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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r 30. 2020

20. 야쿠시마 일주 드라이브

하지만 혼자 운전하느라 사진이 없다;;;

야쿠시마를 한 바퀴 빙~ 도는 일주 드라이브가 오늘의 목표!


야쿠스기 랜드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여전히 운전하기 힘든 산길을 내려왔다. 차 안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운전을 하는데도 진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어려운 운전이다. 왕복 1차선의 좁은 길에 커다란 관광버스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날 정도였다. 초보운전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가장 어려운 운전이었다. 하지만 약 한두 시간 뒤에 '가장' 어려운 운전 기록은 갱신된다.


오늘의 목표는 야쿠시마 일주 드라이브였다. 일단 지도 상으로 봤을 때 일주도로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야쿠스기 랜드 트래킹 - 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웠지만 - 을 마치고 나서 해안도로까지 내려온 다음 시계 방향으로 섬을 돌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는 야외온천 유도마리 온천. 사진 출처는 야쿠시마 관광협회 (http://www.yakukan.jp/)


어제 시라타니운스이쿄 트래킹을 했고, 오늘 오전에도 야쿠스기 랜드 트래킹을 했으니 근육과 관절들에 무리가 쌓여 있는 중이었고, 지도를 살펴보다가 온천을 하나 발견했다. 심지어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야외에서 온천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찾은 곳은 유도마리 온천(湯泊温泉).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작은 마을 안으로 핸들을 꺾어 들어와서 골목골목을 꺾어 바닷가까지 내려오면 주차장이 보인다.


어? 그런데... 정말 온천을 할 수 있는 걸까? 탈의실과 온천탕이 떨어져 있어서 탈의실에서 옷을 벗은 다음 2-30미터 정도 그냥 야외를 걸어가야 하는 구조다. 응? 그럼 옷을 다 벗는 게 아닌가? 수영복 같은 걸 입어야 되나? 그렇다고 하기엔 남탕과 여탕이 나뉘어 있는데... 아니면 수건으로 중요부위를 가리고 뛰어가야 하는 건가?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 온천인 거지? 사용방법을 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딱히 관리인 같은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앞서 사용하고 있는 손님(?)도 없어서 도무지 어떻게 온천에 들어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온천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마을을 벗어나 다시 해안도로에 합류했다. 그리고 계속 시계방향으로 운전하며 달렸다. 적당하게 쾌청한 날씨와 나름 선별해서 넣어둔 아이폰의 플레이리스트, 소통량이 별로 없는 도로 위를 천천히 달리는 기분은 야쿠시마의 마지막 날이라는 기분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아쉬움과 즐거움이 섞인 여행의 기분. 한껏 분위기가 올라와서 창문을 열었다가 금세 후회하고 다시 창문을 닫았다. 역시 일본 그리고 남쪽 섬의 습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문을 열고는 달릴 수 없었다.


어제 들렀던 오코노타키 폭포를 지나 5분 정도 더 달렸을까? 갑자기 도로의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평탄했던 해안도로가 끝나고 산길이 시작됐는데, 이 산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나마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던 동쪽이나 남쪽의 도로와 다르게 정비가 잘 안된, 보수가 필요한 도로들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비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야쿠시마 일주 도로에서 북서쪽 구간은 날씨나 도로 사정에 따라서 통제되는 기간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운전했던 당시에도 '통행 가능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밤에는 통행이 불가한 구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포장 도로인 데다가 왼쪽으로는 깎아져 내리는 절벽이 계속되고 차가 겨우 한 대 지나갈까 말까 한 너비의 도로를 야생 원숭이가 점령하고 있고 가끔은 사슴이 내려와서 길을 막고 있었다. 키가 수 미터는 될 정도의 나무들 사이로 뚫린 길이라 햇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다. 원숭이들이 차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 창문을 함부로 열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보였다. 그래서 원숭이들이 길을 막아도 크락션을 울리지 않고 비켜줄 때까지 기다렸다. 수풀을 헤치고, 사슴을 기다리며, 원숭이와 함께 달리는 길이라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 건가... 말 그대로 '길'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길을 달리는 기분은 오프 로드를 달리는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 등장했다.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부색이 하얗고 머리가 금발인 가족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아버지의 안경 너머로는 똥그랗게 긴장한 눈이 보였다. 아마 나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긴장한 두 쌍의 눈동자는 서로의 안경 너머로 얽혔고, 나의 손이 좀 더 빠르게 후진 기어를 넣었다. 방금 지나쳐온 도로 옆의 포켓이 떠올랐다. 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이니, 도로 중간중간에 있는 포켓을 외워 두고 다른 차와 마주치면 한 대가 포켓까지 후진해서 비켜줘야 하는 도로였다.


그 좁은 길에서 후진으로 겨우 길을 비켜주었다. (나도 외국인이지만) 외국인 가족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맙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운전에 집중하느라 약간은 구부정하게 핸들에 밀착한 아버지의 어깨는 나에게 손을 흔들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뿌듯했다. 아, 드디어 나도 후진으로 길을 비켜 주었어!


별 기대없이 들렀던 곳에서 만난 하늘과 바다


야쿠시마의 북서쪽 구간은 말 그대로 '운전이 너무 어려운' 구간이었다. 그 대신 엄청난 즐거움도 있는 곳이긴 했지만... 어쨌든 너무 긴장하면서 운전을 했더니 어딘가에서 좀 쉬고 싶어 졌고, 어차피 다른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이라 잠깐 차를 세우고 구글맵을 켜보니 근처에 등대가 하나 있었다.


지도를 보며 길을 따라가다가 등대 쪽으로 핸들을 꺾어보니... 음, 도저히 차로 올라갈 수 없는 길이었다. 마침 차를 세울 수 있는 공터가 있어서 차를 세워두고 10분 정도 걸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길을 헤치고 등대까지 걸어가면 사방이 탁 트인 풍경이 나타난다.


야쿠시마 등대(屋久島燈台). 단지 운전을 좀 쉬고 싶어서 선택한 목적지였는데, 사방이 탁 트여서 하늘과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하얀 등대가 우람하게 서 있는 장면이 꽤나 좋은 장면을 보여주었다. 긴장했던 어깨와 다리를 풀어주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야쿠시마라는 섬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 오고 싶어 졌다. 기왕이면 여름에 오면 더욱 좋겠지. 하루는 시라타니운스이쿄 트래킹을 하고, 하루는 바닷가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겠네. 낚시 좋아하는 녀석들한테는 낚시 포인트도 있을 거야. 숙소는 펜션 같은 걸로 해서 저녁엔 바비큐를 해 먹으면 더 좋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풍경이었다. 야쿠시마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야쿠시마 북서쪽의 위험한(?) 도로를 달린다면, 등대에도 꼭 들러보시길


등대를 지나고 나서 얼마를 달렸을까, 드디어 다시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고 더 이상 긴장하면서 운전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너무 드라마틱한 길을 달려왔기 때문일까? 야쿠시마의 북쪽 풍경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이젠 슬슬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숙소로 돌아와 차를 세우고 신발을 벗고 있는데 관리인 아저씨가 뭘 물어보신다. 다시 한번 자세히 들어보니 '오늘 숙소 주인집 딸 생일인데 3층에서 파티할 거거든? 너도 와서 같이 먹을래?'라고 물어보시는 거였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흔쾌히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7:30에 3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아, 게스트하우스는 이런 맛이 있구나. 마침 주인집에서 생일 파티를 한다니, 그러면 오늘은 투숙객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저녁 먹고 축하해주고 그러는 건가? 음... 그렇다면 선물을 준비해야 되는 걸까? 섣불리 나 혼자만 준비하면 그것도 이상한 분위기가 될 수 있으니 일단 그냥 가서 분위기를 좀 읽어보자. 는 생각으로, 3층으로 올라갔다. 게스트하우스의 1층은 남성용 숙소, 2층은 여성용 숙소였고 외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3층은 주인집이었다.


가고시마 흑돼지! 오징어! 가리비! 소, 돼지, 닭, 호르몬, 해산물의 대잔치~


오늘 생일이라는 따님이랑 체크인할 때 전화 통화를 했던 주인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거실로 안내를 받았다. 관리인 아저씨는 벌써 와 계셨고, 잠시 뒤에 주인 아저씨도 오셔서 인사를 나눴다. 헌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분명히 투숙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있는데? 왜 나 밖에 없지?


어라? 벌써 굽기 시작한다고? 다른 사람은 더 안 오는 거야?? 이거 분위기 뭐지?


그랬다. 초대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만 초대를 한 건지 나만 초대를 승낙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 혼자만 불청객처럼 끼어 있었다. 어라? 이거 뭐지? 하면서 매우 어색한 상황에 어찌할지 모르고 있었는데, 이 분위기를 깬 것은 맛있는 음식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각종 야채와 소시지 외에도 오징어, 조개 등의 해산물도 있었고 맥주와 니혼슈, 소츄까지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특히 가고시마 흑돼지(鹿児島黑豚)의 맛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닭이라면 미야자키, 돼지라면 가고시마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고시마 흑돼지가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다음 날 저녁 가고시마에서 또 흑돼지를 먹게 된다. -0-


숙소 3층에서 조용히 내려다본 야쿠시마의 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분위기를 편하게 해 주셨고, 술도 조금 들어가면서 긴장이 좀 풀렸다. 주인 아주머니는 대장부처럼 씩씩하고 성격 좋은 분이셨고, 대화를 이끌어 가셨는데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하기도 하고, 나는 일본 드라마 얘기로 맞받아치면서 쿵짝쿵짝, 티키타카. 그리고 야쿠시마가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이라는 것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한국에도 유네스코 자연 유산 있어? 이렇게 물어보시는데 바로 대답하지는 못하고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제주도의 화산 지형이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이었다. 그래서 성산 일출봉의 사진을 보여드렸다.


이런 분위기가 재밌고, 음식도 맛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생일 파티인데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 아! 나중에 오사카에서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주기 위해서 선물을 사둔 게 있었다. 미야코지마(宮古島)의 유키시오(雪塩). 미야코 섬의 유명한 해수 소금. 후다닥 1층 숙소로 뛰어 내려가 사두었던 소금을 한 병 들고 올라왔다. 맛있는 음식 준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서 소금을 드렸더니 매우 의아한 표정이셨다. 사실, 선물로 소금을 주는 것이 좀 특이하긴 했을 거다. 그래서 오키나와의 미야코 섬에서 아주 유명한 소금이라고 설명을 드렸다.


3일 동안 즐거웠던 민숙 후렌도


야쿠시마의 마지막 밤. 이제 내일이면 배를 타고 가고시마로 나간다. 3일 동안 묵었던 민숙 후렌도. 말도 안 되는 경치를 보여준 이끼의 숲. 야쿠시마를 차로 한 바퀴 돌면서 본 풍경들. 태풍 때문에 일정이 바뀌면 수수료 안 받겠다던 렌터카 사장님, 담배를 사러 가기 위해 트럭을 태워준 이자카야 사장님, 낯선 사람에게 기꺼이 생일상의 한켠을 내주신 민박집 사장님 등등


지난 며칠간 야쿠시마에서 본 풍경들과 만난 사람들이 쭉~ 떠올랐다. 그렇게 혼자서 민박집 마당에서 한참 동안 더 술잔을 기울였다. 야쿠시마를 떠나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혼자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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