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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상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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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sangeonhan</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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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영화사연구자이자 도서수집가입니다. 책과 영화 그리고 이와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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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1-21T13:17:2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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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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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6T06:23:01Z</updated>
    <published>2026-04-16T06:23: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선예술영화촬영소 1962년 시나리오 백인준, 이득흥, 김덕운 연출 민정식, 임충호 촬영 백린기 미술 김세정 작곡 김창범 배역 문철삼 서경섭 형기 최기준 명덕 김동식 순희 장영진 동산리당지부서기 김인권 문치규 류청필 철삼 모 문부란 정일수 김상운 유분옥 김태순 길남(분옥의 동생) 박원일 분옥 모 김숙례 김영숙 이문자 최귀녀 주숙자 서호리농업합작사사장 탁시경</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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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5 노마만리 송년회 -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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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4T14:52:04Z</updated>
    <published>2025-12-24T14:34:09Z</published>
    <summary type="html">밀린 원고를 마무리하느냐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매년 해오던 송년회를 올해는 넘길까 고민했다. 하지만 김종원학술상 시상은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송년회 준비를 시작했다.  6개월간 해오던 김대현의 영화로 걷다 전시도 송년회에 맞춰 이영은 기증자료전으로 바꾸었다. 송년회 개최를 늦게 결정한지라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준엽 선생의 한양대 대학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0bD%2Fimage%2FawxqZAdbr7EtDJ7xizJO8vDlpQE"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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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토쇼콜라와 귤, 땅콩과자 -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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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8T00:02:36Z</updated>
    <published>2025-12-17T17:29:18Z</published>
    <summary type="html">김대현 선생님 유품인 우표와 엽서, 영화포스터들을 채윤희 선생님께 빌려 6개월 가까이 노마만리에서 전시했다. 12월 새로운 전시를 시작하면서 이전의 전시물들은 철거하였고 빌려올 때 그대로 포장해 보내야 한다.   전시가 풍성해서 포장해야 할 양도 많다. 액자들이 손상되지 않게 뽁뽁이(에어캡)로 한번 감싸고 은박 발포지로 다시 둘러쌌다. 일요일 영업을 끝내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0bD%2Fimage%2FtPHKUhv74pQ2VXmt4ZtQx0-qaGI.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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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안 노마만리는 영업 중 -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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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3T14:42:02Z</updated>
    <published>2025-12-13T14:23:07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2년에 문을 연 노마만리는 4년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애정어린 성원과 응원으로 무사히 어려운 고비들을 넘겨 온 것 같습니다.  노마만리의 개업식은 전시 개막으로 대신했습니다. 2022년 5월 시작된 노마만리의 개관 기념 전시는 1980년대 후반 조직된 민족영화연구소와 한겨레영화제작소의 자료들을 모은 &amp;quot;영화운동의 최전선&amp;quot;이었습니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0bD%2Fimage%2FephnCaB2GOd3tZenfht_ISFn0ss.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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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방 후 북한에서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13.(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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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3T05:16:36Z</updated>
    <published>2025-06-03T04:35:18Z</published>
    <summary type="html">1945년 8월 15일 일제는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했다. 조선은 해방되었고 미래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문학인 중에서는 임화, 김남천, 이태준 등이 주도하여 문학예술인을 망라한 조직체인 문화건설중앙협회의회를 구성하였다.  문인보국회가 주도하던 일제말기의 문학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던 윤기정은 해방 후의 상황을 긍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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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건설 사건과 카프 해산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1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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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2T21:32:18Z</updated>
    <published>2025-06-02T11:18: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카프 제1차 검거 사건으로 감옥에서 나와&amp;nbsp;감시 상태에 놓인 윤기정은 남대문시장 안에 있는 점포를 관리하며 문필 활동에만 전념할 뿐, 더 이상 카프영화부 활동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를 대신하여 카프영화부의 다른 멤버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amp;lt;지지 마라 순이야&amp;gt;를 만들기 위해 광주로 내려갔던 김태진과 이규설은 함흥으로 돌아가 감옥에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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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프 제1차 검거 사건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1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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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30T11:58:33Z</updated>
    <published>2025-05-30T11:06: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국에서 카프 맹원들이 속속 잡혀 들어와 조사를 받았다. 예비검속 혹은 각종 사건과 관련하여 이전에 경험한 일제 경찰의 조사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 따귀를 때리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식의 구타와 폭력을 넘어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일본인 고등계 주임의 지휘 아래에 발가벗겨진 채 손발이 묶여 공중에 매다는 &amp;lsquo;비행기 태우기 고문&amp;rsquo;과 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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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복키노와 &amp;lt;지하촌&amp;gt;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1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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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30T09:54:20Z</updated>
    <published>2025-05-27T10:43:41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본에 파견되었던 임화가 이북만의 여동생 이귀례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뿐 아니라 일본에서 영화 공부를 하던 김남천도 임화와 동행해 왔다. 윤기정은 일본에서 돌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서울키노를 대신할 카프의 새로운 영화제작 조직 구성에 착수했다.  영화제작 조직의 이름은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블루칼라, 청복키노였다. 청복키노는 1930년 11월 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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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프영화부의 분열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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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26T06:14:57Z</updated>
    <published>2025-05-26T04:40: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찬영회 사건으로 신문기자들의 사과를 받아 낸 영화인들은 홍보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신문사 영화 기자들과 소원하게 지낼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안석영처럼 찬영회 회원 몇몇은 카프 소속이었기에 신흥영화예술가동맹을 이끌던 윤기정은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이와 같은 상황은 신문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신흥영화예술가동맹 소속의 여러 영화인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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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흥영화예술가동맹의 설립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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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24T03:46:01Z</updated>
    <published>2025-05-23T09:04: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총파업이 벌어지고 있던 원산을 떠난 주인규, 김태진, 김형용 등은 그들의 근거지인 함흥으로 돌아온다. 이들은 원산총파업의 진상 조사를 위해 파견된 변호사 이인을 제작자로 세워 1929년 2월 신흥영화공장을 조직하고 &amp;lt;연애와 종&amp;gt;, &amp;lt;충견의 사&amp;gt; 등의 작품을 제작할 계획을 세운다.   코민테른 「12월 테제」에 맞춰 노동자들이 많은 함흥을 근거지로 영화활동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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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유랑&amp;gt; 이후 카프영화란?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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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9T13:15:21Z</updated>
    <published>2025-05-19T11:17: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종명의 원작을 김영팔이 각색한 영화 &amp;lt;유랑&amp;gt;은 주인공 영진(임화 분)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영진은 피폐한 농촌의 삶을 바꿔보려 야학을 운영한다. 방랑을 떠나기 전 알고 지내던 순이(조경희 분)와 사랑하지만 마을을 장악한 지주(서광제 분)는 소작인의 딸 순이를 자기 바보 아들(추용호 분)과 결혼시키려 한다. 영진은 지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지만 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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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영화예술협회의 영화제작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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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8T15:34:46Z</updated>
    <published>2025-05-18T12:41:00Z</published>
    <summary type="html">1924년 부산에서 닻을 올린&amp;nbsp;조선키네마주식회사는 &amp;lt;해의 비곡&amp;gt;과 &amp;lt;총희의 연&amp;gt;, &amp;lt;신의 장&amp;gt;, &amp;lt;촌의 영웅&amp;gt; 등 네 편의 영화를 제작한 후 일본인 주주 사이의 갈등으로 문을 닫게 된다. 이 회사의 핵심 배우인 안종화는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amp;lsquo;안종화 일행&amp;rsquo;이라는 이름으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 제작한 필름을 가지고 조선인 배우들과 함께 경상도 지역 순회 흥</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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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프 1차 방향 전환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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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2T08:20:46Z</updated>
    <published>2025-05-12T05:54: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윤기정이 조선영화예술협회의 연구생들을 대거 카프로 끌어들인 것은 카프 1차 방향 전환의 강령을 실천한 것이었다.  6.10 만세운동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1926년 11월 15일, 사회주의 운동 단체인 정우회에서 새로운 운동 방향을 제시한 &amp;ldquo;정우회 선언&amp;rdquo;을 발표한다. 이 선언을 통해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좌파 진영은 협동 전선을 모색하게 되었다. 결국</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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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장 중요한 예술, 영화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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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1T09:30:50Z</updated>
    <published>2025-05-11T08:14:51Z</published>
    <summary type="html">보성고보 졸업반이던 조중곤은 문예잡지 『생장』의 현상모집에 단편 「절교」를 투고하여 당선된다. 1925년 『생장』 5호에 실린&amp;nbsp;이 작품에 대해&amp;nbsp;윤기정은 '친구 사이에 한 여성을 중심으로 얽혀진 애정 때문에 배신행위를 함으로써 절교를 선언하는 이야기가 대체 인민들에게 무엇을 준단 말이며, 제국주의자들에게 대항해 떨쳐 일어선 노동자, 농민들의 현실을 왜 외면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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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프의 깃발을 들다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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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8T23:40:10Z</updated>
    <published>2025-05-08T16:08: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유학생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서울청년회, 화요회, 북풍회 등 사상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다. 특히 관동대지진으로 발이 묶인 유학생들은 더욱 활발하게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윤기정이 야구를 통해 관여했던 (스포츠) 운동 단체는 이제 또 다른 의미의 (사회주의) 운동 단체로 대체되었다.  도쿄에서 유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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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프 설립의 전야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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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8T05:49:11Z</updated>
    <published>2025-05-08T04:50: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본으로 떠났던 김영팔이 1923년 여름 방학을 맞아 형설회 순회공연단의 일원이 되어&amp;nbsp;조선으로 돌아왔다. 그가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1921년 6월 도쿄유학생이 중심이 된 동우회 순회공연단의 연극을 접하면서였다. 동우회는 순수 유학생 단체인 학우회와 달리 유학생과 노동자들의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단체에서는 도쿄의 우리 고학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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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년 윤기정 - 카프영화의 지도자 윤기정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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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6T11:21:27Z</updated>
    <published>2025-05-06T09:23: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윤기정은 1903년 남대문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던 윤태희(尹泰熙)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성부 수창동 60번지이며 1932년 당시 주소는 수창동 142번지였다. 1934년 무렵에는 경성부 죽첨정 3 정목 334번지로 이사했다.  그의 형제 중 서양음악을 했던 남동생 윤기항(尹基恒)은 무사시노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전공한 초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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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5년 나의 출판 계획 -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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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1-11T20:09:21Z</updated>
    <published>2025-01-11T14:47: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난 12월부터&amp;nbsp;노마만리는&amp;nbsp;토요일, 일요일&amp;nbsp;일주일에&amp;nbsp;이틀만&amp;nbsp;문을&amp;nbsp;연다.&amp;nbsp;일 년&amp;nbsp;내내&amp;nbsp;쉬지&amp;nbsp;않고&amp;nbsp;문을&amp;nbsp;열었으니&amp;nbsp;추위를&amp;nbsp;핑계 삼아&amp;nbsp;겨울에라도&amp;nbsp;주중에는 쉬자는 취지이다.  오늘 같이 날이 추운 날에는 온풍기를 틀어도 하루종일 따뜻하지 않다. 찬 바람을 피해 노마만리를 찾아오는 손님들께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평일에 따뜻한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0bD%2Fimage%2F6f6DTSBPzsEqOumpywr2EZu4YqM.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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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4년 노마만리 북토크 -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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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31T01:31:37Z</updated>
    <published>2024-08-08T17:40: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난 8월 1일 오후 노마만리에서 두 번째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저술출판 지원 사업으로 발간된 이선주 선생님의 &amp;ldquo;씨네필의 시대&amp;rdquo;와 이윤종 선생님의 &amp;ldquo;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amp;rdquo;에 대해 저자들의 책 소개와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0여년 전&amp;nbsp;연세대 백문임 선생님 주도하던 할리우드 세미나에서 만나 동학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이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0bD%2Fimage%2FbEREXdNN3uoI0A_A9MWoLY51id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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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즘 노마만리는 이렇습니다. -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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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7-11T00:18:48Z</updated>
    <published>2024-07-10T19:32: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새벽 3시에 아파트의 화재경보가 울려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 화재는 없었고 경보는 오작동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 상황인지라 눈이 말똥말똥이다. 노트북을 꺼내 본다.       어느새 노마만리가 3년 차를 맞았다. 지난 5월부터 노마만리 2주년 기념 전시로 &amp;ldquo;노만의 한국영화사 60년&amp;rdquo; 전시를 열고 있다. 1950년대부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0bD%2Fimage%2FFJWOipIgqrLhG3TWDJkr5onW7Mc.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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