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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현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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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공부하다 느낀 것들을 소소하게 적어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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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5-25T06:38:3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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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귀종재흥' 당시의 지바씨 (4) - 무사와 '귀종'의 관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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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8-12T05:01:12Z</updated>
    <published>2023-07-01T05:17:31Z</published>
    <summary type="html">* 이 글은 2021년 6월 26일 지바시(千葉市)에서 개최한 2021년도 지바씨(千葉氏) 공개 시민강좌 〈무가정권 성립기 동국 무사의 심성: '귀종' 요리토모와 지바 일족〉에서 김현경이 강연한 동명의 강연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 및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 지난 글에 이어서&amp;nbsp;-  그렇게 되면, 요리토모는 귀종이냐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이 기준에 따르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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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조우는 이진우인가 - 창녕 성씨 낭장공파보를 둘러싼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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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7-17T09:13:09Z</updated>
    <published>2023-03-02T15:32:09Z</published>
    <summary type="html">1930년에 간행된 『경주이씨세보』의 백사공파 계보를 보면 대한제국 때 판사직을 지내다가 물러나 변호사로 활동한 이진우(李珍雨, 1883~1932)의 이름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진우의 부인인 창녕 성씨의 이름도 나온다. 창녕 성씨는 성영돈(成永敦)의 딸로 신사년, 즉 1881년에 태어났다고 하니 이진우보다 두 살 많은 것이 된다. 2006년에 발행&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3rhdM--HD9OBvZldgkqSWSv-R94.jpg" width="263"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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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신고보와 이훈우의 관계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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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2-16T00:37:58Z</updated>
    <published>2023-02-15T10:1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선은행 조사부에서 발간한 다이쇼 9년(1920) 10월 상반 『조선사정』에는 정치 및 사회 부문에서 '진주고보 설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진주의 조선인 유력자 사이에 교육열이 왕성해져, 고등보통학교 설립에 대하여 여러 차례 협의를 마친 결과, 박재표(朴在杓) 씨를 창립위원장으로 추천하여 40만 원의 예산을 가지고 기부금을 모집 중이었는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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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귀종재흥' 당시의 지바씨 (3) - 귀종이란 무엇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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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7-01T05:17:56Z</updated>
    <published>2022-11-12T15:57:06Z</published>
    <summary type="html">* 이 글은 2021년 6월 26일 지바시(千葉市)에서 개최한 2021년도 지바씨(千葉氏) 공개 시민강좌 〈무가정권 성립기 동국 &amp;nbsp;무사의 심성: '귀종' 요리토모와 지바 일족〉에서 김현경이 강연한 동명의 강연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 및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 지난 글에 이어서&amp;nbsp;-  다음으로 귀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귀할 귀(貴)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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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귀종재흥' 당시의 지바씨 (2) - 요리토모에 대한 가인 의식과 『아즈마카가미』 기사의 문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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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7-01T02:27:03Z</updated>
    <published>2022-11-01T11:09:12Z</published>
    <summary type="html">* 이 글은 2021년 6월 26일 지바시(千葉市)에서 개최한 2021년도 지바씨(千葉氏) 공개 시민강좌 〈무가정권 성립기 동국 무사의 심성: '귀종' 요리토모와 지바 일족〉에서 김현경이 강연한 동명의 강연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 및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 지난 글에 이어서&amp;nbsp;-  먼저 미우라씨의 경우 겐포(建保) 원년(1213) 미우라 요시무라(三浦義村)&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wxIeMAlkPlv6x9s4IFhSUYx1Pok.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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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귀종재흥' 당시의 지바씨 (1) - 이노하나성과 오차노미즈, 지쇼-주에이 내란의 시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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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1-09T07:18:09Z</updated>
    <published>2022-10-09T07:54:39Z</published>
    <summary type="html">* 이 글은 2021년 6월 26일 지바시(千葉市)에서 개최한 2021년도 지바씨(千葉氏) 공개 시민강좌 〈무가정권 성립기 동국 무사의 심성: '귀종' 요리토모와 지바 일족〉에서 김현경이 강연한 동명의 강연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 및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지금 소개를 받은 도쿄국립박물관의 김현경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강연의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WK-ocg8pQu7GaIl4d7nlScUSub8.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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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 박길룡 선생을 추억함 - 유상하가 남긴 박길룡에 대한 소개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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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6-08T11:55:00Z</updated>
    <published>2022-07-06T14:41:27Z</published>
    <summary type="html">* 이 글은 『조선건축』 제2권 제1호(1947년 12월)에 게재된 건축가 박길룡에 대한 소개와 유상하(柳相夏)의 글 「故 朴吉龍 先生을 追憶함」을 현대 문장에 맞게 약간 손을 본 것이다.  건축가 고 박길룡 선생  1. 약력 1898년 11월 20일 탄생 1919년 3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1919년 4월~1932년 7월 조선총독부 근무 1932&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1Wv1gO8TDtBq23blzkxfiP-0L9I.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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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번역의 곤란함 - 어떻게 읽을/읽힐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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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8-23T15:21:58Z</updated>
    <published>2022-06-07T07:50: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승려 지엔(慈圓, 1155~1225)이 쓴 역사철학서 『구칸쇼(愚管抄)』는 박은희, 신재인, 유인숙, 박연정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전근대 일본의 문헌에 대한 번역물이 그렇게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오늘날 한국의 지식계에서 매우 반갑고도 소중한 작업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구칸쇼』 제7권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우선 번역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knxuEVEAOAnxsF4NT3Fj42atpPE.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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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재발견' 이전의 이훈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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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5-10T01:16:59Z</updated>
    <published>2022-03-28T02:41:24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t;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연구&amp;gt;가 2020년에 발표되면서 이훈우의 '재발견'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 이훈우라는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건축사학 분야에서 이훈우는 이미 &amp;lt;조선총독부 청사 신영지&amp;gt;나 1920년대 신문의 기고문 등을 통하여 당대 활동한 건축가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떤 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DuRXe0EwcBamFQKUzo4wGkspXTU.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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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버지 이종구의 생애 (1) - 묘갈명, 묘비명, 하동군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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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1-21T09:09:24Z</updated>
    <published>2022-01-19T10:41: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종구(李鍾龜, 1849~1917)는 건축가 이훈우의 아버지로, 이규철과 수성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양반이었다. 이훈우와 관련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가 어떤 배경 속에서 성장하였고, 어떻게 건축 유학을 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아버지 이종구의 행적을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논문 &amp;lt;건축가 이훈우에 대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MX_KfTUxps4-IibZhoYtti-jYSg.jpg" width="35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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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쿠다 사진관 (2) - 정소군, 그리고 사진관의 마지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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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1-07T10:18:23Z</updated>
    <published>2022-01-05T13:15: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편에서는 오쿠다 사진관이 1910년대부터 영업을 시작하였고, 1920년에는 사진관 건물 3층에 이훈우건축공무소가 들어섰으며, 1926년에는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이 하숙을 하였던 사실을 언급하였다. 윤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던지고 입주자를 잃은 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1926년 11월 1일자 《조선일보》에는 &amp;lt;고요한 우리 악단에 새로 비친 별 '바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67FjlW3Y0lauD8r06w4VHHlxuUE.png" width="376"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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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쿠다 사진관 (1) - 이훈우의 사무소, 윤심덕의 거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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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1-05T14:09:06Z</updated>
    <published>2022-01-03T09:14: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성악가이자 가수, 배우였던 윤심덕과 연극인 김우진이 현해탄을 건너던 배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다는 소식이 경성 거리에 퍼져나가던 1926년 8월, 윤심덕이 살던 방에 신문기자가 들이닥쳤다. 윤심덕은 수은동(지금의 묘동) 60번지 오쿠다(奧田) 사진관 건물 2층의 다다미 깔린 일본식 방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사&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On2UuWTtlU5SqtUBcA62_Tii6pE.jpg" width="471"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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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리타 마사야스를 찾아서 - 森田正安を探して</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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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1-22T15:52:16Z</updated>
    <published>2021-11-20T11:09:14Z</published>
    <summary type="html">* 이 글은 교토대학 일본사연구실의 동문회에 해당하는 독사회(讀史會)에서 발행하는 『국사연구실통신』 제63호(2021년 가을호)에 실린 글 「모리타 마사야스를 찾아서」를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金玄耿「森田正安を探して」『国史研究室通信』63、2021年10月) 2019년 3월, 연구지도 인정을 받아 교토대학(京都大學)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같은해 4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tacLGg03wftSuVlwvdo8ibAiirg.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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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훈우의 서울살이(補) - 구등기부와 제적부를 활용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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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4T07:24:58Z</updated>
    <published>2021-09-18T12:09:28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난번에 올린 글&amp;nbsp;&amp;lt;이훈우의 서울살이&amp;gt;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인, 추정하였다.  * 이은우는 1912년 11월 30일 당시 익선동 75번지를 소유, 1913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하동으로 낙향 * 1911년에 귀국한 것으로 보이는 이훈우는 1912~13년에 이은우의 익선동 집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음 * 이훈우는 1925년 8월 당시 경성부 운니동에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7jCh_bKNTqfEqODCF28qQwXyMJM.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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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훈우의 서울살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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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18T10:44:13Z</updated>
    <published>2021-08-18T05:16: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훈우(李醺雨)의 큰형 이은우(李恩雨)는 1909년에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전문부 경제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해 10월에는 대한제국 궁내부 시종원 사무에 촉탁되었다. 또한 1910년 4월에는 보성전문학교의 법률 강사로 취임하였다. 한국병합이 일어난 뒤에도 이은우는 이왕직(李王職) 찬시(贊侍)에 임명되어 시종 역할을 계속 수행하였다. 1913&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pU7UfBhpjIpbvCyhOxlVcOsRerY.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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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소앙의 생일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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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5-25T21:26:04Z</updated>
    <published>2021-05-24T09:39:48Z</published>
    <summary type="html">삼균주의를 주창한 사상가이자 정치인인 조소앙(趙素昻).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amp;lt;한국어 위키백과&amp;gt;에서는 그의 생일이 1887년 4월 30일이라고 한다(2021년 5월 24일 열람). 이 내용은 &amp;lt;영어 위키백과&amp;gt;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amp;lt;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amp;gt; 조소앙 항목(임중빈 집필)에서는 1887년 4월 10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5aPmtrVMNWMM5ZRNhgow58jv7W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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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메이지가쿠인 동창회 명부의 한국인(추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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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5-12T20:08:56Z</updated>
    <published>2021-05-12T11:06: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전에 1962년도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 동창회 명부를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열람하였습니다. 동창회 명부에는 도쿄일치신학교, 신학부, 쓰키지대학교, 도쿄일치영화학교, 고등학부, 고등상업부, 전문학교, 보통과(&amp;rarr;중학부), 히가시야마학원 신학부, 히가시야마학원 중학부, 히가시야마학원 영어상업과 등을 졸업한 학생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한국인(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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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뇌(耒)씨 성의 정체 - '뇌창목'을 둘러싼 해프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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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4-05T14:15:31Z</updated>
    <published>2021-03-18T08:22: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작년 12월 10일에 이훈우건축공무소 100년 기념 온라인 토크에서 발표를 맡게 되어, 식민지 조선에 세워진 민간 건축사무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상공업자 명단을 실은 책자를 열람하던 중에 한 건축사무소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뇌창목(耒昌穆)건축사무소였다. 순간 눈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耒(쟁기 뢰) 자였고, 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KM_BOMR7jgLf2zxgfBrLwRkCKI0.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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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희우에서 이훈우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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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1-12T07:16:46Z</updated>
    <published>2021-03-12T12:59:24Z</published>
    <summary type="html">1920년 12월에 이훈우건축공무소를 개업한 건축가 이훈우는 이듬해 3월, 《동아일보》에 자신의 건축사무소 광고를 실었는데, 내용을 보면 실질적인 개업광고에 해당한다. 그는 광고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본인이 예전에 일본에 유학하여 관립 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뒤 총독부에 봉직하여 실지와 기술을 연구하였다가   이를 통해서 이훈우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rNOsY_0H7rslJsoPGOlaB-szt2w.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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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민주를 찾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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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1-07T00:52:13Z</updated>
    <published>2021-02-25T07:59: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 위에 태어나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기억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역사의 기록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지만 그 정체를 밝히기에는 남겨진 자료가 턱없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 사람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박물관의 여러 업무와 기능 중 하나로 박물관에 소장된 수장&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KRZ%2Fimage%2FFQl3yjzP2ejCJFsFSD3pij0komE.PNG" width="381"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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