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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삽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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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nogada</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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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바닥을 친 인생, 노가다로</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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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5-10-26T04:26:2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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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쿠타가와 문학상 후보작 &amp;lsquo;빛 속으로&amp;rsquo; 작가 김사량 - 영웅 칭호를 받은 작가의 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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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2-15T09:50:07Z</updated>
    <published>2022-09-22T06:05:11Z</published>
    <summary type="html">빛 속으로  김사량은 1940년 소설 &amp;lt;빛 속으로(光の中に)&amp;gt;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芥川) 문학상 후보작에 선정된 작가다.   소설 &amp;lt;빛 속으로&amp;gt;의 주인공은 일본 빈민촌의 남(南)선생과 제자 하루오다. 일본 아이들은 남 선생을 미나미(南) 선생으로 부르며 내지인으로 대한다. 남선생은 조선 사람이지만 굳이 번거롭게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히지 않는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K1U_fMymgERf1LU4N47Gmtvw4M8.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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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월북을 선택한 미스조선 출신 화가 정온녀 - 살아있는 시대를 그렸던 신여성 정온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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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1-03T02:59:55Z</updated>
    <published>2020-12-27T12:46: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여성 화가는 드물다. 조선 시대 신사임당을 제외하면 일제 강점기 나혜석, 천경자 정도를 손에 꼽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그래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여성들이 있었다. 1920~40년대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던 여학생들은 133명에 달했다. 여류 서양화가의 선구자로 이름난 나혜석을 포함해 백남순, 박래현, 천경자 등 유명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waMx1WV9v5P5Ft5S36dy96fXlzI.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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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천만의 연인, 1930년대 최고스타 문예봉 - 가난했지만 당당했던 신여성의 월북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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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2-10T00:09:59Z</updated>
    <published>2020-11-25T01:54:4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은막의 여신  삼천만의 연인. 은막의 여신. 1930년대 최고 스타 문예봉(文藝峰, 1917~1999)을 수식하는 말이다. 그가 춘향전으로 톱스타가 된 후부터 해방 전까지 당시 조선 영화는 딱 두 종류가 있었다. 문예봉이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  한상언 한상언영화연구소 소장은 &amp;quot;이 시기 영화는 문예봉이 주연인 영화가 절반, 아닌 영화가 절반&amp;quot;이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XvZcplxTDuTPAa1P4Hgw4USj8b4.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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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첫 초상화를 그린 화가, 정관철 - 보천보의 횃불 작가, 월북작가 정관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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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4-28T05:23:55Z</updated>
    <published>2020-10-26T03:34: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첫 초상화를 그린 화가  해방 후 평양은 들끓었다. 일본군이 물러가고 독립운동가들은 귀국하기 시작했다. 동경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43년 고향으로 돌아온 화가 정관철은 평양공립상업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조선공산당 평안남도지구위원회 선전부에 소속되었던 그는 주로 선전화나 격문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엄청난 작품을 의뢰받게 된다. 바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1jmRWD9fYQTlBky9VBdblaPYFoY.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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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지와 열정으로 무대를 사로잡은 인민배우, 황철 - 북한 첫 인민배우 탄생 스토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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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11:16Z</updated>
    <published>2020-08-28T14:01:47Z</published>
    <summary type="html">30년대 스타 배우 황철  &amp;ldquo;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amp;rdquo; 옛날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술만 취하면 불렀던 친숙한 노래다. &amp;lt;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amp;gt;라는 1930년대 개화기 시절 작품의 원조 스타 배우 황철(黃澈 1912.1.12~1961.6.8). 그는 당시 조선 최고의 배우고 손꼽혔다. 하지만 월북 후 그에 대한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Pw958MUFm7AmOm3E77FV9zcOLQE.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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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겸재와 오원의 맥을 잇는 대가, 정창모 - 몰골 기법을 완성한 월북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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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11:09Z</updated>
    <published>2020-07-22T05:41:59Z</published>
    <summary type="html">꼬마화가가 그린 &amp;lt;아침해&amp;gt;  정창모(鄭昌謨, 1931.12.16.~ 2010.7.25.)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표구를 했고, 외할아버지 리광렬은 문인 화가로 미술 재능을 타고난 그였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인 손자는 외할아버지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1938년, 8살에 완산초등학교 시절 크레용으로 그린 &amp;lt;아침해&amp;gt;가 아동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gP9TGJnqS2wWoE6P38805FF8xE0.jfif"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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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절망을 딛고 승리를 노래한, 혁명시인 리찬 - 김일성 장군의 노래 작사가 시인 리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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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4-28T05:21:32Z</updated>
    <published>2020-06-26T02:56:18Z</published>
    <summary type="html">김장군의 노래  시인 리찬은 1946년, 단 20일 만에 완성된 북조선의 토지개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렇게 격정을 터놓았다. &amp;ldquo;신화가 아니다. 전설이 아니다. 여기 북조선의 명백한 오늘을 모―든 불가능에서 가능이 전진한다.&amp;rdquo;&amp;lt;리찬, 승리의 기록, 문화전선, 창간호, 1946년 7월, 114쪽&amp;gt;  땅 한 뙈기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JBFhPkIzumlgNvOLu1o4LVN6JxA.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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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단 블랙리스트, 서예 추상의 거장 이응노 화백 - 문자추상 서예 추상의 대가, 고암 이응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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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10:23Z</updated>
    <published>2020-04-06T08:19:00Z</published>
    <summary type="html">간첩&amp;nbsp;화가  분단 블랙리스트. 고암 이응노(1904~1989)는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붉은 낙인이 찍힌 후 한국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했다. 작품 전시나 거래는 모두 중지되었고, 그의 이름을 지목하거나 거론조차 할 수 없었다.  이응노는 20여 년이 흐른 뒤인 1989년이 되어서야 정치적으로 해금되었다. 그해 호암미술관에서 이응노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w4czKobK3EwyMejH3nBz5Mrz1Fc.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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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벨상 문학상 후보에 오른 월북 소설가 이기영 - 민촌(民村) 이기영, 고향을 그리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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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09:31Z</updated>
    <published>2020-03-20T15:52:37Z</published>
    <summary type="html">대가의 손  &amp;ldquo;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에 큰 혹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을 하도 많이 써서 딱딱하게 굳은 자죽임에 틀림없었다. 그가 얼마나 이악스럽게 자기 일에 집중했는가를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amp;rdquo; &amp;lt;김성동, [현대사 아리랑] 카프 대표작가 이기영(하), 위클리경향 818호, 2009.03.31.&amp;gt;  민촌 이기영(李箕永, 1895~1&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C0gJGnsqJmtwCIB0DmHZ_f_vDM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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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국에 대한 찬가를 작곡한 박한규 - 격조 높고 특색있는 선율의 작곡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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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09:24Z</updated>
    <published>2020-01-19T14:36:17Z</published>
    <summary type="html">모든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다. 조국 노래한 예술가들. 그들은 여전히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조국에 대한 찬가를 작곡한 대표적인 작곡가는 스메타나와 시벨리우스를 손꼽을 수 있다.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는 교향곡 &amp;lsquo;나의 조국&amp;rsquo;으로 체코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 노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 신음하던 체코인들에게&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Ks9tHpf0Gpoy3OQJIjg1GvWNrHM.jpg" width="4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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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 사라진 예술가 구보씨 - 구보씨의 일일, 갑오농민전쟁을 쓴 소설가 박태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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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09:17Z</updated>
    <published>2019-11-25T12:23: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세상이 변하는 것을 다 느끼지 못할 만큼 인생은 짧다. 하기에 현재 내가 마주치는 영화나 소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세계관에 의해 한정적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우리가 조금 더 긴 인생을 산다면, 혹은 우리 후대들은 언젠가 만나게 될 예술가들이 있다.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 만나보기 힘든 월북 예술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구&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eAPsGkKVBNMID4ds9t6f6GDLYwE.jpg" width="482"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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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라진 천재 작곡가, 김순남 - 조선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작곡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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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09:09Z</updated>
    <published>2019-10-23T12:23:1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작곡가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한 나라에서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한다. 핀란드에서는 시벨리우스 한 명, 헝가리에서는 바르토크 한 명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김순남이 나오려다 말고 죽었다.&amp;rdquo; 세계적인 비디오아트 예술가 백남준이 한 말이다. &amp;lt;잊혀진 민족 음악가 김순남을 아시나요 2017.12.17. 서울신문&amp;gt;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프로코피에프와 같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iJBrWFbG9QTlDbMjqaHgCmo6-h8.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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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통의 역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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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10-02T00:42:07Z</updated>
    <published>2019-10-02T00:42:07Z</published>
    <summary type="html">난 어릴 때 맷집이 약했다. 등치는 산만했지만 아픈 걸 잘 못 참았다. 학창 시절 부당하게 행동하는 선생님에게 끝까지 안 아픈 척 맞고 싶었지만 잘 안됐다. 맷집도 사실 고통의 역치의 정도가 다른 육체적 특징이기는 하다. 하지만 깡도 중요한 몫을 한다.요즘 결막염류 눈병에 걸려 눈이 많이 아프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겠지 했더니 장난 아니다. 왼쪽 눈이 욱</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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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본질을 꿰뚫어 보는 소설가, 한설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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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07:23Z</updated>
    <published>2019-09-30T08:44:1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평화가 확립되었는가?&amp;rdquo;  1949년 3월 24일, 평양에서 개최된 평화옹호 전국 연합대회에서 소설가 한설야는 물었다. 그는 평화옹호 선언에서 제일 첫 서명자로 이름을 남긴다. &amp;lt;북조선 소설가 한설야(韓雪野)의 평화의 마음(1), 2015, 북한대학원대학교 구갑우&amp;gt;  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는 세계를 압도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guest%2Fimage%2FrKGIxYE8WP6mCkfjnXKFvOXJQ9w.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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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가전복 세력으로 몰린 광고 디자이너, 임군홍 - 화려한 인상파 여행 화가는 왜 북으로 갔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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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2-01T00:09:48Z</updated>
    <published>2019-08-23T00:33:4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운수부 월력 사건  1948년 어느 날 서울 명륜동의 광고 미술사 우보당(牛步堂)에 철도 경찰이 들이닥쳤다. 우보당은 미군정 공보원이 발간하는 잡지 &amp;lt;아카데미&amp;gt;의 홍보 대행사로 전국 각 기차역마다 홍보 간판을 설치하던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소위 잘 나가던 회사에 갑자기 왠 날벼락인가.  우보당은 화가 임군홍(林群鴻. 1912.3.27 - 1979.7.30)&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hAR5A5-HbwB96CxcPp4aSb6ZCYY.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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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북한 애국가 작곡가 김원균 그리고 에키타이 안 - 남과 북, 애국가 작곡가의 상반된 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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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07:08Z</updated>
    <published>2019-07-23T11:48:20Z</published>
    <summary type="html">에키타이 안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하는 등 반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불매운동을 위해 주변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일본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한 작곡가를 소개한다. 그는 만주 광야를 누비던 독립운동가를 짓밟고 일본이 세운 만주국을 찬양하는 &amp;lt;만주교향곡&amp;gt;을 직접 작곡한 사람이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Zt5mWwUBqfZF3N8T6CIIShpCpZE.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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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름없이 민족을 아로새긴 미술가, 김주경 - 북한 국장과 국기를 디자인한 예술가의 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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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3-13T03:07:00Z</updated>
    <published>2019-07-06T13:16:20Z</published>
    <summary type="html">30년 만에 감격의 눈물  관심을 갈구하는 시대다. 너도나도 개인 방송을 하고 자기 경력을 내세운다. 남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지상 가치로 여기는 요즘. 참 미련해 보이는 경력을 가진 월북화가가 있다. 그 주인공은 평양미술대학 초대학장을 역임하고 북한의 국장과 국기 도안을 한 김주경이다.  김주경은 학장을 퇴임하고 조용히 여생을 지내며 창작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BxoFW2vUAtvEGwr1DVmNKh5SOI.jpg" width="378"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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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국에 바친 한 판화가의 삶, 함창연 - 피카소와 세계판화콩쿨 공동 금메달 수상한 천재 판화가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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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1-28T10:04:04Z</updated>
    <published>2019-06-03T15:5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1959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세계판화콩쿨이 열렸다. 영애의 금메달은 공동수상이었다. 한명은 누구나 예상하듯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오른 피카소. 다른 수상자는 유럽 사람들에게 발음도 어색한 생소한 이름이었다.  경연심사위원이였던 러시아의 미술가는 &amp;quot;판화 &amp;lt;밭갈이&amp;gt;는 내용과 밀착된 세련되고 현대화된 판화적 수법과 비상한 형상력으로 하여 다른 경연작품들을 완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pvT9tu9Avogm4VFPerJaHMmbgWg.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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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들 장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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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5-09T02:46:33Z</updated>
    <published>2019-04-19T09:39:45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들 둘이면 동메달이라는 요즘.  곧 아들 둘 엄마가 될 아내가 보낸 아들의 장점ㅋㅋ  1. 공부 한창 할 때도, 웬만한 스트레스나 슬럼프는 치킨으로 해결됨  2. 지난밤에 버럭하고 싸워놓고도 아침엔 다시 해맑은 얼굴로 엄마~하는 청순함  3. 사소한 감정소비 없고, 호되게 야단쳐도 뒷날 헤헤헤 하는 순둥미가 너무 매력  4. 마트가서 무거운거 들고 재활용&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2DlJvVhY8YrvgsU8AtfDU1iAiNk.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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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래를 무기로 싸운 의열단 정율성 - 동방의 카루소가 군가의 선구자가 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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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4-29T09:36:11Z</updated>
    <published>2019-04-06T01:52:05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노래는 오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노래는 전쟁의 무기이며, 혁명의 무기다&amp;rdquo;   음악가 정율성이 1963년 북경만보에 쓴 글이다. 정율성은 한생을 노래로 항일의 길에 바친 조선인 투사다. 동시에 근대 중국 3대 음악가로 &amp;lsquo;신중국 창건 100명 영웅&amp;rsquo;이다.  정율성은 전라도 광주 출생이다. 그의 본명은 정부은.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일찍 독립운동에 나선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Iye%2Fimage%2FzlKZZF8DGg1mPMRdf4jux-Bt-JI.jpg" width="3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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