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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메장탕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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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mesentent</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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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정확한 해석을 꿈꿔요. 이론을 토대로 문학을 해석하고, 포착불가능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문학을 읽습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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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9-26T13:23:0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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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쟁이의 에세이(2): 읽기란 무엇인가 - 책과 사유에 대한 단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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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10-18T15:50:37Z</updated>
    <published>2019-08-22T07:4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나는 책을 다섯 가지 종류로 분류하곤 했다&amp;rdquo; 숙명여대 국문학과 교수 김응교의 말이다. 그는 이와 같은 선언적 고백을 한 후, 각각의 책들이 어떤 것인지, 그 속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는 쓰레기이다. 둘째는 서점에서 서서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 되는 책이다. 셋째는 사둬야 할 책이다. 넷째는 비닐로 싸 둬야 할 책, 선물해야 할 책이다. 이것들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L8%2Fimage%2F8b6gL3d56U5hHCmiKT9DLXc-mBs.JPG" width="362"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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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철학자의 시선(1): 악이란 무엇인가 - 아도르노와 아우슈비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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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7-22T13:15:02Z</updated>
    <published>2019-08-19T06:53:20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squo;알쓸신잡 프라이브루크 편&amp;rsquo;에서 히틀러에 관한 논의를 할 때, 한나 아렌트가 &amp;lsquo;예루살렘의 아이히만&amp;rsquo;에서 논한 &amp;lsquo;악의 보편성&amp;rsquo;, 곧 누구나 악을 행할 수 있다는 당시 논란이 되었던 담론을 끌고 왔다. 하지만 내가 방송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사상가는 아렌트가 아니었다. 내겐 아도르노였다. 아우슈비츠의 원인이란 야만이 아니라 계몽의 방식 자체에 있다는 뼈 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L8%2Fimage%2FtlxRxU7UBXMRDppgOOJQGjlJRLQ.jpg" width="288"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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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쟁이의 에세이(1): 글쓰기의 태도 - 제일 중요한 것은 개념이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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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02-13T04:57:52Z</updated>
    <published>2019-08-18T06:48:22Z</published>
    <summary type="html">3, 4년 전만 해도 내가 알지 못하는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글을 쓰곤 했다. 니체, 해겔, 칸트, 데리다 등 읽지도 않고 대충 개론서 수준의 이해를 기반으로 그 사람들의 철학에 대해 뭔가 아는 마냥 글을 썼다. 단순히 내 감정을 토해 내거나, 일상의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느낀 적 없는 감정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단어, 개념들을 사용해 글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L8%2Fimage%2Fje-xwKXPcVYMQR2X4cxkqVlyTnk.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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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본주의 속에서 사랑한다는 것(더 랍스터 비평) - 우리는 테크노를 출 수 있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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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1-07T13:54:44Z</updated>
    <published>2019-08-17T02:50: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영화 &amp;lsquo;더 랍스터&amp;rsquo;는 모두가 커플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지극히도 인위적인 전제 위에서 시작된다. 이혼, 또는 사별 등으로 솔로가 된 모든 인간은 45일 동안 호텔에서 새로운 커플을 찾아야 한다. 만약 45일 동안 새로운 연인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그녀는 호텔에 입주할 당시 자신이 선택한 동물이 되어야 한다. 더 랍스터의 세상에서 생존과 커플. 그 이외의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L8%2Fimage%2FrIIi1aglXcVcDKsxZyq6ZE9aRgo.jpg" width="42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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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금은 사랑이 필요한 시간 - 철학과 문학의 눈으로 바라본 '사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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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1T08:41:35Z</updated>
    <published>2019-08-16T09:51:31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랑이란 감정을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바로 장승리의 '말'이다. 그는 '말'에서 &amp;quot;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어요&amp;quot;라는 말을 사용했다. 도대체 정확하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 시를 볼 때마다 고민했던 구절인데 최근 정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자신의 가치와 이상에 비추어 타인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L8%2Fimage%2FM-r2s7UV--XaLOxPui1vOQGlH1Y.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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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등이라는 허울된 감정의 표상 - 철학으로 영화 '내일을 위한시간' 톺아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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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10-18T15:51:05Z</updated>
    <published>2019-08-16T03:59:06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squo;내일을 위한 시간&amp;rsquo;은 자전거를 탄 소년의 감독 다르덴 형제와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영화이다. 기교 없이도 사회적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 다르덴 형제와 관객들이 마치 꼬디아르 옆에서 영화를 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몰입도 높은 연기력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이다. 때문에 영화는 어떤 극적인 장면도 없이 평화롭게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도, 지극히도 잔인&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L8%2Fimage%2FaCg4B2JGJTzEJwCRC31lAAOU1T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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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슬픔이란 무엇인가 - 철학과 문학, 그리고 슬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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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0-23T09:00:32Z</updated>
    <published>2019-08-16T02:15:10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라타니 고진은 원인과 책임의 영역을 분리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 있어 원인을 부모에게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책임이란 결국 개인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공적인 윤리성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원인은 슬픔에, 그것이 발현되는 현상에 있어 슬픔과 구분되어여만 한다. 신형철의 &amp;lsquo;슬픔을 공부하는 슬픔&amp;rsquo;은 이러한 이론과 슬픔의 아득한 거리, 구별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CL8%2Fimage%2FXBuG4av-c8PK5a-SnAnQ3yS20w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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