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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필가 고병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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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수필가 고병균은 1946넌 전남 장흥 출생2006년 공무원문학  수필 등단2016년 동산문학 시 등단쉬운 글쓰기 운동 추진하고 있음</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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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2-25T07:32:3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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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4] 원균과 칠천량해전 - 수필. 임진왜란 제7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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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3T12:04:41Z</updated>
    <published>2025-10-10T07:58:49Z</published>
    <summary type="html">곤장을 맞고 화가 잔뜩 난 원균은 막무가내로 수군을 움직였다. 그 결과 조선 수군은 박살 나고 말았다. 그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한다.  * 7월 11일(8월 23일)&amp;nbsp;원균이 한산도에서 전군을 출정시켰다. * 7월 14일(8월 26일)&amp;nbsp;&amp;nbsp;점심때, 부산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한다. 조선 수군보다 속도가 빠른 일본 수군이 거리를 벌리며 대결을 회피한다. 원균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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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1] 이순신과 원균의 임무 교대 - 수필. 임진왜란 제7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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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3T11:57:35Z</updated>
    <published>2025-10-08T13:08:52Z</published>
    <summary type="html">강화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은 해전을 분석했다. &amp;lsquo;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에게 패한 이유가 무엇인가?&amp;rsquo; 이런 질문을 놓고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반영했다. *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일본 수군의 세키부네보다 훨씬 크고, 화포/총통 발사가 주력이며, 제자리 선회가 되며, 장갑이 견고하다. 따라서 판옥선 1척당 세키부네 5척은 붙어서 화포/총통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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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8] 왜군이 쌓은 성 - 수필. 임진왜란 제5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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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3T09:50:15Z</updated>
    <published>2025-09-25T20:52: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본군은 남해안 곳곳에 성을 쌓았다. 그 성을 왜성이라 말한다. 장기간 이어지는 전투에서 성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 성 쌓기를 일본군은 교과서처럼 실천했다. 현재 남해안에 남아 있는 왜성은 모두 31곳이다. 그 목록은 부록에 따로 소개한다.  그것을 축조 시기로 구분한다. 1592년에 축조된 왜성은 단 2곳이다. 일본군이 승승장구하던 해였다. 1593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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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amp;nbsp;임신약조, 건강한 약조인가? - 수필. 임진왜란 제1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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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8T08:29:58Z</updated>
    <published>2025-08-08T08:29:58Z</published>
    <summary type="html">삼포왜란을 진압한 뒤 조선은 삼포를 폐쇄했다. 따라서 대마도와의 통교도 단절되었다. 이렇게 되자 조선과 교역을 통해 생활필수품을 조달해 오던 대마도는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1511년(중종 6) 4월, 아시카가(足利) 막부에서 일본국왕사 붕중(棚中)을 파견하여 대마도와 통교할 것을 요청하였다. 일본은 불리하면 수교하자고 제안하고, 수교하면 약속을 어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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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9] 고뇌하는 이순신 - 수필 임진왜란 제10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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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3:34:14Z</updated>
    <published>2025-07-31T11:34:26Z</published>
    <summary type="html">해남 우수영 관광단지에 도착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 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쌩쌩 분다. 옷을 단속하고 공연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바람도 덜 분다.  앞에 보이는 바다는 명량해전의 현장이다. 20리 밖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는 울돌목이다. 해류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세차게 흐르고 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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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6] 비운의 영웅 곽재우 - 수필 임진왜란 제9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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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2:10:33Z</updated>
    <published>2023-12-02T11:30:29Z</published>
    <summary type="html">곽재우의 삶은 실로 파란만장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소문난 갑부였고, 임진왜란 중에는 이름을 날린 의병장이었다. 그러나 1617년 향년 65세로 생을 마감했을 때, 곽재우가 남긴 것이라고는 고작 몇 벌 옷과 거문고 그리고 작은 낚싯배 한 척뿐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그의 삶이 궁금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선조는 전공이 빛나는 곽재우에게 벼슬을 내렸다. 당연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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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5] 홍의장군 곽재우 - 수필. 임진왜란 제9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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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2:08:35Z</updated>
    <published>2023-12-02T11:25: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임진왜란의 영웅을 말할 때, &amp;lsquo;한산도대첩의 이순신&amp;rsquo;, &amp;lsquo;진주대첩의 김시민&amp;rsquo;, &amp;lsquo;행주대첩의 권율&amp;rsquo;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곽재우에 대해서는 &amp;lsquo;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amp;rsquo;라고 한다. &amp;lsquo;홍의장군&amp;rsquo;에서 &amp;lsquo;홍의(紅衣)&amp;rsquo;와 관련하여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amp;lsquo;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amp;rsquo;에서 &amp;lsquo;홍의&amp;rsquo;는 붉은 비단으로 만든 철릭이다. &amp;lsquo;철릭&amp;rsquo;이란 무관이 입던 공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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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4] 의병장 곽재우의 영웅 본색 - 수필. 임진왜란 제9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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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2:06:52Z</updated>
    <published>2023-12-02T11:18:38Z</published>
    <summary type="html">곽재우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영웅본색이 드러난다.  곽재우가 맨 처음 영웅본색을 드러낸 전투는 기강 전투이다. 1592년 음력 5월 4일, 낙동강 기강(岐江) 나루에 왜선 3척이 나타났다. 곽재우는 부장 4명과 함께 나가 물리쳤다. 6일에는 왜선 11척이 나타났다. 곽재우의 의병 13명이 나가 물리쳤다. &amp;ldquo;우리 고을의 정암진을 왜적이 어떻게 건너겠느냐?&amp;rdquo; 임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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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3] 진실한 사람, 곽재우 - 수필 임진왜란 제9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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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2:05:04Z</updated>
    <published>2023-12-02T11:13: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임진왜란의 의병장으로 대표 인물은 고경명과 곽재우다. 고경명에게는 &amp;lsquo;금산 전투에서 순국했다&amp;rsquo;라는 공적이 뚜렷한데, 곽재우는 공적 없이 &amp;lsquo;홍의장군&amp;rsquo; 곽재우라고 한다. 왜 그럴까?  곽재우는 현풍 곽씨로 1552년 8월 28일(9월 16일), 경상도 의령현 세간리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도로명 주소로는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2동길 33이다. 아버지 곽월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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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10] 노량 해전, 전쟁을 끝내다 - 수필. 임진왜란 제8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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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1:47:11Z</updated>
    <published>2023-12-02T11:03: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명량대첩이 끝났다. 그러자 일본군은 해상 보급로가 차단되고,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일본군은 전쟁을 끝내고 자국으로 철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순천, 사천, 울산 등지로 집결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전쟁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다. 조선은 이들을 순순히 보내줄 수 없다. 무엇인가 선물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이순신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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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8] 이순신을 괴롭힌 것들 - 수필 임진왜란 제8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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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1:40:53Z</updated>
    <published>2023-12-02T10:59:20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squo;이순신을 괴롭히는 질병이 있었다.&amp;rsquo; 영화 &amp;lsquo;한산&amp;rsquo;을 관람한 에이치플러스(H+) 양지병원 가정의학과 임○○ 전문의가 한 말이다. 그는 난중일기의 기록을 들먹이면서 이순신을 괴롭히는 질병으로 위장염, 수면 장애와 불면증, 다한증 등이 있었다고 말한다.  &amp;lsquo;잦은 복통과 토사곽란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의 고통에 시달렸다.&amp;rsquo; 이순신을 괴롭히는 &amp;lsquo;잦은 복통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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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2] 여수의 의인, 김대인 - 수필 임진왜란 제9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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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2:03:11Z</updated>
    <published>2023-12-02T10:52:40Z</published>
    <summary type="html">노량해전이 끝났다. 7년 동안 끌어온 지긋지긋한 전쟁도 막을 내렸다. 그런데 &amp;lsquo;정유재란의 후속 처리&amp;rsquo;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 글에 의하면 &amp;lsquo;연합 수군의 본부가 묘도의 도독에 있었다.&amp;rsquo;라고 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묘도는 &amp;lsquo;고양이섬&amp;rsquo;이라 불리는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섬이다. 지금은 여수와 묘도를 잇는 묘도대교, 묘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O9x%2Fimage%2FNds4GRQgz7p54XKS9Zth_9Qbwh0.jfif" width="474"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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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9] 이순신의 승전 비밀 - 수필. 임진왜란 제8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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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1:45:46Z</updated>
    <published>2023-12-02T10:41: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순신이 임진왜란의 해전에서 23전 23승의 뛰어난 전적을 남긴 비결은 무엇일까? 어떤 학자는 이순신에게 뛰어난 참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참모 중 정운, 정걸, 나대용, 송희립 이상 4명을 거명한다. 이들은 과연 어떤 활약을 펼쳤을까?  정운(鄭運)은 1543년 9월 10일(10월 7일) 전라도 영암군 옥천면(現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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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10] 이순신의 마지막 바다, 노량해협 - 수필. 임진왜란 제10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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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3:38:53Z</updated>
    <published>2023-12-02T10:36:15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남해대교입니다.&amp;rdquo; 운전하던 백 선생이 차를 멈추며 한 말이다. 우리 일행은 1박 2일의 여행을 나섰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난 여행이다. 높게 솟을 주탑, 그 사이를 잇는 남해대교, 그 풍광이 장관이다. 한쪽에 &amp;lsquo;남해대교&amp;rsquo;란 제목의 안내판이 있다. 무심코 읽었다. &amp;lsquo;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사이를 잇는 대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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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7] 마음에 부는 싸늘한 바람 - 수필. 임진왜란 제8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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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1:39:34Z</updated>
    <published>2023-12-02T10:31:23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로병진작책(四路竝進策) 중 수로군의 작전은 어떠했을까? 수로군의 지휘관 역시 명의 제독 진린이다. 조금은 실망스럽지만, 우리의 영웅 이순신이 있으니 결과를 기대한다. 수로군의 공격 목표는 순천 왜교성이다. 거기에는 외교에 능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사 1만 5천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이 작전은 육지에서 명의 제독 유정이 지휘하는 서로군이 공격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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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3] 199대 1의 법칙 - 수필 임진왜란 제7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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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3T12:00:52Z</updated>
    <published>2023-12-02T10:26: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카톡으로 글이 하나 날아들었다. &amp;lsquo;199대 1의 승리자&amp;rsquo;란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인데, 사형에 처할 뻔한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구해낸 분이다. 글의 내용을 요약한다. ​ 1597년(정유년) 2월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이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이순신이 체포된 원인을 &amp;lsquo;원균의 모함&amp;rsquo;이라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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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1] 선거이(宣居怡), 이순신의 동갑내기 친구 - 수필. 임진왜란 제9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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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2:01:08Z</updated>
    <published>2023-12-02T10:21:1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선거이는 이순신과 동갑내기 친구다.&amp;rdquo; 선거이는 1545년 7월 25일(8월 31일)생이고, 이순신은 1545년 3월 8일(4월 28일)생인 동갑내기다. 그런데 선거이는 전라도 보성에서 태어났고, 이순신은 한성부 남부 건천동(현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함께 지낸 바 없다.  선거이는, 24세인 1569년(선조 2년) 겸사복(兼司僕)으로 임명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O9x%2Fimage%2F7Yq-CoQ8Qix4YZKhGhg4wMqHun8"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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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6] 사로병진책 중 육로군의 작전 - 수필 임진왜란 제8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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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1:33:22Z</updated>
    <published>2023-12-02T10:11: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제1차 울산성 전투가 끝났을 때 왜군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거부로 울산 사천 순천 등 왜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598년 8월 18일(9월 18일), 전쟁의 주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다. 사로병진책을 계획한 조명연합군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사로병진책은 왜군을 섬멸할 목적으로 명의 제독 양호가 입안하고 경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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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2] 명량대첩, 조선 수군의 재건 - 수필 임진왜란 제8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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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1:25:11Z</updated>
    <published>2023-12-02T10:01:20Z</published>
    <summary type="html">칠천량해전의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재건하는 일에 나섰다. 그 행적이 《난중일기》에 있다. 1597년의 음력 날짜별로 살펴본다.  7월 18일, 칠천량해전의 패전 소식을 들었다. 이순신은 즉시 도원수 권율과 대책을 논의했다. 대책이란 첫째는 흩어진 수군 병사를 불러 모으는 일이요, 둘째는 전함을 확보하는 일이며, 셋째는 식량과 무기를 확보하는 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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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4] 제1차 울산성 전투 - 수필. 임진왜란 제8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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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5T11:28:42Z</updated>
    <published>2023-12-02T09:51: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본군이 펼치려 했던 수륙 양공책은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에게 패배함으로 좌절되었다. 일본군은 남해안의 해안가에 왜성을 쌓고 농성에 돌입했다. 사실 일본군 지휘관들은 본국으로 철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철수 불가와 함께 재북상을 독촉하는 바람에 엉거주춤한 상황이 되었다.  조명연합군도 전쟁을 끝장내려고 결의했다. 그래서 벌인 전투가 제1차 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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