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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태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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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chosuh1112</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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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저는 독일에서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심리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프시케 심리상담센터(홈 페이지 주소: psyche20.modoo.at)를 운영하는 조태진이라고 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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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11-17T14:18:2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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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중학생 지훈이의 하루(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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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4-07T09:14:54Z</updated>
    <published>2023-02-13T11:53:32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지훈이네가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 입구까지 와 있었다. 늦은 밤 시간이어서 불이 켜진 집은 그 높은 아파트 집 중에 서너 군데밖에 되지 않았고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모르는 머리카락이 허연 초로의 경비원 아저씨가 묵으면서 일하는 경비원실 불도 켜져 있었다. 지훈이는 집에 다 왔다는 생각에 몸에서 긴장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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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중학생 지훈이의 하루(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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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1-21T15:47:24Z</updated>
    <published>2022-12-31T06:1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느새 컵라면을 다 먹은 지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와 공책, 필기도구가 들은 필통 그리고 학교 갈 때 잊지 않고 챙기는 핸드폰이 들은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었다.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워서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진 않았지만 길 옆에 불 밝힌 피자집에서 새어 나오는 피자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입안애 침이 고였다. 그러자 언제 갔었는지 까마득한 소풍날에 엄마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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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중학생 지훈이의 하루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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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9-02T14:33:10Z</updated>
    <published>2022-08-31T00:27:22Z</published>
    <summary type="html">저녁 9시 반. 지훈이는 오늘도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며 저녁으로 후루룩거리면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해가 진 지 오래되어서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이지만 편의첨 입구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때문에 간신히 주변이 보인다. 지훈이는 컵라면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에이, 오늘도학원에서 내 준 숙제를 하려면 편히 자긴 다 틀렸다. 무슨 자판기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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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 로마 속 심리학(3): 헤파이토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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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03T11:51:05Z</updated>
    <published>2022-07-01T04:21:17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쩌면 꽤나 오래전에 상영된 디즈니 만화영화인 &amp;lt; 모아나&amp;gt;를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 저도 그 만화영화를 오래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한 부족의 족장의 딸이 넘실대는 바다로 나가려 하지만 아버지인 족장이 위험하다면서 극구 말리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모아나는 작은 배 한 척으로 바다로 나가게 되고 그 목적지는 마음대로 변신이 가능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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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심리학 (3): 헤파이토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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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14T08:52:25Z</updated>
    <published>2022-06-10T00:18:4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선 글에서 근대(모더니즘)의 합리주의와 이에 반발하는 후기 근대(포스트 모더니즘)를 언급했습니다. 사실 인간이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논쟁은 비단 서구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표현만 달랐을 뿐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본성)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오랜 철학적 논쟁과 탐구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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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 로마 속 심리학(3) 헤파이토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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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6-06T08:20:11Z</updated>
    <published>2022-06-06T03:22:57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절름발이인 헤파이토스라는 신도 등장합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여럿이지만 저는 그가 절름발이였다는 사실과 그가 대장장이로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겠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이성(Vernunft)과 오성(Verstand)을 구분하는데 철학에서 오성은 &amp;quot;도구적 이성&amp;quot;이라고도 불립니다. Verstand(오성)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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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심리학 (2) 오이디푸스 신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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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5-02T14:34:50Z</updated>
    <published>2022-05-02T07:16:08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릴 적에 경험할 수 있는 불안 중에 &amp;quot;분리 불안&amp;quot;이 있습니다. 이 분리 불안은 자신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과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느낌인데 주로 자기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한 불안입니다. 이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선천적인 성질의 것으로서 아직 여러 면에서 미숙한 자신을 보호해 주는 사람에게서 분리되면 당장 세상과 맞부딪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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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심리학 (2): 오이디푸스 신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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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4-23T11:51:52Z</updated>
    <published>2022-04-23T03:42:57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이디푸스 신화는 프로이트에 의해 재조명을 받으며 새롭게 해석된 신화 속 이야기입니다. 우선 짧게 그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amp;quot;오이디푸스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인 라이오스와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 의해 아버지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집니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신탁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두려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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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심리학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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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4-24T04:19:35Z</updated>
    <published>2022-04-07T02:43:43Z</published>
    <summary type="html">고대 그리스 로머 신화에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서 모든 이에게  사이즈가 맞는 침대가 있다며 그 행인을 눕힌 다음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다리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늘려버리는 방법으로 상대를 살해한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어느 날엔가 침대의 길이와 똑같은 키를 가진 테세우스가 나타나서 프로크루스테스를 똑같</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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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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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26T06:43:30Z</updated>
    <published>2022-03-25T02:25: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선 글에서 저는 사람의 삶을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했는데 이어서 말하자면 산 봉우리에 다가설 때쯤에는 오로지 저 봉우리에만 올라서면 만사가 해결될 것처럼 느꼈어도 그 봉우리가 다른 봉우리로 연결된 산등성이가 보이게 되어서 다시 또 다른 삶의 문제들, 그러니까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는 저 봉우리에만 다다르면이라는 간절한 소망에 가려져서 채 의식하진 못했지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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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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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26T06:43:30Z</updated>
    <published>2022-03-24T02:21: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선 글에서 드린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을 드리자면 저는 마더 테레사가 처음 봉사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헌신을 한 봉사활동에 대한 예상된 결과가 아닌 원치 않은 결과로 인해 자신이 오랫동안 행한 봉사활동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를 몸으로 체득했기에 순간적 감동과 순간적 열정만으로는 그런 고단하고 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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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아기주의 (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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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4-19T08:38:26Z</updated>
    <published>2022-03-22T00:56: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저는 이 일련의 글의 제목에 &amp;quot;이타주의&amp;quot;라는 개념을 넣었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이타주의가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타주의를 위해서 그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기주의, 즉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을 가진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누가 주장한다면 이런 이타주의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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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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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26T06:43:30Z</updated>
    <published>2022-03-19T05:29: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상향이라는 막연한 뜻을 가진 유토피아를 사람들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이를테면 어떤 갈등도 어떤 고통도 어떤 억울함이나 슬픔도 없는 &amp;quot;이상적인&amp;quot; 사회를 말이지요. 좀 뜬금없어 보이는 말로 들리시겠지만 저는 허구적 성격의 환상이나 공상의 원재료는 다름 아닌 현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얻은 원재료들은 상상하거나 공상하는 사람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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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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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6-02T02:25:48Z</updated>
    <published>2022-03-14T07:25:34Z</published>
    <summary type="html">앞선 글에서 저는 인간이 적당한 물질을 소유해도 왜 여전히 행복해지지 않는지와 더불어 헛헛함과 권태로움을 잊으려고 해 봐도 잊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점점 그 말초적인 쾌감의 정도가 점점 더 낮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지극히 말초적인 쾌락만을 계속 추구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이유는 프로이트가 정립한 개념인 삶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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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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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4-02T01:23:49Z</updated>
    <published>2022-03-12T08:55: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선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음악을 만들었고 그 이후로는 대학로에 있는 연극 공연장인 학전의 대표를 맡아서 주로 어린이 청소년 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김민기 씨가 만든 &amp;quot;봉우리&amp;quot;라는 노래의 처음에 나오는 노랫말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amp;quot;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봤던 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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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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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26T06:43:30Z</updated>
    <published>2022-03-08T10:27:46Z</published>
    <summary type="html">흔히 우리는 &amp;quot;내가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나 보고 어쩌라고&amp;quot;라든가 &amp;quot;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amp;quot;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런 표현은 종종 자기변명이나 타인을 비난하거나 원망할 때 쓰이곤 하지만 이 두 표현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또는 느낄 수 있는 선천적인 인간의 한계를 표현할 때도 쓰일 수 있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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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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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26T06:43:30Z</updated>
    <published>2022-03-06T04:13:08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울증의 원인으로 이상적인 상태를 갈구하다가 못날 뿐만 아니라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희망을 유지할 수 없어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끔찍하고 염세적인 절망을 꼽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을 풀어 말하자면 이상적인 희망을 잃은 상태는 홀가분하고 가벼운 상태가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상태인데 그 이유는 완전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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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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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26T06:43:30Z</updated>
    <published>2022-03-01T07:17: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옛 속담 중에 &amp;quot;남이 당하는 고통보다 내 손톱 밑에 낀 가시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amp;quot;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속담이 왜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제 짐작으로는 이타주의가 공허하게 말로만 표현될 뿐 사실은 다들 자기 자신만을 챙기면서 사는 행태를 비꼬거나 아니면 그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속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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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부, 좋은 대학 입학 그리고 행복과의 관계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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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26T06:43:30Z</updated>
    <published>2022-02-27T04:51: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선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이 한국의 각박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교과서적일 뿐만 아니라 한가해 보일 것이라는 점부터 밝히겠습니다. 교육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뜻은 &amp;quot;가르쳐 기르다&amp;quot;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서 기를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지식이나 능</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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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부, 좋은 대학 입학 그리고 행복과의 관계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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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7-16T05:35:46Z</updated>
    <published>2022-02-21T04:34: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때 흔히 다수와 소수를 구분해서 다수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신체적 질병인 경우는 사례도 없거니와 그 질병의 신체적 증상이 뚜렷하게 때문에 그에 해당되지 않고 어떤 작업이나 과제에 대한 해결도 그 해결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의 성공을 비정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심리적 문제만큼은 다수에 속</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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