 만든다.
픽사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세계관 구축이다. <소울>의 사후세계, <엘리멘탈>의 엘리멘탈 시티만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픽사가 단순히 새로운 이야기에 걸맞은 세계관을 잘 만들어서 박수를 받는 건 아니다. 그 상상력의 기반엔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현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엘리멘탈 시티 경우, 다인종이 어울려 사는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오>의 주 무대인 우주, 그리고 엘리오가 활동하는 커뮤니버스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인 지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각 생김새와 문화가 다르고, 이를 존중하고 화합하는 자세는 UN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정상들의 모습과도 흡사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 대표 행세를 하는 엘리오의 모습은 그저 귀엽기만 하다.
이런 세계관을 더 돋보이게 하는 건 역시나 캐릭터와 배경 디자인에 있다. 바닷속 생물들을 연상케 하는 각 행성 대표 캐릭터들은 물론, 형형색색 물들인 배경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물 흐르듯 중력에서 벗어나 유유히 흐르는 캐릭터들의 움직임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눈호강을 제대로 한다.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글로든이 있다. 보면 볼수록 이 귀여운 외계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엘리오 뿐만이 아니다. 관객들 또한 빼앗길 공산이 크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와 마이크처럼 생긴 건 무섭게 보이지만, 실제 너무 귀여운 친구인데, 엘리오와 찰떡궁합으로 잘 논다. 엘리오와 글로든이 함께 커뮤니버스에서 놀며 뛰어다니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커뮤니버스에서 엘리오에게 도움을 주는 ‘우우우’ 캐릭터도 눈에 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캐릭터는 장착한 귀여움은 물론, 보기보다 빠른 일 처리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극 중 엘리오를 향해 고모가 이런 말을 한다. “너는 특별해, 엘리오. 특별하다는 건... 때때로 외롭게 느껴질 수도 있어”. 우리는 모두 저 하늘에 반짝이 별처럼 특별한 존재다. 그 특별함에 잠시 외로울 수 있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멀리서 그 특별한 빛을 가깝고도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론 표현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가족, 친구 등 곁에 소중한 이들이 있다면 더 이상 외로워하지 말자. 용기 내자. 그리고 서로 아무 말 없이 포옹하자. 엘리오처럼.
덧붙이는 말
1. 픽사 영화의 완성은 쿠키. 엔딩크레딧까지 꼭 보길 바란다.
2. 더빙 버전에 <극한직업> 류승룡이 카메오 더빙 참여한 건 안 비밀 ㅎㅎ
3. 속편, 리메이크가 아닌 오리지널 영화라는 점에서 <엘리오>가 가진 의의는 크다.
사진 출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평점: 3.5 / 5.0
한줄평: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라는 픽사의 따스한 우주적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