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란잔 Dec 27. 2020

5번의 비행(飛行)

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 1955년 作)


5번의 비행(飛行) - 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 1955년 作)


존(빌리 채핀)과 펄(샐리 제인 브루스)은 배를 타고 달아난다. 백마 탄 저승사자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아이들을 뒤쫓는 전도사 해리 파웰(로버트 미첨)의 모습 말이다. 시커먼 양복을 입고 백마 위에 올라탄 모순 덩어리. 그가 강줄기를 따라 언덕길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때 하늘 저 높이에서 비행(飛行) 중이던 카메라는 급격히 하강해 전도사에게 접근한다. 이 비행 그러니까 백마 탄 저승사자를 향한 부감 숏은 <사냥꾼의 밤>에 등장하는 총 5번의 부감 중 4번째 부감이다.


부유하는 카메라는 앞서 언급한 4번째 비행을 기준으로 앞에 세 번, 뒤에 한번 등장한다. 비행은 착륙을 동반한다. 착륙 후 시퀀스는 시작된다. 말하자면 부감은 하나의 시퀀스를 시작하는 문이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살해된 여성의 시체가 술래잡기하던 아이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해리가 첫 등장했을 때, 존의 아버지 벤(피터 그레이브스)이 돈을 숨기고 체포되었을 때. 여기까지가 부감이 문을 열어준 선행된 세 번의 시퀀스. 이어서 감자를 얻어먹기 위해 아이들이 잠시 배를 정박시켰을 때. 이것이 부감이 문으로 작용한 마지막 시퀀스.

부감으로 시작되는 시퀀스를 '부감 시퀀스'라고 명명하겠다. 러닝타임 대략 초반 5분 정도 사이에 연달아 등장했던 세 번의 부감 시퀀스. 이로부터 약 55분 정도 지나 또다시 연달아 등장한 두 번의 부감 시퀀스. 한번 나타나면 세 번 혹은 두 번씩의 연속성을 갖는 것도 기이하지만 앞의 세 번 이후 한참 후에 느닷없이 뒤의 두 번이 나타나는 타이밍도 참 기묘하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쿠퍼 부인(릴리언 기시)이 아이들에게 읊어주는 성경 말씀 직후 첫 번째 부감 시퀀스가 나온다. 하나님을 떠오르게 하는 종교적인 언사와 오버랩되며 나타나는 하늘의 시선. 이는 영락없이 조물주의 시선이라고 생각해봄직하다. 그런데 이 전지자의 시점을 뭇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전체 사건을 조망하는 데에 불과한 객관적 시점으로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시점 숏이자 부감 숏인 이 시선에 객관성이 부여되려면 93분의 러닝타임 동안 형평성 있게 분배되어 나타났어야 했다. 그런데 본편은 마치 의도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뜬금없이 등장한다.

부감 숏에 주관성이 부여되었다는데 동의한다면 이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카메라를 비행시킨 부력(객관적인 힘) 이외에 작용하는 또 다른 힘(주관적인 힘)이다. 쿠퍼의 성경 말씀과 결부시켜 숏의 주체를 단순히 선한 하나님 그러니까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글쎄... 최소한 해리가 체포되었을 때 인서트 되어 권선징악의 매듭을 지어주었다면 시점의 성질이 선(善)이라는데에 동의할 수 있었겠지만 조물주의 눈은 늘 쿠퍼의 입에 모든 것을 맡긴 체 몸을 숨기고 있었지 않았는가.

왜 가뒀느냐가 아니라 왜 풀어주었는가. 이제 <올드보이> 이우진(유지태)이 말했던 올바른 질문을 해야 될 순간이다. '부감이 언제 나타났느냐가 아니라 언제 사라졌는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해리가 이동할 때 나타났고 정착할 때 사라졌다. 해리가 차와 말을 타고 달릴 때 나타났고, 해리가 탈것에서 내려 존의 집에 머무를 때, 쿠퍼가 살고 있는 마을에 머무를 때 사라졌다. 마치 저 높이 날리고 있는 연이 자신을 컨트롤하는 땅 아래 주체에게 끌려다니듯 해리에게 끌려다니는 하늘 위의 카메라. 그렇다면 부력 이외에 작용하는 힘은 인력이다. 조물주의 시점을 끌어당기는 전도사라니.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다.

부감 숏이 연달아 등장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도 풀린다. 해리는 부감에 자성이 있는 존재이니 그가 등장하는 앞 혹은 뒤의 시퀀스에서부터 카메라가 하늘을 날기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신의 정체가 밝혀졌다. 타락한 성직자와 결탁한 신이 존재하는 세계. 그렇다면 본편을 지배하는 공포의 주체는 신 그러니까 종교 구체적으로 가톨릭이다.

소거된 아버지의 자리에 종교가 자리 잡았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했다. 취하게 하고 마비시킨다. 해리와의 첫날밤. 존의 어머니 윌라(셸리 윈터스)는 마치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도 되는 양 해리의 훈육을 일말의 저항 없이 받아들이더니 급기야는 자신의 죽음을 침대에 누워 공손하게 맞이하기에 이른다. 어떤 색으로도 물들기 쉬운 백지장 같은 아이들이라면 아편은 더욱 손쉽게 파고들 수 있을 것이다.

해리와 겪었던 트라우마는 벌써 잊었는지 펄은 쿠퍼의 집에 찾아온 해리를 보자마자 그렇게 아끼던 인형을 집어던지고 어느새 해리의 정강이에 찰싹 달라붙어 볼을 비비고 있다. 죽은 아버지 빌로부터 강한 다짐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존은 동생보다는 조금 더 의젓하다. 취하지 않기 위해, 마비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악전고투하는 소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가 경찰에게 붙잡힐 때, 결국 이 순수한 소년은 '안돼요(Don't)'라고 부르짖으며 전도사를 아버지로 인정하는 환각 증세를 보이고 만다. 끝내 아버지로 인정되고 마는 종교의 위압감.

사냥꾼은 칼보다는 총이 어울린다. 그것이 기다란 장총이라면 더욱 마침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편의 사냥꾼은 칼을 사용하는 해리가 아니라 총을 사용하는 쿠퍼다. 가혹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게 하기 위해 밤의 파수꾼이 된 쿠퍼. 그녀는 빨리 신사가 되라는 듯 존의 나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회중시계를 선물한다. 그런데 존은 쿠퍼에게 사과를 선물했다. 선악과를 떠오르게 하는 새빨간 사과. 나의 이브가 되어달라는 뜻일까. 나는 이미 타락해버렸으니 말이다.




★ (별 4개)
민중의 아편이 만들어낸 잔혹동화


작가의 이전글 달 착륙보다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