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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고에 비친 대한민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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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darilkim</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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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광고, 시대의 거울에 비춰진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고 원했던 것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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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6-04-27T18:08:0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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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폐허 위의 희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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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03:33:24Z</updated>
    <published>2026-04-10T23: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58년 개띠, 폐허 위의 어린 시절 그는 1958년에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지 다섯 해가 지난 해였다.  아버지는 전쟁에 나갔다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이, 우리 집안에서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돌아온 사람이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이해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SxPUl0TCysel9u_KMyGx87-jS-c.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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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정부 주도의 경제 재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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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23:00:16Z</updated>
    <published>2026-04-09T23:00:16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진 건 사람밖에 없는 나라  1963년 12월, 서독 함보른 탄광. 지하 1,000미터 막장 속으로 한국 청년들이 걸어 들어갔다.  가방 하나 들고 비행기를 탄 사람들이었다. 독일어도 몰랐다. 광부 경험도 없었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었고, 교사였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건 몸뿐이었고, 나라가 가진 것도 그것뿐이었다.  대한민국은 1961&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nS5l67a_fFW1nMAov3JPwpzd0Wg.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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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라디오가 먼저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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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8T23:00:18Z</updated>
    <published>2026-04-08T23: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RCA가 기증한 송신기를 활용해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TV는 1956년 5월에 개국했지만, TV 수상기를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서울 시내에 고작 300대뿐인 수상기. 문맹률이 높은 시대에 신문 광고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뉴스도, 광고도 눈이 아니라 귀로 전달되었다.  라디오 앞에 온 가족이 모인다. 1950년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oCqf2of6qiM_xc5jldaNO_Rxl4o.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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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국산 1호의 시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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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7T23:00:30Z</updated>
    <published>2026-04-07T23:00:30Z</published>
    <summary type="html">1959년 11월. 금성사 공장에서 라디오 한 대가 나왔다.  A-501. 국산 라디오 1호였다. 직원들이 모였다. 전원을 켰다.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는 것을, 거기 있던 사람들은 알았다. 한국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금성 라디오 A-501 &amp;mdash; &amp;quot;세계의 수준을 달리는 한국의 기술&amp;quot; 광고 카피는 자신감이 넘쳤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_HuPurPJXqDhw4PTO9O87fl7kpM.jpe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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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맛이라는 개념의 등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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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7T08:16:31Z</updated>
    <published>2026-04-07T06:21: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모두가 굶주리던 시절이었다. 아직 이것 저것 먹는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배고픔은 일상이었고, 그저 배고픔만 해결할 수 있으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대담하게 '맛'을 내세우고 획기적인 마케팅을 진행한 브랜드들이 있었다.  미원, 맛의 원조 1956년, 미원 외판원이 전국의 시장을 돌았다. 작은 봉지를 꺼내 국물에 한 스푼 털어 넣는다. 맛&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LV4N9qgULTswija5VMFB0_-Xv2Q.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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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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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7T03:19:13Z</updated>
    <published>2026-04-01T01:10:00Z</published>
    <summary type="html">국가가 해주는 가족계획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삶을 이어갔다.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무처럼, 혹은 죽은 자에 대한 대답처럼.196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6.0. 한 여성이 평생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보건사회부가 전국을 돌며 가족계획 전국대회를 열고 국민들을 가르쳤다. 아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FGy6_cZ0M6oSLOc2kghhByzYJl8.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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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amp;quot;미제&amp;quot;라는 이름의 동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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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1T01:25:59Z</updated>
    <published>2026-03-31T00:0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미제와 꼭 같은 럭키치약 1954년, 신문에 락희화학공업사(지금의 LG화학, LG생활건강)가 국내 최초의 치약, 럭키 치약을 내놓고 광고를 시작했다. &amp;quot;미제와 꼭 같은&amp;quot; 이 여섯 글자 안에 전후 한국인의 세계관이 압축되어 있다.&amp;nbsp;미제(美製). 미국산. 그것이 기준이었다.&amp;nbsp;한국에서 치약이 대중화된 것은 해방 이후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소금이나 숯으로 이를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YAR2vPyaePqxc6jaEMq0y_NWZdA.jpeg" width="473"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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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약 광고가 반이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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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4T00:34:59Z</updated>
    <published>2026-03-23T12:47:14Z</published>
    <summary type="html">1950-60년대 신문을 펼치면 광고의 반 이상이 약이었다. 활명수, 박카스, 아로나민. 전후 한국에서 가장 절박한 욕망은 몸이었다. 집도 없고 일도 없어도, 몸만은 살아있어야 했다. 그 절박함이 광고 시장의 첫 번째 문을 열었다.  동화약품 부채표 활명수, 100년을 이어온 진짜 활명수  1897년 노천 민병호가 궁중의 비방과 서양 의학을 접목한 활명수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WP9H0p8oQaf5uEs5cECll19JUww.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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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50-60 | 폐허 위의 희망  - 1950-60년대 시대 개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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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3T10:12:44Z</updated>
    <published>2026-03-22T05: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1945년 8월 15일 해방! 광복! 독립.. 그리고 전쟁!  그렇지 않아도 뒤쳐지고 없이 살던 살림이었는데,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서른 여섯 해를 버텨 나라를 되찾았다는 기쁨과 안도도 잠시..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웠다. 3년간의 전쟁. 남은 것은 잿더미뿐이었다. 도시는 폭격으로 무너졌고, 공장은 불에 탔고, 사람들은 굶주렸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wmKKBX3wmrhalHeqQfRx5mOTI5Y.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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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고에 비친 대한민국, 프롤로그  - 왜 광고로 시대를 읽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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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2T01:14:36Z</updated>
    <published>2026-03-20T22:00:17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늘 하루, 당신은 몇 개의 광고를 보았는가.  아침에 눈을 떠서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우리는 하루에 수백 개의 광고와 마주친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카카오톡 대화창 위에, 유튜브 영상 사이에, 인스타그램 피드 속에, 검색 결과 맨 위에. 광고는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고, 점점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지금으로부터 3&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1Syf%2Fimage%2Ft8kBxkHYtc4EkDMC5S2Ug773bh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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