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소설가의 일’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

by readNwritwo

문학은 불가피하다. 인간이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말과 행동이 형편없는 불량품이기 때문이다. 말이 대개 나의 진정을 실어나르지 못하기 때문이고 행동이 자주 나의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가장 친숙하고 유용해야 할 수단들이 가장 치명적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린다. 왜 우리는 이 모양인가. 개별자의 내면에 ‘세계의 밤’(독일 철학자 헤겔)이 혹은 ‘죽음충동’(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이 있기 때문이다.

부분 안에 그 부분보다 더 큰 전체가 있다는 역설, 살고자하는 것 안에 죽고자 하는 의지가 내재하고 있다는 역설 때문이다. (내가 부정해야만 하는 혹은 나를 부정하려 드는 ‘그것’을 독일관념론과 정신분석학에 기대어 자기-관계적부정성이라 부를 수 있다.) 덕분에 말은 미끄러지고 행동은 엇나간다. 과연 나는 내가 아닌 곳에서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

그러니 내 안의 이 심연을 어찌할 것인가. 그것의 존재를 부인하는 일(신경증)은 쉬운 일이고 그것에 삼켜지는 것(불열증)은 참혹한 일이다. 어렵고도 용기 있는 일은 그것과 대면하는 일이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바라보겠지만(독일 철학자 니체) 그 대치 없이는 돌파도 없다.(p.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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