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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Sep 15. 2018

2058년의 '지'  #01


1. 일상 1

#히키코모리  #스타크래프트 #수어사이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조금의 빛. 

3단으로 접힌 매트리스와 그 위에 뭉뚱그려 올려진 이불. 

책상, 컴퓨터, 선풍기, 자그만 책장, 오래된 옷장.  

방안을 구성하는 품목들은 단출하지만 

틈틈이 잡다한 것들이 메우고 있어 더욱 복잡해 보인다.  

조용한 방안에 도드라져 들리는 키보드 자판과 마우스 클릭 소리.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에 시선을 빼앗긴 건 배틀넷 ID - [SlayerBox]




<바로 나다> 



- 시저 탱크의 불꽃, 마린들의 아우성, 전장의 카오스..... -





모니터 아래 놓여 있는 휴대폰. 

- 지이잉 -

동과 함께 디스플레이에 튀어나온 문자. 

휴대폰의 어그로에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에 몰두한다. 


- 지이잉 -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는다. 



휴대폰에 쌓여 있는 메세지들.



------ 게임 채팅 ------

[Nida78] - 간만에 화창한 날씨다 
[Nida78] - it is a good day to die

[SlayerBox] - 말뿐인 ㅅㄲ...


<2년간 배틀넷 상대 전적 438승 326패>


[Nida78]  - 우리도 배그나 해볼까
[SlayerBox] - 죽는다는 녀석이 그건 해서 뭐하게 
[Nida78]  -
진짜 재밌으면 생을 좀 연장할 수 있지 
[SlayerBox] - 부탁할게
[SlayerBox] - 연장하지마


<이 녀석의 요즘 관심사는 수어사이드>






2 화성인과의 조우

# 랜덤 채팅 #2058년 #화성인 #개또라이



- 띠링~ - (휴대폰 알림음)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SlayerBox] - 우체통 왔다. 지가 이주한 화성인이란다
[Nida78] - 개 또라이네


 ..............게임중.............

 ..............게임중............. 

[SlayerBox] gg

[Nida78] - gg

[Nida78] - 넌 스타 7년하고도 이걸 못 막냐.... 홍진호 같은 ㅅㄲ 
[SlayerBox] - 7년이라니   

[SlayerBox] - 군대 갔다왔는데.... 

[Nida78] - ㅋㅋㅋ ㅉㄸㅅㄲ


문자를 확인하고, 

차분히 소리내 읽어가며 답장을 보낸다.


다시 차분히 소리내 읽어가며 답장을 보낸다

<아차... '아직' 이라니....>


- 얼씨구?


쓰다 지운다.






3 일상 2

#외출 # 반복되는 연극 #도시락 



AM 02시 03분 

조심스럽게 방문 손잡이를 돌린다. 

까치발로 조그만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향한다. 

안방의 문은 마치 벽인 것처럼 굳게 닫혀 있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지폐 5천 원을 집어 든다.


- 철컥 -  

잠금장치를 풀고, 현관문을 천천히 연다.

- 끼이익 - 

모자를 조금 더 눌러 쓴다.


건물에 걸쳐진 달은 가로등 불빛과 닮아있다. 

그 빛을 따라 골목을 내려간다.



- 띠리링 -

편의점 문이 열리면 연극이 시작된다. 

카운터의 점원을 지나친다. 

나도 점원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쓴다. 

망설임 없이 돈가스 도시락을 집어 들고 5천 원과 함께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다.   


점원은 내게 첫 번째 대사를 읊는다

- 봉투 드릴까요?  


이젠 내 차례 

- 아니요 


카운터 한편에 보이는 문제집. 

거스름 돈 500원을 건네 받는다. 


전자렌지가 작동하는 동안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줄어드는 숫자에 집중한다. 



- 띠띠띠 - 

도시락을 꺼내 가져온 비닐봉지에 담고 문으로 향한다.


그녀의 차례  

- 안녕히 가세요  


편의점을 나오며 언제나처럼 난 마지막 독백을 내뱉는다.  

- 미쳤네 야간에 여자 알바를 쓰다니 


방에 돌아와 동전을 투명한 통에 집어넣는다. 

나는 헤드폰을 끼고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집어 먹는다.  

어두운 방 안에 모니터 불빛만 번쩍인다.





4 화성인의 정체

#화성인의 일상 # 같은 종족 #그놈 or 그녀?





[Nida78] - 그 화성인은 편의점 알바에 고기집 알바, 투잡 쓰리잡을 뛰지만 학자금에 방값 내기도 벅찬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거야 

[Nida78] - 게다가 우리 같은 애정결핍에 대인기피까지... 

왠지 편의점 점원이 떠올랐다.


[Nida78] - 결국 증상이 더 심해지면 현실을 부정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자신만의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거야 

[SlayerBox] - 그럼 진짜 미친 건가... 

[Nida78] - 글쎄...하지만 무작위 대상에게 보내지는 앱을 사용한 걸 보면 현실을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Nida78] -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걸 아는 거고,  

[Nida78] - 어쩌면 자신도 이게 다 말도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일 수 있는 거지 

[SlayerBox]- 근데 왜 꼭 남과 공유해야 하는 거지? 망상을 혼자 즐기면 더 편할 텐데 

[Nida78] - 더욱 생생해지니까 

[SlayerBox]- ?? 

[Nida78] - 인간의 감정이란 건 남과 함께 하면 더욱 증폭되는 법이지 

[Nida78] - 축구도 혼자 보는 것보다 같이 보는 게 더 재밌거든 

[SlayerBox] - 음.....왠지 설득력 있네 

[Nida78] - 결국 고통스런 현실을 잊을 만큼의 강력한 환상을 위해 너같이 잘 받아주는 찌질이가 필요한 거야 

[SlayerBox] - ㅈ까 

[Nida78] - 아마 우리와 같은 종족일 듯 ㅋㅋ 애정을 가지고 대해줘

[SlayerBox] - 확실히 느낌이 너랑 비슷하네

[Nida78] - 그리고 진짜 여자라면...  

[Nida78] - 찌질이 망상 커플의 탄생이지. 

- 음....

[SlayerBox] - Who wanna a piece of meat,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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