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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진성 mola mol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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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molamola</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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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7년의 우울과 27년의 트라우마 속에서, 회복을 기록합니다. 많이 애썼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애쓰지 않고 읽길 바랍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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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0-10-04T02:36:1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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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모라는 신학적 알리바이와 무너진 현실의 간극 - 비유의 파산과 새로운 언어의 모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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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4T15:00:10Z</updated>
    <published>2026-04-04T15: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학은 종종 신과 인간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라는 도식으로 치환하곤 한다. 이 비유는 신앙의 문턱을 낮추는 가장 친절한 언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폭력적인 수사(修辭)가 된다. 현실에서의 가족은 늘 안식처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가 친부모라는 통계적 비극 앞에서, &amp;quot;신은 부모와 같다&amp;quot;는 설교는 공허함을 넘어 일&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efm-PSdeLT86b1i7pZlTE91ri8E.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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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한히 질문하는 피조물, 그리고 복종이라는 역설 - 지성의 한계와 겸손의 미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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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3T15:00:13Z</updated>
    <published>2026-04-03T15:00: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은 끊임없이 묻는 존재다. 보이지 않는 우주의 끝을 갈망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자아의 본질을 파헤치려 든다. 신학적 수사를 빌리자면 인간은 '무한을 지향하는 유한한 피조물'이다. 그러나 여기서 기묘한 논리적 격돌이 발생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인간에게 지적 탐구와 질문의 권리를 부여하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의심 없는 복종'을 요구하기 때&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RmqsaINJyLJ8BpJQEIzRaPOmDS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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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복음이라는 매개의 역설 - 소식은 어떻게 본질의 자리를 찬탈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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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30T15:00:03Z</updated>
    <published>2026-03-30T15: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승전보에서 교리로: 복음의 세속적 기원 '복음'을 뜻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은 원래 종교적 용어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단어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승전보'를 의미했다. 전령이 달려와 &amp;quot;우리가 이겼다!&amp;quot;라고 외치는 순간, 그 소식은 듣는 이들의 삶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킨다. 노예가 될 뻔한 위기에서 해방되는 '실질적 효용'이 발생하기&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mEX1KYZ96utBDF3oBt0w5401QlQ.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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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옥이라는 파산한 위협 앞에 선 지성 - 설령 그 끝이 영원한 불길일지라도, 나는 질문을 멈출 수 없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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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9T15:00:04Z</updated>
    <published>2026-03-29T15: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파스칼의 내기가 던지는 비루한 선택지 모든 논리적 해부를 끝내고 펜을 내려놓는 순간, 문득 등 뒤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가는 그림자가 있다. &amp;ldquo;만약 이 모든 의심이 틀렸다면? 만약 정말로 신이 존재하고, 나의 이 정직한 질문들이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지옥행 티켓이 된다면?&amp;rdquo; 이것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강력한 심리적 족쇄이자, 파스칼이 제안했던 비겁한 도박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wrSzCKUfjX9zPS5r1Ho644B1QmI.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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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능함의 유폐인가, 설계자의 가학적 연출인가 - 인간이라는 변수를 처리하기 위해 아들을 폐기한 신의 비효율적 시스템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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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8T15:00:02Z</updated>
    <published>2026-03-28T15: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능함의 자기부정과 비효율적인 우회로 태초의 설계자가 우주라는 정밀 기계를 구축했다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버그와 오류를 처리하는 방식 역시 설계자의 주권 아래 놓여야 마당하다. 전능함의 정의가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이라면, 신은 단 한 번의 의지적 선언만으로도 뒤틀린 세계를 복원하거나 오염된 개체들을 소거하고 재창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NmwKJsIgkDPJh1rOXbsnND0I2I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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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성모독적 숭배: 신을 시간의 감옥에 가두는 인간들 - 존재 그 자체가 아닌, &amp;lsquo;행위의 역사&amp;rsquo;에 집착하는 종교의 모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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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7T15:00:04Z</updated>
    <published>2026-03-27T15: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시간 밖의 신을 시간 안으로 끌어내리는 무례함 기독교적 정의에 따르면 신은 시간의 창조자이며 영원 속에 거하는 존재다. 신에게 &amp;lsquo;어제&amp;rsquo;나 &amp;lsquo;내일&amp;rsquo;은 없으며, 태초와 종말은 동시에 존재하는 찰나일 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는 신을 철저히 시간의 논리로 설명한다. 6일간의 창조, 특정 시점의 희생, 그리고 다가올 재림. 무한한 존재를 유한한 시간의 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9lcSSXnm_keb0Zaq_ExJlDcVk90.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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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지(天地)라는 좁은 프레임과 태초 이전의 태초 -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신의 서사, 그 논리적 빈틈을 향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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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6T15:00:04Z</updated>
    <published>2026-03-26T15: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천지(天地)는 온 우주인가, 협소한 지구인가 고대인들에게 &amp;lsquo;하늘과 땅&amp;rsquo;은 그들이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전부였다. 만약 성경의 천지가 문자 그대로 지구의 하늘과 땅만을 의미한다면, 질문하신 대로 지구 밖 광활한 코스모스는 다른 신의 영역이거나 혹은 신의 통제 밖에 있는 공백지로 남게 된다. 하지만 대개의 신학은 이를 &amp;lsquo;가시적인 모든 세계&amp;rsquo;를 뜻하는 관용구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6gpvmImCd5MlMlzurIItXu3JB6Q.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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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이지 않는 은신처를 향한 항해 - 왜 우리는 신의 좌표를 묻지 않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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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5T15:00:03Z</updated>
    <published>2026-03-25T15: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은혜의 함정 성경은 종종 하나님이 길 잃은 양을 찾아오듯 인간을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라 설명한다. 인간은 그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피동적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정말로 누군가 나를 위해 희생했고, 그 은혜가 갚을 길 없이 거대하다면 가만히 앉아 &amp;lsquo;찾아와 주심&amp;rsquo;에 감사만 하는 것이 최선인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WajaLWMrwgNMxUs4dw5VNJm7l2s.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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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희생이라는 이름의 채권 - 감사는 왜 숭배가 되어야 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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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4T15:00:08Z</updated>
    <published>2026-03-24T15: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희생은 선물이 아니라 부채인가 어떤 이가 나를 위해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평생 그를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며, 기회가 된다면 보답하고 싶을 것이다. 이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amp;lsquo;감사&amp;rsquo;다. 그런데 만약 그 구조자가 &amp;quot;내가 너를 구했으니 이제부터 네 삶의 주인은 나다. 매일 나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 내 뜻대로만 살아라&amp;quot;라고 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iuK3pQheHzANhT8sRoo4f2w7tA4.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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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초의 빚더미와 감사라는 이름의 강요 - 왜 과거에 저당 잡혀야 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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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3T15:00:04Z</updated>
    <published>2026-03-23T15: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빅뱅에 감사하지 않듯, 태초에 감사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쓰지만 전기를 발견한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매 순간 감사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과 자연은 수많은 과거의 우연과 필연이 겹쳐진 결과물일 뿐,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부채'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신이 세상을 만들고 시스템을 설계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f4e9Qf7IdWVclGeWKPBXDD3aQVc.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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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조주의 존재가 행위의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 - 물리적 시간의 선후를 넘어선 &amp;lsquo;근거의 논리&amp;rsquo;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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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3-22T15: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존재의 선행과 행위의 인과관계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신은 단순히 먼저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amp;lsquo;기저&amp;rsquo; 그 자체로 상정된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의식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신이 모든 것의 태초라면, 인간이 내딛는 첫 발걸음조차 신이 마련한 물리적 법칙과 생명이라는 플랫폼 위에서만 가능하다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kUsj4mHPouIHP4JhESy5fbGa0RM.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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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유의 역설과 리스크의 미학 - 의존적 평안을 넘어선 독립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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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3-21T15: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유라는 이름의 무게와 도피의 유혹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인간에게 전례 없는 자유를 선사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유를 온전히 감당해내는 사람은 드물다. 자유는 곧 선택의 책임과 고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침반이 없는 망망대해에서 스스로 북극성을 찾아야 하는 공포는, 때로 우리를 &amp;lsquo;확실한 정답&amp;rsquo;을 제시해주는 절대자에게로 도망치게 만든다. 신에게 의존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TtgUKFG25frpN5PzI0TS93NnzMU.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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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존을 통한 자립이라는 형용모순에 대하여 - 진정한 홀로서기는 외부 에너지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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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3-20T15: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립의 정의: 고립인가, 조율인가 우리는 보통 자립을 &amp;lsquo;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상태&amp;rsquo;로 정의하곤 한다. 하지만 물리 법칙의 세계에서 완전한 고립계(Isolated System)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산소에 의존해 호흡하고, 중력에 의존해 직립하며, 타인이 생산한 지식에 의존해 사고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립은 &amp;lsquo;외부 에너지의 차단&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내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RD9xdz8TdYhWrPh9IF0hcKFFoCk.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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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평적 연대와 수직적 기도 - 결핍을 채우는 두 가지 경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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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3-19T15: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의 결핍은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채워질 수 있다. 내가 부족한 것을 상대가 채워주고, 상대의 빈자리를 내가 메우는 상부상조는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 왜 굳이 보이지 않는 신을 찾는가? 홀로 고립되어 자신의 소망을 읊조리는 기도는, 오히려 타인과의 연결을 차단하는 독선적인 행위가 아닌가?   수평적&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ulXZkHT7ScP7YwCg2Dk_pBY7Ag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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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빨간 알약의 고독, 우리는 정말 자유를 원하는가 - 자유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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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3-18T17: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영화 &amp;lt;매트릭스&amp;gt;가 던진 질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피어스가 내민 두 개의 알약 앞에 선 네오의 갈등은, 사실 현대인이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하는 실존적 선택지나 다름없다. 안락한 무지의 파란 알약인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진실의 빨간 알약인가. 우리는 스스로를 '진실을 추구하는 주체'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막상 현실이라는 거대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vnAIL54fJHPQ0U8k3nHwRYDyLe4.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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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품이 사라진 광고의 역설 - 우리는 왜 물건이 아닌 &amp;lsquo;장면&amp;rsquo;에 지갑을 여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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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3-18T16:0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퇴근길 지하철 전광판이나 유튜브 시작 전 5초의 찰나, 수많은 광고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최근 기이한 현상이 목격된다. 분명 무언가를 팔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여했을 텐데, 정작 &amp;lsquo;무엇을 파는지&amp;rsquo;는 끝까지 감추는 광고들이 늘어난 것이다. 15초의 짧은 영상 내내 흔들리는 갈대밭이나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보여주다 마지막에 브랜드 로고 하나를 툭 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hXEi9JZuBmLh9N_f0zw26C8PTio.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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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식물은 기도하지 않는다 - 물리적 법칙과 인격적 응답 사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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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3-18T15: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식물은 태양에게 햇빛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저 물리 법칙에 따라 빛이 있으면 광합성을 하고, 없으면 시들거나 혹은 빛 없이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할 뿐이다. 에너지의 흐름이 본질이라면, 왜 인간에게만 &amp;lsquo;기도&amp;rsquo;라는 거추장스럽고 비효율적인 인터페이스가 필요한가? 그냥 은혜를 주면 받는 것이고, 아니면 진화하여 자생하는 것이 가장 시스템적으로 깔끔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xiLCnvWt5hq3926sMr8nYl8swmY.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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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존재의 피동성과 기도의 역설 - 왜 갚지 않고 또 구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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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7T15:00:18Z</updated>
    <published>2026-03-17T15: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부모에 의해 &amp;lsquo;태어남을 당한&amp;rsquo; 존재임에도 부양의 의무와 효도를 요구받는다. 일방적인 은혜를 입었다면 마땅히 보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왜 종교는 보답이 아닌 &amp;lsquo;또 다른 간구(기도)&amp;rsquo;를 강조하는가?   부채 의식으로서의 효도, 생존으로서의 기도 인간 사회의 효도는 대개 &amp;lsquo;부채 의식&amp;rsquo;에 기반한다. 받은 것이 있으니 갚아야 한다는 상호 호혜적 거래의 성&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XaNUPJG0ixpdmUP7V5hCpVvuKAg.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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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걸과 기도의 한 끗 차이: 은혜 앞에 선 인간의 양심 - 무교인의 시선으로 분석한 '일방적 시혜'와 '수용적 태도'의 상관관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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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3T15:00:15Z</updated>
    <published>2026-03-13T15: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도는 염치없는 구걸인가, 관계의 확인인가 나는 무교다.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논리적인 인과법칙에 의해 굴러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종교적 담론의 핵심인 &amp;lsquo;은혜&amp;rsquo;라는 개념을 마주할 때면, 내 안의 실용적 양심이 강하게 요동친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존재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인간이 그 은혜를 달라고 손을 내밀며 기도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effZBVduNQQ0YaVmf-oa-gbsfbw.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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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통의 인과율과 신의 설계도 - 우리는 무엇을 '원인'이라 부르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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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2T15:00:03Z</updated>
    <published>2026-02-12T15: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더 이상 번개를 신의 분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압의 차이와 전하의 이동이라는 명백한 물리적 원인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은 인간의 심연에 도사린 허무를 '인지적 오류'나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설명하고, 전쟁을 '자원 분배의 실패'와 '집단 이기주의'의 산물로 분석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amp;nbsp;모든 현상에 이토록 명백한 원인이 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b7G9%2Fimage%2F5f0e9Endp4GwwZG4U7NJfc_D9FU.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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