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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철인이십팔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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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dskhan</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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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철인이십팔호의 브런치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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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2-25T16:12:2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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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자] 다시 읽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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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3T07:42:25Z</updated>
    <published>2021-10-03T04:37:33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재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성립선행조건으로 역사와 전통 속에 습윤 되어 있는 그 특질을 추출함으로써 바로 여기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와 진행되어야 할 방향의 기획을 위한 단서로 채택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 원형으로서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인 제환공(齊桓公)을 보좌한 관중(管仲)의 행적과 성찰, 실제 현실에서의 판단과 결정 및 실천을 반추하고, 책</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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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정한 2인자 팔로워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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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4T21:01:51Z</updated>
    <published>2021-10-03T04:35: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역사 속의 2인자를 찾는 일은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빛나는 2인자도 있을테고 숨어 있는 2인자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찾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선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습적으로 알고 있는 2인자에 대한 얘기부터 찾아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일반적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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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인자와 2인자, 그 경계 짓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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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3T04:34:53Z</updated>
    <published>2021-10-03T04:34:17Z</published>
    <summary type="html">배우 한석규는 외모 반듯하고 좋은 품성을 지닌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세종을 맡은 송중기와 함께 장년의 세종을 연기하면서 역사상 가장 성군으로 칭송 받는 제왕 세종의 면모와 인간 세종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역시 세종과 같이 명민하고 훌륭한 왕을 연기하려면 송중기 같이 잘생기고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젊</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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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초 질문으로의 회귀  정치란 무엇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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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2T01:18:18Z</updated>
    <published>2021-10-01T13:54: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최종적으로 [관자]가 지향한 &amp;lsquo;정치의 요체는 무엇인가?&amp;rsquo; 그 해답은 [관자] 첫 편인 ｢목민｣의 배치에서 드러나듯이 예의염치(禮義廉恥)의 확립이다. &amp;ldquo;무릇 땅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임무가 사계절을 살피는데 있고 창고가 가득 차도록 지키는데 있다&amp;rdquo;는 첫 구절은 통치자의 의무가 신민의 생존과 안전(安民)을 위해 &amp;lsquo;백성을 거처하게 하고(定民) 일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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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의염치를 아는 세상을 꿈꾸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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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2T00:10:46Z</updated>
    <published>2021-10-01T13:52:19Z</published>
    <summary type="html">[국어]의 기사는 제환공에게 치국을 제안한 관중의 대답을 보여준다. &amp;ldquo;산림과 하천을 각각 철에 따라 개방하거나 금지하면 백성이 구차히 나무를 베거나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고 고원의 평야와 대륙과 구릉지에 개울 길을 내고 정전과 곡식 심는 논과 삼 재배하는 전답을 고르게 분배하면 백성이 한스러워짐이 없고 백성들의 농사철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백성들이 부유해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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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천하(匡天下)하는 패왕(覇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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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2T01:18:31Z</updated>
    <published>2021-10-01T13:50:37Z</published>
    <summary type="html">만약 군주의 의무로서 치국과 부민의 상관성을 인지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면, 선의와 효용성을 보장하는 왕정과 패정의 기제 역시 군주에게는 상부(相符)해야 할 의무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미 [관자]에 내포된 법치와 예치의 주체인 밝은 군주로서 성왕은 그가 상도로서 법 또는 예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차이점을 가질 뿐 &amp;ldquo;패업과 왕업을 이룰 수 있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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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존법(尊法)=존덕(尊德)=존군(尊君)</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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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1T13:48:32Z</updated>
    <published>2021-10-01T13:48:32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럴 경우 존법과 존덕은 존군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설정되며, 그 실체는 패왕(覇王)으로 규정되는 새로운 통치자일 것이다. 비록 새로운 통치자에 의한 예법겸전의 질서가 창출된다 할지라도, &amp;ldquo;(순임금과 문왕은) 뜻을 얻어 중국에서 도를 실행한 것은 마치 부절을 맞춘 듯 똑같았다. 앞선 성인이 뒤에 온 성인이 행한 법도는 동일했다&amp;rdquo;는 [맹자]에서 소개한 부절(符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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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좋은 정치, 법의 엄격함과 덕의 온화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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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1T13:47:32Z</updated>
    <published>2021-10-01T13:47:32Z</published>
    <summary type="html">법제(法制)에 의한 지배와 덕례(德禮)에 의한 지배의 동일성 구조를 전제로 할 때, 양자를 겸전하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제란 어떤 모습일까? 이미 제기되었듯이 &amp;ldquo;명령하면 시행되고 금지하면 중지되며 법이 지켜지고 교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마치 몸이 마음을 따르듯 하는 것이 정치의 기대하는 바&amp;rdquo;는 법치와 예치의 최종적인 상태이다. 그것은 &amp;ldquo;무리를 해산하고 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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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가는 공정한 분배의 기획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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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10-01T13:46:28Z</updated>
    <published>2021-10-01T13:46:28Z</published>
    <summary type="html">[관자]의 &amp;lsquo;본업&amp;rsquo;(本事)으로 농업과 &amp;lsquo;말업&amp;rsquo;(末産)으로 상업의 전도가 신민의 의무태만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고는 무슨 근거에서 제시되는 것일까? 물론 농본말리 또는 중농억상의 논거는 &amp;ldquo;농민이 힘은 가장 많이 드는데 이익을 보는 것은 적어 상인이나 손재주 있는 사람만 못하다&amp;rdquo;는 경험적 인식에 기초할 수 있다. 그러나 [관자]의 인식은 보다 &amp;lsquo;근본적&amp;rsquo;이다. 즉</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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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금지(勝)의 실천으로서 노동과 전쟁의 의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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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8T22:58:24Z</updated>
    <published>2021-09-28T14:43:47Z</published>
    <summary type="html">군주-신민 관계의 호혜성을 위해 군주에게 요구되는 의무의 이행, 즉 신민에 대한 시혜의 우선성을 가리키지만 일방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군주의 시혜에 대한 신민의 보상이라는 조응이 이루어져야 양자 간 관계의 호혜성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amp;ldquo;흉년에는 고용살이 하는 사람이 병에 걸려 죽는 일이 많기에 형벌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죄를 사면하며 창고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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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민(富民)과 부국(富國), 강병(强兵)과 강국(彊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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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8T14:47:48Z</updated>
    <published>2021-09-28T14:42: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좋은 정치가 [관자]의 치도(治道)를 표명한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경세론은 치국(治國)과 치민(治民)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또한 치국과 치민의 방법 역시 치도와 일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제와 도덕에 의해 교화되어 자발적으로 구축한 정명의 질서는 현실의 국가와 사회에 반영된다. 그 사례는 제환공이 처음으로 관중을 조우하여 재상으로 등용하는 기사에서 찾</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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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왕, &amp;lsquo;금지(禁止)의 정치&amp;rsquo;를 실현하는 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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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8T14:40:13Z</updated>
    <published>2021-09-28T14:40:13Z</published>
    <summary type="html">[관자]에 상정된 예치는 규범성에 기대서 &amp;lsquo;명분을 바로잡는&amp;rsquo; 질서이다. 예치의 출발은 자신의 책무이행에 성공하여 도덕적 완성자로서 상승한 군주로부터이다. 그런데 어떻게 유덕한 군주가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명분을 바로잡는 강력함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관자]에서는 명실상부하는 군주-신민 간 신뢰의 형성에서 그 단서를 찾는다. 그것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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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밝은 군주의 아홉 가지 수칙(九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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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8T22:58:34Z</updated>
    <published>2021-09-28T14:38: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정말 성왕의 도가 현실의 군주에게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현실 속에 군주가 어떻게 해야 성왕의 도라는 표준에 가까운 실재 통치자가 될 수 있을까? [관자]는 이런 현실의 군주를 &amp;lsquo;밝은 군주&amp;rsquo;라고 명명하고, 아홉 가지 수칙(九守)을 준수하는 순간 성왕의 도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즉 9가지의 표준을 준수하여 진짜 성왕의 도에 이른 &amp;lsquo;밝은 군주&amp;rsquo;는 세상 사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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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인(聖人), 인도전법(因道全法)하는 존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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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8T14:36:10Z</updated>
    <published>2021-09-28T14:36:10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실세계에서 도덕과 실력, 규범과 효능을 언제 어디서나 항상 보여줄 수 있는 행위자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가 들었던 성왕(聖王)이란 누구이고, 또 이제 패(覇)라고 명명된 행위자는 성왕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관자]는 &amp;lsquo;패&amp;rsquo;의 개념정의를 위해서라도 &amp;lsquo;성왕&amp;rsquo;이라는 기존 관념의 개념정의와 함께 두 용어를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우선 성왕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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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군주란 덕을 베푸는 자 신하는 윗사람에게 의탁하는 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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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4T00:05:23Z</updated>
    <published>2021-09-23T13:40: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제 예의염치를 습득해서 자발성을 보여줄 신민에 의해 군주-신민 간 관계의 규범성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의 대략은 군주의 의무선행, 즉 사랑과 이익을 후하게 베풀면 백성을 가까이 할 수 있고 지식과 예절을 밝히면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관자] 첫 편으로 ｢목민｣을 편집한 이유를 이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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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왕오패의 정치는 시의(時宜)의 정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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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5T03:31:15Z</updated>
    <published>2021-09-23T13:38: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에 반해 법가의 평가는 보다 정치적이다. 상앙은 &amp;ldquo;삼왕의 의로움으로 천하 사람들을 사랑하고 오패가 법으로 제후들을 바로잡았던 것은 모두 천하의 이익을 사사로이 챙겨서가 아니라 천하 사람들을 위해서 천하를 다스렸기 때문&amp;rdquo;이라고 분석하고, 삼왕오패의 성공 원인이 천하의 이익이라는 공적 가치의 우선성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amp;lsquo;좋은 정치&amp;rsquo;의 여부가 우선적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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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혁명(革命)과 방벌(放伐)은 &amp;lsquo;정의로운 전쟁&amp;rsquo;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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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3T13:36:43Z</updated>
    <published>2021-09-23T13:36:43Z</published>
    <summary type="html">흥미로운 점은&amp;nbsp;&amp;nbsp;[맹자]에서 제기된 파격적인 개념으로 역성(易姓)과 방벌(放伐)의 합리화를 위한 논리전개 과정이 제환공과 관중의 대화내용하고 상당히 유사한다는 사실이다. [맹자] ｢양혜왕하｣의 맹자와 제선왕 간 문답 중 제선왕은 &amp;lsquo;걸왕과 주왕을 방벌&amp;rsquo;했던 탕왕과 무왕의 무력사용이 &amp;lsquo;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amp;rsquo;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군주 입장에서 볼 때 왕을 방</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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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와 법은 야누스의 두 얼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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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3T23:47:49Z</updated>
    <published>2021-09-23T13:34: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미 상도(常道)로서 법과 덕은 동일한 도를 표현하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또 현실군주에 의해 집행될 경우 그 집행대상에게는 강제적으로 표출되는 법 집행이 어느 순간 자발적인 배려와 은혜로 뒤바뀌는 야누스적 모습으로 비치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치가 패업에 머물지 않고 왕업(王業)으로 전개될 수 있는 근거는 존법하는 군주의 태도가 법치를 위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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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로 다스리면 여섯 가지 흥성(六興)을 가져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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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3T14:32:15Z</updated>
    <published>2021-09-23T13:32: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여기에서 공자가 주목한 관중의 공적(公的) 행위, 즉 아홉 번 제후들을 규합하여 제환공을 패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무슨 이유로 공적(功績)이 되는 것인지 되짚을 필요가 있다. 그 근거는 &amp;ldquo;제후들과 1차 회동할 때 전쟁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2차 회동할 때 환과고독을 돌보라고 명령했다. 3차 회동할 때 토지세를 5/100, 시장세를 2/100, 관문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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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禮)는 차별의 질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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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9-23T13:39:18Z</updated>
    <published>2021-09-23T13:30:50Z</published>
    <summary type="html">[관자]에서 정의하는 예(禮)란 무엇일까? 앞서 보았듯이 [관자]에 내재한 목표가 &amp;lsquo;누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amp;rsquo;의 최종적인 단계로 규범화를 의도한 것이라면, [관자]에서 제시된 정치관은 법의 연장선상에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관자]에서는 &amp;ldquo;바로잡고 복종하게 하고 제어하고 가지런하게 하여 반드시 죄를 엄하게 다스리지만 백성이 받들어 지키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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