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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Oct 06. 2018

2058년의 '지' #04 <완>

12 2018년 7월 8일

#마지막



 무더운 날. 

구름 낀 하늘. 


- 꽃 향이 좋네 ㅎㅎ 

민들레 꽃을 든 노인이 말했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그녀와의 약속이었다. 

- ....시간 됐네요 

난 노인의 말을 흘려보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 부탁드릴게요 


노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꽃을 든 노인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누군가는 노인의 앞을 지나가고, 누군가가 내 앞을 지나갔다. 


휴일의 오후,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왜 하필 이런 날을 골랐을까 후회했다.  

<날짜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는데....> 

<장소도 아무데나 상관없는데....> 

<대체 여기서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 


가슴이 갑갑했다.  

빨리 박스 같은 방안으로 숨고 싶었다. 

눈을 질끈 감고 방안의 풍경을 상상했다. 

구겨진 이불, 널브러진 옷가지, 먼지 쌓인 키보드, 그리고 창 너머의 벽돌벽. 


<그냥 돌아갈까....> 


눈을 뜨고 노인을 바라봤을 때 그의 앞에 한 여자가 꽃을 들고 서 있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내 또래의 그녀. 


<눈에 먼지가 들어간 걸까, 거리가 멀어서일 수도...> 

왠지 그녀의 모습은 흐릿해 보였다. 

그녀와 노인이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역시... 여자였구나


'지'는 웃고 있었다. 

<왜 웃지? 기분 나빠하거나, 놀랄 줄 알았는데....> 


그녀와 노인은 무언가 얘기를 나눴다 

<뭐라고 하는데.... 멀어서 전혀 들리지 않아> 


난 노인과 그녀 외에 모든 풍경과 소리가 지워지는 것을 느꼈다. 

흐린 날씨에도 왠지 그녀의 영역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바람에 나풀대는 그녀의 머릿결.

그녀의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진 손.  

그녀의 웃고 있는 입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를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모습이 한결 또렷해졌다. 

한걸음, 또 한걸음. 


그녀의 얼굴이 점점 선명해지고, 

내 손이 그녀에게 닿을 듯 가까워졌다. 

노인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미세하게 나를 의식했다.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벤치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음을 곧 깨달았다. 

노인과 함께 있던 그녀는 사라졌다. 

모든 것이 그저 꿈처럼 느껴졌다. 

순간이라 느꼈던 시간은 50분이 지나 있었다. 


<내가 원한 게 이런 거였나?> 

<아무 의미 없는 날들의 연속> 

난 헛웃음을 지었다. 


<방문을 나서는 순간 난 바보가 된다> 

<모든 것이 실패했다> 


'지'는 그렇게 아무 상관도 없는 노인과 이야기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후 돌아갔다.


노인이 내 앞에 섰다. 

난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봤다. 


- '지'를..... 보셨나요? 

- 응?

- 그녀를 보지 못했어? 

- 예? 아뇨....

- 그녀가 뭐라고... 


노인은 살짝 웃어 보이며 내 옆에 앉았다 

- 그녀는 궁금해했어 

-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줬지 

- 나의 일, 나의 아이들, 나의 사랑, 이별. 내 40년의 이야기 

- 우린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지 

노인은 마치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듯 아련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웃는 모습이 참 예뻤어 

- 마치 그.... 첫사랑처럼


노인의 말에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나는 확인해야 했다. 


- 저에 대해선 얘기가 없었나요? 

- 내가 곧 자네가 아니었던가? 


- 그러니까... 그....   

- 주고 받은 문자에 대해서나.... 


노인은 말했다

- 너무 반가웠다고....  짧아서 아쉽다고

- 그리고 잠시 흐릿해진 순간..... 


- 사라졌어 


그녀를 그리는 노인의 눈빛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몸 안에 가득했던 뭔가가 모두 쏟아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 아..... 


'지'와 주고받은 문자는 모두 지워져 있었다. 


그녀가 존재했던 증거는 모두 사라졌다. 

나와 이 노인만이 '지'를 기억할 뿐이다. 


<이렇게 끝난다고?


난 노인을 붙잡고 다시 물었다 

- 또 다른 말은 없었나요? 


노인은 내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앉았던 벤치만을 바라봤다. 

- '지' 가 정말 저에 대해선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노인은 그저 나를 한번 바라보고 옅은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난 노인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 노인이 보인 미소는 내 것이어야 했다> 

<노인이 가진 그리움도 내 것이어야 했어> 


나는 노인의 표정을 살피며, '지'가 남긴 조그만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지'는 내가 아닌 이 노인을 기억하겠지...> 

<나는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다 ....>  


나는 스스로를 저주했다. 

나를 비웃고, 경멸했던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시간을 저주했다. 


<사라지고 싶다> 


<이곳에서> 






13 2018년 7월 8일 -2

#믿음 #거짓 #희망 그리고 절망



- 자네는 그녀의 말을 믿나? 

- ......?


- 40년을 거슬러 1억km를 지나 자네를 만나러 왔다고 하더군

- 굉장하지 않아?

- 예?


- 그녀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노인은 일렁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 그녀를 만난 건 내 생에 마지막 축복일 거야


노인의 눈빛에서 그가 살아온 시간과 감당해야할 시간들이 비춰졌다.

나는 그 순간 우리가 같은 것을 짊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노인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 아무래도 이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노인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노인이 건내준 것은


- '지'의 카드 -

- 두근두근 - 


- 두근두근 - 


- 2058년이라니 말도 안되는.... 


- 두근두근 - 


<다 알고 있었으면서....> 


- 두근두근 - 


<바보같이....>


- 두근두근 - 


- 이번엔 자네가 그녀를 만나러 갈 차례야

- 생일 축하해


노인을 바라볼 수 없었다.

- 뚝-뚝-뚝 -  


<나는.....> 


- 두근두근 - 

 

<정말 '지'가 기다린다면......> 


- 두근두근 - 


<정말 그런 미래가 있다면......> 


- 두근두근 - 


- 두근두근 - 



- 카드뒷면 -

<내 선택은 달랐을까?>






- 띠링~ -



[BGM] - Last Waltz -Engelbert Humperdinck -




0 epilogue








 생일 축하해 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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