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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한가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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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suhangaro</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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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어떤 문제들은 풀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지나갑니다. 그 사이의 기록.</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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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1-06-22T01:54:5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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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맞춤형 피드백은 좋은 걸까 - AI의 도입과 수학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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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0T01:40:17Z</updated>
    <published>2026-02-10T01:40:17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교육 시장의 홍보 문구에서 &amp;lsquo;맞춤형 피드백&amp;rsquo;은 이제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과거의 이 단어는 강사가 소수의 학생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지적 마찰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과정은 대개 소란스럽고 비효율적이었다. 강사는 학생의 맹점을 추적하기 위해 문제를 골라내고, 학생은 자신이 틀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혹은 그냥 더 풀기 싫어서 강사를 피해 도망가기도 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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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름표를 떼고 본질을 보라 - 추상의 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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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6T02:33:32Z</updated>
    <published>2026-02-06T02:33:32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문제를 볼 때, 종종 문제보다 숫자의 &amp;lsquo;이름표&amp;rsquo;에 먼저 압도된다. 1, 2, 3, 4, 5, 6이라는 숫자들이 눈앞에 나열되면, 각 숫자가 가진 크기와 개별성에 시선이 붙잡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렇게 반응한다.  &amp;ldquo;하나씩 대입해 보자.&amp;rdquo; &amp;ldquo;전부 더해 보자.&amp;rdquo; &amp;ldquo;계산해서 나머지를 구해 보자.&amp;rdquo;  이 반응은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다. 하지만 많</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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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변수의 소음과 상수의 고요 - 해석되지 않을 권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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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5T01:42:33Z</updated>
    <published>2026-02-05T01:42: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수학에서 함수란 입력값 x에 따라 결과값 y가 결정되는 관계를 말한다. 이때 y는 x의 변화에 묶여 있는 &amp;lsquo;종속변수&amp;rsquo;이고, x는 스스로 변화의 시작이 되는 &amp;lsquo;독립변수&amp;rsquo;다.  대부분의 함수는 x가 변하면 y도 출렁인다. 세상의 요구가 변할 때마다 나의 모습도 시시각각 변해야만 하는 우리의 처지와 닮았다. 하지만 수많은 함수 중 유독 고집스러운 존재가 하나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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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의 고립과 삶의 독립 - 해석되지 않을 권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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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03T01:52:39Z</updated>
    <published>2026-02-03T01:52:39Z</published>
    <summary type="html">밤하늘처럼, 숫자의 세계 역시 촘촘하다.그 안에는 유독 고립된 개체들이 있다. 소수(Prime Number). 2, 3, 5, 7, 11... 이들은 어떤 수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는다. 오직 1과 자기 자신만으로만 스스로를 증명할 뿐이다.  유클리드는 소수가 무한히 존재함을 증명했다. 무한하다는 것은 곧, 세상에 나와 닮은 존재가 끝없이 많다는 뜻이 아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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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멈춤이라는 능동적인 선택 - 사고를 관찰하는 사람의 자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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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9T23:08:54Z</updated>
    <published>2026-01-29T23:08:54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장 강의를 멈추기로 한 것은 포기가 아닌 전략적인 선택이다. 독립하지 못한 부(富)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빈곤일 뿐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멈추는 법을 익히기로 했다. &amp;quot;정 안 되면 다시 필드로 나가면 된다&amp;quot;는 말은 비겁한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돌아갈 기술과 자리가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자, 현재의 멈춤을 능동</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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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위해 남기는 정직한 흔적 - 사고를 관찰하는 사람의 자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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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7T00:20:46Z</updated>
    <published>2026-01-27T00:20:4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이 기록들이 굳이 어떤 현금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유의 목적을 돈에 두는 순간, 기록은 다시 효율의 논리에 갇히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업의 결과로 어떤 보상이 생긴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결과일 뿐이다. 은퇴 이후에도 내 곁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할 본질은 숫자로 환산되는 성과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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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고의 암흑과 설계의 영역 - 사고를 관찰하는 사람의 자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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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3T00:39:27Z</updated>
    <published>2026-01-23T00:39:27Z</published>
    <summary type="html">수학 문제를 푸는 주체들이 겪는 가장 큰 난관은 '왜 막혔는지', 심지어는 '자신이 길을 잃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사고의 경로가 암흑 속에 방치되는 것이다.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모른 채 다시 문제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그저 관성적인 반복에 머물기 쉽다. 나는 이 암흑을 설계의 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해 사고의 궤적을 기록한다.  이것은 어떤 거창한 목</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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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채점의 여백, 소외된 사고의 흔적들 - 사고를 관찰하는 사람의 자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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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00:56:27Z</updated>
    <published>2026-01-20T00:41:18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누군가에게 체계적으로 수학을 배워본 적이 없다(학교에서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하셨다. 내 못남이지). 아니 정확하게는 그렇게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서 컸다. 학원 문턱을 넘지 않았던 학창 시절, 나의 공부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것을 찾아 헤매는 불규칙한 탐색에 가까웠다. 돌이켜보면 그 무질서한 시간은 지식을 스스로 조직화하고, 모르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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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고를 관찰하는 사람의 자리 - 성과의 세계와 효율의 언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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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7T09:02:24Z</updated>
    <published>2026-01-17T09:02: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오전 7시, 환승역의 계단은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는 발소리로 가득 차 있다. 출근길 전철 안, 40대 가장은 덜컹거리는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스마트폰의 푸른 빛을 응시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업무의 굴레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기 전의 유예 시간이다.   같은 시각, 어느 집 주방에서는 50대 어머니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쌓인 그릇을 닦아낸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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