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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용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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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대한민국 문인. 글쓰기 강사. 종교 평화와 기독교 현대화를 위해 '새로운 크리스천 운동'(NCM)을 하고 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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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6-02-26T08:11:3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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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적 영역의 새로운 창조 - 요한계시록 21-22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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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8T16:41:43Z</updated>
    <published>2025-09-28T16:41:4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한계시록은 정경(正經)에 들어온 문서 가운데 가장 자주 오용되는 책입니다. 우리가 계시를 마치 스케쥴처럼 다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두 장에서 요한은 탈출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이곳으로 오십니다: 새로워진 세상, 내려오는 성, 닦아진 눈물, 치유된 상처. 소망의 방향은 '위로, 멀리'가 아닌 '아래로, 한가운데로'입니다. &amp;quot;보라 내가 만물을 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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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로운 크리스천의 창세기 읽기 - 창세기 1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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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8T16:42:31Z</updated>
    <published>2025-09-28T06:47: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창세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허구(fiction)함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계시를 받아 썼기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극소수 존재합니다.  창세기 1: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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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의 이름으로 쫓겨난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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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6T14:11:08Z</updated>
    <published>2025-05-16T13:56:4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하느님의 이름으로 위대한 성자를 쫓아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상은 고대 형이상학의 심연에서 솟아나왔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형이상학자들은 인간을 신의 조각으로 취급하고자 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 호칭은 왠지 세속을 멀리 떠나 저 높은 곳에 있는 존재에게나 어울릴 이름 같다. 하지만 본래 메시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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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로아스타교와 바이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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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6T05:48:27Z</updated>
    <published>2025-05-16T05:48:27Z</published>
    <summary type="html">바이블은 수메르,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이집트, 헬레니즘 등 여러 문화/종교의 영향을 받아 쓰여진 책이다. 그중 조로아스터교는 윤리적인 이원론과 종말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즉 처음과 끝이 비슷하다.  조로아스터교는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종교로, 조로아스터(Zarathustra)가 창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실존인물이 아니거나 유형화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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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많은 노동의 열매는 누가 수확했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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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6T02:18:09Z</updated>
    <published>2025-05-16T02:14:31Z</published>
    <summary type="html">--- - 종교와 &amp;lsquo;자발적&amp;rsquo; 무보수 노동에 대한 단상   종교 단체가 교인에게 무보수로 일을 시키는 문제. 오래된 의문이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교회가 만든 무가지 신문을 행인에게 나눠주는 노인들은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고, 사실 나만 해도 대학생 시절에 청년회 활동, 주일학교 교사 같은 일을 무보수로 참 열심히 했다.  생존이 위태로운 어려운 사람이나 억울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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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등한 교회 예배와 콘서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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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2T00:51: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종교지도자를 성직자라 부르고, 그에 따라 가톨릭이나 성공회에는 신부가 있고 개신교에는 목사가 있고 불교에는 스님이 있습니다. 교인은 그렇게 성직자와 평신도로 양분됩니다. 이래서는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참된 평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어버이로 모심으로써 형제자매가 됩니다. 물론 예를 갖춰 서로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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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원받기보다 구원하기를 향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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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2T00:42:27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교회는 세상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세상, 하느님 없는 세상, 저주 아래 있는 세상, 허망하고 악한 세상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이름을 오용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을 놀이 대상처럼 여기고, 인간의 우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그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악한 세상입니다. 교회가 악한 세상과의 마지막 연대에서 탈퇴하여 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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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눔: 사랑과 공의의 구체적 실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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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2T00:37: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랑과 자비慈悲와 인仁 같은 보편적인 미덕은 동서고금 어떤 사회에서든지 환영받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관념인 채로는. 하지만 이것이 실천 계명으로 구체화되면 세상으로부터 차갑게 거부당합니다. 한편, 정의는 주어진 사회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나눔과 베풂은 &amp;lsquo;인간 내면의 율법&amp;rsquo;인 양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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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와 경전은 목적이 될 수 없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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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2T00:35: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는 말은 기독교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한 말은 기독교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가 곧 기독교는 아니니까요. 종교가 이럴진대 하물며 경전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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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개인의 신성과 우주의 신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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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1T15:54: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과 영웅 캐릭터를 다루는 종교의 경전을 이해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정확한 방법은 그것을 서사시, 희곡, 언행록, 서한, 소설 등 각각의 내용과 형식에 걸맞은 문학 장르로 받아들이고 저자들의 집필 의도를 간파하는 것입니다. 바이블처럼 다양한 장르의 여러 작품이 통권으로 편집된 책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어떤 종교이든 교조敎祖가 사망하면 그의 추종자들은 신화적</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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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대인의 수호신과 예수의 아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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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1T15:48: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생각의 틀이 생각의 한계를 정하기 마련입니다. 고대 히브리인은 우주를 창조한 유일한 신이라는 커다란 틀을 상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을 자기 민족이 독점했다는 심대한 착각에 빠져 선민사상에 젖어 버렸습니다. 우주를 창조한 가장 큰 신을 민족의 수호신으로 삼으려다 신에게 이름도 붙이고 전용 성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신교를 숭배하는 민족들의 신앙 행태와 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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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십자가는 인간 예수의 선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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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1T15:39: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방 기독교의 기본 교리 중 하나인 창조, 타락, 구원의 논리는 예수의 사상이 아니라 유대사회 지배계급의 사상이었습니다. 이 논리는 『창세기』에 편집된 여러 가지 상징적 설화를 근거로 내세웁니다. 문서 앞부분에 배치된 두 개의 설화(에덴동산, 카인과 아벨)와 바벨탑,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 이야기가 그것들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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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국 황제들의 신격화에 대응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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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1T15:36:26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실 초대교회의 예수 신격화에는 뚜렷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근동지역 여러 제국의 황제들은 스스로를 신의 대리자로 지칭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시대에 가까워지면서 지배국의 황제들은 신들의 대리자를 넘어 숫제 자신을 신으로 칭하기까지 했습니다. 로마제국 초대황제인 옥타비아누스는 살아서는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로 추앙받고 사망 직후인 서기 14년 로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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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야의 40일이 주는 메시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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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1T15:27:34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대민족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역할과 예수가 생각하는 메시아의 역할은 크게 달랐습니다. 흔히 복음이라 부르는 여러 가지 예수 언행록에는 역사적 예수와 신화적 예수의 모습이 섞여 있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가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에서 활동하기에 앞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서 세례를 받은 예수는 거룩한 힘에 이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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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활은 신앙이고 성령은 현실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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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7Z</updated>
    <published>2024-12-11T15:08:0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예수가 펼친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효력을 잃지 않습니다. 마음을 돌이키고 행실을 고쳐라, 빚을 탕감하듯이 타인의 죄를 용서하라, 휴일은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풍습이다, 하느님을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여겨라 등등. 그런 가르침을 펼친 예수의 삶을 기념하며 하느님 나라 운동을 지속하려 한 초기 공동체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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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격화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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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6Z</updated>
    <published>2024-12-11T15:06:45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세례자 요한은 매우 금욕적인 도덕 선생이었습니다. 옛 선지자 엘리야를 연상케 하는 차림새에 민중과 물리적으로 격리된 생활. 따라서 민중이 요한과 그의 제자단에게 취한 태도는 참여라기보다는 동조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두개파처럼 야비하거나 바리사이파처럼 위선적이진 않았지만, 민중 입장에서 그는 함께하기에 버거운 지도자였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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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복음을 기쁘지 않게 변질시킨 기독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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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6Z</updated>
    <published>2024-12-11T15:01:34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수의 삶은 &amp;lsquo;기쁜 소식&amp;rsquo;이란 말로 요약됩니다. 로마 제국의 왕족과 귀족은 후계자가 될 사내아이의 탄생을 &amp;lsquo;기쁜 소식&amp;rsquo;이라 불렀습니다. 예수의 탄생에 대해 그의 제자들은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나는 다윗 왕의 후계자 즉 &amp;lsquo;유대인의 왕&amp;rsquo;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의 후계자 즉 &amp;lsquo;민족 해방의 지도자&amp;rsquo;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훗날 신화적 예수로 넘어가서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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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수의 탄생 시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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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6Z</updated>
    <published>2024-12-11T15:00: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수의 탄생 시기는 바이블과 역사서를 근거로 살피면 BC 4년(마태 2:19-23)이거나 AD 6년(루카 2:1-7)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처형당할 때 그의 나이는 40대 초중반이거나 33세입니다. 말을 꺼낸 김에 예수의 탄생 시기에 대한 두 가지 서술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예수는 헤롯 대왕 말기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합니다. 대왕은 동방박사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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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점점 작아지는 유일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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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6Z</updated>
    <published>2024-12-11T14:49: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대 민족은 고대의 여러 제국에 저항하며 성립된 부족 연맹체입니다. 그들은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추정되는 수메르를 비롯하여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제국에 지배당하거나 저항하던 여러 부족으로서 유일신 신앙 체계를 발전시키며 민족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에덴(에딘), 시날(수메르 지역), 바벨(바빌론), 에렉(우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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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수 그리스도와 천자天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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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2T01:16:46Z</updated>
    <published>2024-12-11T14:39:25Z</published>
    <summary type="html">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는 &amp;lsquo;기름부음을 받은 자&amp;rsquo;라는 뜻으로 히브리인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신성하게 구별하는 행위였던 기름부음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예수는 기름부음 의식을 치른 적이 없으므로 유대인은 그를 메시아라 부르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 기름부음 의식 없이 메시아로 존중받는 인물이 있긴 합니다. 유대민족을 바빌론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킨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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