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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Yongmoon Ki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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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Less Serious Idea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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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06T06:21:3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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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치히로 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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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1-10T05:09:44Z</updated>
    <published>2024-01-08T06:24:5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사회학은 사회적 행위를 해석적으로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그 행위의 경과와 결과를 인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하나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amp;quot; - 막스 베버(Max Weber)   막스 베버(Max Weber)은 인간의 행위가 주관적이지만 여전히 인과적 설명이 가능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이해'이다. 즉 우리는 어떤 사람이 왜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QEb%2Fimage%2FxXMmu3TFZB40g-0ec5YnPJ70l1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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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술의 병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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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0-15T14:57:47Z</updated>
    <published>2023-10-15T05:42:21Z</published>
    <summary type="html">회사에서는 논문을 쓰고, 개인 시간에도 논문과 학업계획서를 쓴다. 일상이 글쓰기의 연속이라 여기에 올릴 글을 정제할 시간 까지는 없을 것 같다. 하여 정돈된 글을 올리기는 힘들 것 같기에 그냥 스케치만 올려본다. 애초에 블로그 제목은 &amp;rsquo;less serious ideas&amp;rsquo; 였으니까.  23.10.15 논에 바람이 스친다.  벼들이 누웠다 일어나면서 바람의 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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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상과 추상-연구-애니메이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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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0-09T16:59:42Z</updated>
    <published>2022-03-08T10:39:56Z</published>
    <summary type="html">취미라기에는 매우 불성실하고 얄팍하지만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대체로 &amp;lsquo;점만 찍어놓은 현대미술&amp;rsquo;이 무언가 있는 것 같아서 젠체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왜 표현이 저렇게까지 변화하였는지 궁금해서 미술사를 위주로 공부한 적이 있다.    회화를 굉장히 단순화해 구분하면 구상화와 추상화로 나눠볼 수 있는데, 나는 항상 구상화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QEb%2Fimage%2F9PzpDv44fl9VGJWI43uFk_LLDjw.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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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얕은 소설과 전형성, 구조주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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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08T13:49:05Z</updated>
    <published>2022-03-08T10:39: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제 한 국내 작가의 단편선을 가지고 소설 읽기 세미나를 진행했다. 단편들 전체에 걸쳐 왜인지 계속 &amp;lsquo;얕다&amp;rsquo;는 느낌이 반복적으로 들었다. 이에 대해 세미나 도중 가장 공감이 됐던 평은 소설이 너무도 전형적이었다는 의견이었다. 특히 여성의 경력단절과 모성, 자아의 상실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주인공이 마치 &amp;lsquo;전형적 여성차별의 화신&amp;rsquo;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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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른의 지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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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08T10:39:46Z</updated>
    <published>2022-03-08T10:39:46Z</published>
    <summary type="html">행위론적 맥락에서 항상 우리는 중층적 현실 안에 살고 있다. 말이 어렵다. 풀어 얘기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과 무엇의 관계를 물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mp;lsquo;돈&amp;rsquo;과 &amp;lsquo;친구&amp;rsquo;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섞어야 하나를 고민하기도 한다. 혹은 이민자의 경우 내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그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종교인의 경우에는 종교적 교리와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QEb%2Fimage%2FEXs5oTmfwxUvYUmM2fhKOD1VFr0.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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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속하는 주제에 대한 스케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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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08T10:39:39Z</updated>
    <published>2022-03-08T10:39:3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squo;세계&amp;rsquo;와 구분되는 &amp;lsquo;나&amp;rsquo;는 무엇일까. 삶의 어느 순간에 우리는 순수한 &amp;lsquo;나&amp;rsquo;의 부분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해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개 자신에게 있는 &amp;lsquo;세계&amp;rsquo;의 부분들을 모두 지워가면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고자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가 없이는 &amp;lsquo;나&amp;rsquo;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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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냥 사니까 살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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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08T10:39:31Z</updated>
    <published>2022-03-08T10:39:31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끔 가다보면 무언가 깨달음을 줄 요량으로 &amp;lsquo;너는 왜 사니?&amp;rsquo;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amp;lsquo;그냥 사니까 살죠&amp;rsquo;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렇게 대답을 하면 마치 아무런 의미 없이 세상을 사는 것 처럼 보일까봐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잘못일까? 잘잘못을 떠나서 실천적(practice)으로 그런 행위가 존재하지 않나?     &amp;lsquo;왜 사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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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살과 감상: 얕은 설명의 욕구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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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3-08T10:39:15Z</updated>
    <published>2022-03-08T10:39: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작년 말 동네 카페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언제나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는 어떤 &amp;lsquo;한 사람&amp;rsquo;의 자살의 이유를 대화 주제로 삼고 싶지 않다. 그의 개인사를 내가 어떻게 알고 말하겠나.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슬픔만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일인 것 같다. 이럴 때는 차라리 그저 사회 전체적인 자살&amp;rsquo;</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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