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좌충우돌 메그레즈의 팀장 노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 />
  <author>
    <name>ihmin</name>
  </author>
  <subtitle>메그레즈는 북두칠성에서 가장 작고 어두운 별입니다. 반향성 없는 이런 저런 글을 씁니다. 특히 대다수가 잘 모르는 대종교의 독립운동상에 대해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subtitle>
  <id>https://brunch.co.kr/@@3Xqp</id>
  <updated>2017-07-30T00:46:29Z</updated>
  <entry>
    <title>전문대학원 없는 대학이 세계 최고인 이유 - 프린스턴의 선택이 던지는 질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73" />
    <id>https://brunch.co.kr/@@3Xqp/473</id>
    <updated>2026-05-01T21:34:42Z</updated>
    <published>2026-05-01T21:34:42Z</published>
    <summary type="html">프린스턴은 아이비리그 대학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등 전문대학원을 두지 않는다. 단순히 설립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만들 기회가 있었음에도 택하지 않은 선택이다. 실제로 프린스턴은 19세기 중반 잠깐 법학 과정을 운영했다가 스스로 폐지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결론은 같았다.그 이유는 철학에 있다. 프린스턴은</summary>
  </entry>
  <entry>
    <title>단군은 누구의 것인가 - 일본 학자, 서양 선교사, 대종교가 충돌한 그 자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69" />
    <id>https://brunch.co.kr/@@3Xqp/469</id>
    <updated>2026-05-01T07:29:43Z</updated>
    <published>2026-05-01T07:29:43Z</published>
    <summary type="html">단군은 우리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1920년 경성의 한 일본어 잡지에 실린 논문 하나가 그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조선인을 독자로 삼아, 조선어와 한문과 일본어를 동시에 동원해서. 더 이상한 건, 그 논문이 등장하기 전부터 단군 담론의 바닥에는 이미 서양 선교사들의 손길이 깊이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군은 민족의 성역&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FQhmIZ7mezAYRbHNmZs5DHyeu20.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白圃와 白冶, 그리고 잊혀진 이름들 - 서일과 김좌진 - 대종교, 북로군정서, 그리고 청산리의 진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71" />
    <id>https://brunch.co.kr/@@3Xqp/471</id>
    <updated>2026-04-29T23:29:36Z</updated>
    <published>2026-04-29T23:29:36Z</published>
    <summary type="html">김좌진. 이름 석 자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장면은 대부분 비슷하다. 백운평 골짜기, 울창한 만주의 삼림, 카이저 수염을 휘날리며 전진하는 독립군 총사령관. '청산리대첩=김좌진'이라는 등식은 오랫동안 의심받지 않았다. 교과서가 그렇게 썼고, 드라마가 그렇게 만들었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해왔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처음부터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면? 그리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k3nIDhvY1fHD5K5S7X2PXfKWils.jp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평양에 묻힌 독립운동가들-분단이 만든 또 하나의 역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68" />
    <id>https://brunch.co.kr/@@3Xqp/468</id>
    <updated>2026-04-28T23:48:51Z</updated>
    <published>2026-04-28T23:48:51Z</published>
    <summary type="html">화강암 비석 위에 새겨진 돌사진, 그리고 약력. 누군가에게는 '반일애국지사', 누군가에게는 '애국지사', 또 누군가에게는 '동지'. 호칭은 달라도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같다. 일제강점기, 그 지독한 35년.  문제는 그들 중 상당수가 분단이라는 역사의 칼날에 두 동강 나 있다는 점이다. 북한 땅에 묻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해방 후 북쪽을 택했다는 이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ig_eKMaDqMemacxO1sCr2I-O0Ss.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매헌 윤봉길, 의거 94주기 - 1932년 4월 29일을 기억하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67" />
    <id>https://brunch.co.kr/@@3Xqp/467</id>
    <updated>2026-04-28T21:25:25Z</updated>
    <published>2026-04-28T21:25: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늘, 4월 29일은 매헌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 94주기다. 당시 스물다섯 청년이었다.  &amp;quot;나도 안다. 현재 조선은 실력이 없기에 당장 독립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강대국들이 약해지면 조선과 주변국은 독립할 것이다. 즉, 독립은 어차피 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나는 독립의거로서 그 시기를 앞당기려고 하는 것이다. 몇 명의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owgbsndKma_4uPjGHShTAYjNytc"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우천 조완구, 대종교가 낳은 항일의 일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21" />
    <id>https://brunch.co.kr/@@3Xqp/421</id>
    <updated>2026-04-28T10:14:57Z</updated>
    <published>2026-04-28T10:14:57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완구(趙琬九)라는 이름은 낯설다. 김구, 이동녕, 안창호처럼 교과서에 굵직하게 박힌 이름도 아니고, 윤봉길이나 이봉창처럼 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 이름도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 27년 동안, 임시정부를 단 하루도 떠나지 않은 사람을 꼽으라면 그는 손에 꼽히는 인물 중 하나다. 호는 우천(藕泉), 연꽃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3Hnf-svm19OJknLcJDC56eDCK-Y.jpg" width="468" /&gt;</summary>
  </entry>
  <entry>
    <title>신도(神道)와 신교(神敎)의 전쟁 &amp;mdash; 대종교가 없었다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44" />
    <id>https://brunch.co.kr/@@3Xqp/444</id>
    <updated>2026-04-28T00:03:12Z</updated>
    <published>2026-04-28T00:03:1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국이 이만큼이나마 명맥을 이어온 데는 대종교(大倧敎) 덕이 크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신도 수와 상관없이, 대종교라는 이름이 품어온 신앙과 역사의 집 안에는 아직 피지 못한 씨앗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종교를 믿든, 어디에 살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낡은 종갓집에 핏줄이 닿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종교는 나철(弘</summary>
  </entry>
  <entry>
    <title>컨설팅 펌으로 진화하는 대형 로펌 - 한국 로펌의 성장 방정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64" />
    <id>https://brunch.co.kr/@@3Xqp/464</id>
    <updated>2026-04-27T22:57:48Z</updated>
    <published>2026-04-27T22:57:48Z</published>
    <summary type="html">로펌 업계에서 합병 기사가 나올 때마다 구조 문제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는 어떤 수익 구조냐에 따라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별산제 로펌은 공동경비만 나눠 내고 사건은 각자 수임한다. 수익도 각자 귀속된다. 사실상 개인 사무소들이 하나의 간판 아래 입주한 형태다. 두 별산제 로펌이 합치는 건 비용 배분 계약을 고쳐 간판을 통합하는 수준이다</summary>
  </entry>
  <entry>
    <title>'배달(倍達)'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는가 - 임시정부가 만든 역사교과서와 대종교적 역사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11" />
    <id>https://brunch.co.kr/@@3Xqp/411</id>
    <updated>2026-04-26T23:53:00Z</updated>
    <published>2026-04-26T23:53:00Z</published>
    <summary type="html">1922년 1월, 상해(上海). 망명 임시정부가 들어선 지 채 3년이 안 된 그 도시에서 얇은 책 한 권이 인쇄되어 나왔다.  제목은 『배달족역사(倍達族歷史)』.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학생용 역사교과서로 편찬한 책이었다. 일제가 이 책을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은 분명하다. 1926년 7월, 간도 총영사가 발송한 기밀문서에는 화룡현 이도구의 용흥학교에서 교과서</summary>
  </entry>
  <entry>
    <title>신규식과 동제사, 3&amp;middot;1운동의 숨겨진 설계자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20" />
    <id>https://brunch.co.kr/@@3Xqp/420</id>
    <updated>2026-04-26T01:00:04Z</updated>
    <published>2026-04-26T01: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3&amp;middot;1운동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여운형과 신한청년당.  1918년 11월 말 상하이에서 급조된 이 조직이 윌슨 대통령 특사 크레인을 만나고, 김규식을 파리로 파견하고, 장덕수를 일본으로 보낸 일련의 행동이 3월 1일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서사는 이미 교과서 수준의 상식으로 굳었다. 그런데 그 서사에 심각하게 빠진 인물이 하나 있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H3OUcEdacikVRIsh3NFFsjtQYyQ.jpg" width="425" /&gt;</summary>
  </entry>
  <entry>
    <title>이시열, 대종교, 그리고 서간도의 민족운동 - 총을 내려놓고 붓을 든 사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30" />
    <id>https://brunch.co.kr/@@3Xqp/430</id>
    <updated>2026-04-25T04:14:24Z</updated>
    <published>2026-04-25T04:02:53Z</published>
    <summary type="html">평북 정주에서 유교를 공부하던 청년이 있었다. 7세부터 동네 서당에 다녔고, 집안 어른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나라가 기울자 측량 기수로 먹고살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다. 분노와 좌절 속에 그는 동향 선배 계찬겸을 만나 국권 회복을 결의했다. 그런데 그 선배는 마음을 바꿔 서울 한성사범학교에 들어갔고 1911년에 졸업하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v6yfz5FYoZv0dSU2xkJ-oT4vTNs.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육탄혈전, 그 선언의 기원-대한독립선언서와 대종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38" />
    <id>https://brunch.co.kr/@@3Xqp/438</id>
    <updated>2026-04-24T07:06:07Z</updated>
    <published>2026-04-24T07:06:07Z</published>
    <summary type="html">3&amp;middot;1운동을 말할 때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민족 대표 33인을 떠올린다. 「기미독립선언서」의 그 단아한 문장들, 태화관에서 낭독된 선언, 탑골공원에서 터진 만세 소리. 그 장면은 하도 반복되어 이제는 거의 원형적 기억처럼 자리 잡혔다.  그런데 그 모든 선언보다 먼저, 만주 길림(吉林)의 차가운 방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선언서가 시작되고 있었다. 39명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a8xwO121yNscYtqyKrnl21yxzwE.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이승만의 한글 파괴 시도 - 이승만과 한글 간소화 파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62" />
    <id>https://brunch.co.kr/@@3Xqp/462</id>
    <updated>2026-04-23T08:58:51Z</updated>
    <published>2026-04-23T08:58: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진 속 책은 조선어학회가 펴낸 『한글 마춤법 통일안』 고친판 5판이다. 낡고 바랜 표지지만 그 안에는 한 세대에 걸친 싸움이 담겨 있다. 1933년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꼭 20년 뒤, 이승만은 &amp;quot;버려라&amp;quot;고 말했다.  이승만이 한글 맞춤법에 처음 딴죽을 건 것은 1949년 10월 9일, 한글날 담화에서였다. 현행 맞춤법이 옛것에 비해 쓰기 불편하다며 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GaLHAHN-c3gYH63bdz9dOVDWBv0.png" width="484" /&gt;</summary>
  </entry>
  <entry>
    <title>종교와 민족, 그 피로 물든 갈림길 - 총칼 앞에서 갈라진 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55" />
    <id>https://brunch.co.kr/@@3Xqp/455</id>
    <updated>2026-04-22T23:03:41Z</updated>
    <published>2026-04-22T23:03:41Z</published>
    <summary type="html">강점이 시작되던 무렵, 이 땅의 종교들은 저마다 살길을 골랐다. 그 선택의 기록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애써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어느 종교가 총독부 앞에 고개를 숙이고, 어느 종교가 만주의 설원에서 총을 들었는가. 그 갈림길은 생각보다 훨씬 선명했다.  조선 오백 년 동안 유교에 짓눌린 채 산속으로 물러나 있던 불교는, 어쩌면 누구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gsJI2YiwpRN1VuPVC8g7RGB4Qw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헌법이 이미 답했다-4&amp;middot;19 하나로 공은 과에 덮인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59" />
    <id>https://brunch.co.kr/@@3Xqp/459</id>
    <updated>2026-04-22T05:31:24Z</updated>
    <published>2026-04-22T04:02:53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amp;quot;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amp;middot;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amp;middot;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amp;hellip;&amp;quot;  이 문장은 수사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판시한 바 있듯, 헌법 전문은 본문과 마찬가지로 법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며, 헌재는 2005. 6. 30. 2004헌마859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l4N5N1NKcExM8zL8ZF6q-sgiyYU.png"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3&amp;middot;1절엔 대통령이, 개천절엔 누가 서는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58" />
    <id>https://brunch.co.kr/@@3Xqp/458</id>
    <updated>2026-04-21T23:05:49Z</updated>
    <published>2026-04-21T23:05:49Z</published>
    <summary type="html">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맞아 이뤄진 첫 방한이었다. 교황은 일정 중에 국내 종교 지도자들과의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 대종교 측이 특별한 방식으로 동행했다. 당시 대종교 총전교는 봉우 권태훈 선생이었다. 그해 출간돼 100만 부 이상 팔린 소설 『단(丹)』의 실존 주인공이 바로 그 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3Xqp%2Fimage%2F78Qgo4DHo8N11Z_mm6ZqsqcXSwI" width="500" /&gt;</summary>
  </entry>
  <entry>
    <title>제도보다 사람이 먼저다 - 왕도 함부로 못 했던 나라</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57" />
    <id>https://brunch.co.kr/@@3Xqp/457</id>
    <updated>2026-04-21T09:08:42Z</updated>
    <published>2026-04-21T09:08: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선이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은 건 맞다. 그런데 그냥 이어받은 게 아니다. 오백 년에 걸쳐 훨씬 정교하게 다듬었다. 국왕과 관료기구라는 두 축을 중심에 놓고, 그 위에 견제와 균형, 기록, 교육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켜켜이 쌓아 올렸다. 동시대 유럽의 절대왕정과 비교해도 제도적 성숙함이 뒤지지 않는다.  국왕은 분명 최고 통치권자였다. 하지만 마음대로 할</summary>
  </entry>
  <entry>
    <title>당신은 지금 연결되어 있습니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56" />
    <id>https://brunch.co.kr/@@3Xqp/456</id>
    <updated>2026-04-21T01:41:45Z</updated>
    <published>2026-04-21T01:41:45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직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이상한 패턴 하나를 발견한다. 실력이 좋고 혼자서도 뭐든 해내는 사람이 어느 순간 조용히 밀려나 있다. 반대편에는 늘 힘들다며 손을 내밀면서도 정작 진짜로 필요한 순간에는 모습을 감추는 사람이 있다. 이 두 유형이 공통적으로 조직에서 배척당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 별거 아닌 것처럼 보</summary>
  </entry>
  <entry>
    <title>같은 신, 다른 칼날 ,그리고 한 뿌리를 지킨 사람들 - 종교 배타주의와 대종교의 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454" />
    <id>https://brunch.co.kr/@@3Xqp/454</id>
    <updated>2026-04-20T00:02:06Z</updated>
    <published>2026-04-20T00:02:06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나는 공자&amp;middot;석가&amp;middot;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지만,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amp;middot;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amp;quot; -백범 김구, 〈나의 소원〉  &amp;quot;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summary>
  </entry>
  <entry>
    <title>국경일 노래를 만든 사람들 - 다섯 곡, 두 사람, 하나의 뿌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3Xqp/393" />
    <id>https://brunch.co.kr/@@3Xqp/393</id>
    <updated>2026-04-19T00:56:07Z</updated>
    <published>2026-04-19T00:56:07Z</published>
    <summary type="html">국경일에는 노래가 있다. 삼일절에는 삼일절 노래, 광복절에는 광복절 노래.  달력에 빨간 날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그 노래를 듣거나 부른다. 그런데 그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가사를 썼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이 노래들이 법적으로 제정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없다.  1949년 정부는 국경</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