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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묭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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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해</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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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02-08T09:23:1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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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둘이기에 하나가 되고 싶고, 하나가 됐기에 헤어지는 - 마르그리트 뒤라스(백수린 옮김),&amp;nbsp;『여름비』, 미디어창비, 20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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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2-26T00:46:22Z</updated>
    <published>2024-02-25T16:06:43Z</published>
    <summary type="html">『여름비』에는 일곱 남매와 부모가 등장한다. 그러나 에르네스토와 잔, 두 아이 외 다른 다섯 남매는 한 덩어리인 양 집단명사로 서술된다. 이들은 에르네스토와 잔의 과거이고, 에르네스토와 잔은 이들의 미래이다. 찬란하던 유년 시절, 형제자매가 그저 하나의 우리였을 적. 우리가 우리일 때 세계는 그저 하나였기에 안전하고 온전했다. 그것이 너와 나로 분리되자 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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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설이 할 수 있는 것 - 토니 모리슨,&amp;nbsp;『빌러비드』, 문학동네,&amp;nbsp;201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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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2-25T14:04:27Z</updated>
    <published>2023-12-01T16:08:14Z</published>
    <summary type="html">무언가를 독해하는 데는 아주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내가 자주 택하는 방법은&amp;nbsp;연상되는 서브텍스트와 연결해 읽는 것이다. 그런 접근에서 『빌러비드』를 읽으면서는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가 떠올랐다. 하지만 『빌러비드』에서 다루고 있는 인종의 문제를, 그 뒤에 남겨진 집단적 트라우마의 문제를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과 연결해 읽어도 괜찮을지 확신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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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년 전시 결산 - 이스트빌리지 뉴욕, 싹 다 살아졌음, 올해의 작가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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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7T12:34:47Z</updated>
    <published>2020-03-12T15:55:43Z</published>
    <summary type="html">2019년 상반기 최고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amp;lt;이스트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amp;gt;(2018.12.13~2019.02.24)이었다. 이유는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어크로스, 2017)를 인용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 여기 나오는 데이비드 워나로비치의 인용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amp;quot;사랑. 사랑은 당신을, 사람의 몸을 사회와, 부족과, 연인과, 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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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단편집이라는 가능성 - 손보미,『그들에게 린디합을』, 문학동네, 201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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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21T13:37:51Z</updated>
    <published>2019-12-08T15:19:11Z</published>
    <summary type="html">「담요」로 시작해 「애드벌룬」으로 끝나는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수록 단편을 어떤 순서로 놓았는지의 문제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애드벌룬」에서 여자는 &amp;ldquo;다른 세상에서는 나만 사랑해줄래?&amp;rdquo;1)하고 묻는다. 그 말에 남자는 그러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다른 세상, 첫 번째 수록된 단편 「담요」에서 남자는 사실 그 시점은 맞이하지도 못</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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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내가 바람의 열두 방향으로 끝없는 길을 나서기 전에&amp;rdquo; - 어슐러 K. 르귄, 『바람의 열두 방향』, 시공사, 200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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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1T16:14:31Z</updated>
    <published>2019-11-15T03:32:47Z</published>
    <summary type="html">솔직히 이 단편집의 각각의 단편들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본 단편집의 제목이 된 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국 &amp;lsquo;바람의 열두 방향&amp;rsquo;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닿아보는 정도일 것 같다. 르귄은 A. E 하우스먼의 「슈롭서의 젊은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본 책을 연다.  머나먼 곳, 밤과 아침과 열두 번의 바람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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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리뷰를 리뷰할 때 - 김현, 『책읽기의 괴로움/살아 있는 시들』, 문학과지성사, 199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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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21T13:37:56Z</updated>
    <published>2019-10-14T04:38:57Z</published>
    <summary type="html">비평은 작품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 중의 하나를 붙잡아내서 그것을 남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지적인 작업이다. p. 13, 「김춘수에 관한 두 개의 글」       시를 분석하기 전에 그 시에 관한 자료를 가능한 한 많이 모으는 것은 시를 자료 더미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의 모든 울림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 위해서이다. 귀를 기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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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잠자는 건 죽는 것, 죽는 건 잠자는 것&amp;rdquo; - 강성은, 『Lo-fi』, 문학과지성사, 20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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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21T13:37:58Z</updated>
    <published>2019-10-14T04:2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린 시절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결정되어 버리지만 우리는 결코 그 시간을 바꿀 수 없다. 그 시간의 흔적은 외상이라는 형태로, 마치 &amp;ldquo;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amp;rdquo;1) 새겨진다. 우리를 상처 입히는 것은 무엇일까? 결코 가질 수 없던, 부모의 애정이나 자신의 세계를 지켜주는 다정한 사람들의 지지&amp;hellip;&amp;hellip;  좁고 어두운 방 창가에 기대서서 마지막 햇빛이 떠나가는 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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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dquo;때때로 우연과 운명을 헷갈리기도 해&amp;rdquo; - 윌리엄 트레버(정영목), 『루시 골트 이야기』, 한겨레출판, 20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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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1T16:13:47Z</updated>
    <published>2018-06-28T10:00: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연과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의지도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amp;lt;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amp;gt;라는 뮤지컬을 좋아한다. 오랜 친구인 앨빈의 장례식에서 읽을 송덕문을 쓰기 위해 화자인 톰은 앨빈과 관련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그러곤 찾으려고 노력한다. 자신과 앨빈의 관계에 있어서, &amp;ldquo;모든 걸 깨트린 그 작은 틈새&amp;rdquo;를. 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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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둠 속에 빛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된다. -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문학과지성사, 20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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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21T13:38:01Z</updated>
    <published>2018-06-03T07:29: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의 시인의 말에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amp;ldquo;수십 개의 단어와 한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 나는 아직도 이런 일을 생각한다.&amp;rdquo; 유희경의 시는 나와 당신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한 시들이 두드러지는데, 그렇기에 수십 개의 단어와 한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은 시인에게 있어 중요하다. 단어가 선행하는 것도 한 사람이 선행하는 것도 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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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 이상의 말 - 안규철과 정서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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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21T13:38:03Z</updated>
    <published>2018-05-23T09:47:22Z</published>
    <summary type="html">재작년 봄 &amp;lt;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amp;gt;(2015.9.15~2016.5.22)전에서 안규철의 작품을 처음 보았는데, 전시를 보다가 울어 버렸다. 다녀와서 일기에, &amp;quot;내가 안규철의 이번 전시를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이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amp;lt;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시대정신&amp;gt;(2013.11.12~2014.4.27)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실견하고 불현듯 좋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2QB%2Fimage%2FkJkcmDdMI1AklFS7_Sj9PnJd4Ks.jpg" width="32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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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대의 미술관  - 첫번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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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1-29T08:35:15Z</updated>
    <published>2017-02-23T05:33:58Z</published>
    <summary type="html">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형성된 것은 근대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은 Museum, 미술관은 Art Museum이라는 단어로 각각 번역되는데 이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미술관이라는 단어는 박물관 중에서도 예술, 그 중에서도 특히 미술을 중점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즉 미술관은 박물관이라는 방대한 개념적 공간에서 떨어져 나온, &amp;lsquo;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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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리우 웨이 개인전 &amp;lt;파노라마Panorama&amp;gt; -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본, 리우 웨이 개인전 &amp;lt;파노라마Panorama&amp;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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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21T13:38:07Z</updated>
    <published>2017-02-14T12:12:20Z</published>
    <summary type="html">2016년 4월 28일부터 2016년 8월 31일까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는 중국 현대 작가인 리우 웨이Liu Wei의 개인전 &amp;lt;파노라마Panorama&amp;gt;를 개최했다.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플라토는 문을 닫았다.   리우 웨이는 1972년 베이징에서 출생한 중국 현대미술 작가로 그는 지금까지 작품에서 &amp;ldquo;끊임없는 개발의 현장이 된 중국 또는 아시아의 디스토피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2QB%2Fimage%2FfS7em9orB6GiEGHW58AWVUOMw9w.png" width="294"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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