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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규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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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ahnkyumin</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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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시 쓰고 차 마시는 사람</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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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9-15T00:37:2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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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상과 배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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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1T22:34:56Z</updated>
    <published>2025-05-26T23:37:46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상과 배경    01 언어는 이것과 저것의 비교를 통해서만 세계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것과 저것의 비교를 포기하는 것은 &amp;lsquo;고정된 가치가 없는 상호이전의 언어형식&amp;rsquo;이 정지된 상태, 곧 세계의 정지를 뜻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설명이 가리키는 언어의 본질적인 특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말은 어딘가 이상해 보입니다. 앞에서 말&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yTp%2Fimage%2FKZQVVVsBzC3BKBxxIMmKOUjoB50.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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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봄의 주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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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24T02:48:46Z</updated>
    <published>2025-05-23T14:53:48Z</published>
    <summary type="html">봄의 주체    01 시인 이상(李箱)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가리켜 위조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위조된 자신이 진짜 자신을 해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하며, &amp;lsquo;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amp;rsquo;라는 시어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게 된 까닭은 거울 속을 들여다볼 때마다 자신의 눈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대상화하여 보고 있&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yTp%2Fimage%2FoVjYGk5AH88NFeKHPWg7y7df6j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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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명명 행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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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24T00:49:44Z</updated>
    <published>2025-05-22T14:33:05Z</published>
    <summary type="html">01 경계는 언어의 이원 구조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처음부터 언어로 고정된 채로 태어나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어로의 분별 이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다음의 몇 가지 단어들 가운데 다른 단어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amp;lsquo;꽃&amp;rsquo;이라는 단어에만 시선을 집중해 보겠습니다.  구름 하늘 바람 들판&amp;nbsp;꽃&amp;nbsp;나비 나무 냇물 바위  &amp;lsquo;꽃&amp;rsquo;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을 때 그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yTp%2Fimage%2FCgOIuQSs4NoFKDMpgju1s3SJQh0.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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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연과 정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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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21T11:38:50Z</updated>
    <published>2025-05-21T08:34: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연과 정상   01 고정된 실체를 지향하는 경계의 언어는 이분법으로 대상화되어 나타나는 결핍의 세계를 좋아하며, 존재의 가능세계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경계의 언어에 걸려든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와 편리, 사상에 반대되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을 언어로 규정하고 호명한 뒤 차별과 격리의 단계를 거쳐 벌을 내리고자 합니다.&amp;nbsp;이렇게 이름을 붙여 호명되는 순간부터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yTp%2Fimage%2Foa7FJJc6tUuKvB-7E9F69_n8gss.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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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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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27T02:28:26Z</updated>
    <published>2025-05-20T04:28:26Z</published>
    <summary type="html">경계  01 언어로 그려진 세계의 지도와 그로 인한 경계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가변적이고 상대적으로 규정됩니다. 언어의 경계로 지어진 환경은 인간에게 고정된 실체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부추깁니다. 그렇게 우리는 읽히고 해석되는 대로의 종합명제인 몸과 마음을 진짜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정되어 정체가 고립된 개인은 언어로 위조된 경&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6yTp%2Fimage%2FEGWsWyk5OhdNRYQh3NJIsAjJ5a4.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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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물 안 개구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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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20T05:25:12Z</updated>
    <published>2025-05-19T05:02:05Z</published>
    <summary type="html">01 언어의 이원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대상은 모두 내부의 일그러짐입니다. 우리는 이 내부의 반응을 마치 외부의 사물인 것처럼 바라보지만 이러한 믿음은 허상을 실상으로, 가변적인 것을 고정적인 것으로 취급하려는 에고의 바람에 불과합니다. 물론 자아의 입장에서 인식된 대상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몹시 괴이한 주장처럼 들릴 것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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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할 수 없는 비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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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7T07:17:22Z</updated>
    <published>2025-05-16T09:48:12Z</published>
    <summary type="html">01 눈앞에 무엇이 보이든, 그것을 파헤쳐 보았는데도 여전히 요소명제들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종합명제입니다. 종합명제는 분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명제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요소명제들 역시 또 다른 요소명제들로 이루어진 종합명제입니다.  02 호텔 레스토랑에서 처음 보는 음식을 앞에 둔 당신에게 세계의 일부로써 존재하는 음식은 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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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허술한 이름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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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6T08:39:57Z</updated>
    <published>2025-05-15T09:11:29Z</published>
    <summary type="html">01 절대적인 사물이 없다면 가능한 것은 상대적인 사실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amp;lsquo;검은색 볼펜&amp;rsquo;이라는 사실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것을 올바로 지목하려면 요소명제를 모두 나열해야만 하는데 인간에게는 볼펜을 이루는 요소명제들을 정확하게 나열할 역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amp;lsquo;볼펜&amp;rsquo;이라는 약속된 종합명제를 붙여놓고 믿어버리는 것이 고작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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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는 만큼의 세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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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5T03:45:35Z</updated>
    <published>2025-05-14T11:41:33Z</published>
    <summary type="html">01 &amp;lsquo;아는 만큼 보인다&amp;rsquo;라는 격언은 참 기묘한 말입니다. 정말로 아는 만큼만 보인다면 모르는 것은 눈으로 볼 수조차 없다는 말일까요? 말장난 같이 들리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미끄러져 &amp;lsquo;잘못&amp;rsquo; 아는 만큼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세계는 제법 많은 부분들이 언어로 기록된 허구의 페이지이며,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록되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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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언어의 이원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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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1T08:36:29Z</updated>
    <published>2025-05-13T04:00:55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람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말 너머의 어떤 순간에 있다. Julio Cortazar 『La noche boca arriba』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01 언어란 다른 언어와의 차이를 통해서만 의미를 지닙니다. 이 말은 언어가 이것을 저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이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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