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그림책 한권 ㅣ by 나무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었을 때>/요안나 콘세이요/ 목요일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었을 때』는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의 자전적 그림책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홀로 사시던 집을 둘러보며 썼을 것 같아요. 창문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던 아버지. 날마다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고, 고양이와 들녘을 산책하던 아버지. 노년의 아버지는 단촐한 살림을 꾸리며 점잖이 사셨습니다. 아버지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겠지요. 작가는 아이였던 아버지가 들판에서 뛰어 놀고, 청년이 되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때때로 나이든 아버지가 내쉬는 한숨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탄식과 함께.
“무한히 짧은 시간이구나!”
아버지는 빈 우편함 앞에 선 채 안개 속 까치밥나무를 보며 스스로가 작은 열매 같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빈 우편함은 작가에게 미안함입니다. 자주 찾아가지 못하고, 안부를 묻는 편지도 한번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까요. 그림책을 쓰면서도 얼마나 후회가 됐을까요. 이 책은 아버지의 삶에 대한 존경과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짙게 베여 있습니다.
칠십 혹은 팔십이 넘은 어르신들이 인생이 너무 짧다고 탄식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연애할 때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기만 했던 제가 벌써 사십 중반에 이르고, 첫아이가 곧 중학생이 되니 시간이 빠르다 걸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인생, 어떻게 보내야 하나 잠시 멈춰서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플 라이프』 라는 영화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일주일 전에 단 하나의 행복한 기억을 골라 영화처럼 재현해 줍니다. 천국에 한 가지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가게 하려고요.
영화에서 보면 좋았던 순간이 없다며 선택을 거부한 청년도 있었어요. 결국 청년은 세 살 때 혼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던 옷장 속의 어둠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삶 전체를 깡그리 잊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한 기억을 떠올렸어요. 어떤 할아버지는 결혼 40년 만에 아내와 처음으로 함께 극장에 갔던 날을 추억했습니다. 어떤 분은 첫 아이를 낳던 순간, 어떤 분은 출장 가서 아내가 주머니에 넣어둔 편지를 읽어보았을 때라고 했습니다. 한 여자는 엄마가 무릎에 자신을 눕히고 귓밥을 파주던 추억을 말했습니다. 자신의 볼이 닿던 엄마의 무릎 감촉과 그때의 엄마 냄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행복한 추억을 보면서 제가 덩달아 행복해지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일주일 다 지나는 시점에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이지만 한없이 따뜻한 장면이었어요.
제게도 좋은 추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때도 겨울이었어요. 남편이 전도사 때의 일입니다. 퇴근하는 길에 제가 평소 좋아하는 옥수수를 사 가지고 들어왔어요. 남편은 잠바에서 옥수수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을까봐 가슴에 품고 왔어.”
그날 받은 옥수수는 제가 받은 가장 따뜻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신기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됩니다. ‘행복한 시간’ 바로 그 옆에는 ‘함께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순간이 없다고 말한 영화 속 청년에게는 아마 사랑을 주고받았던 사람이 없었을 거예요.
주님께서 또 한 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해는 오늘이라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들의 빈 우편함을 채우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다 보면 한해도 그렇게 후회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 품 안에 안겨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시고 온정을 더욱 나누는 이 겨울 되시기를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