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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은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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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dosan-histor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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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도산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흥사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흥사단은 건전인격과 신성단결로 독립운동을 해왔습니다. 도산 안창호와 얽힌 독립 운동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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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1-21T09:23:1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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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도산 안창호 사랑을 담다&amp;gt; 종이책 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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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3-13T07:14:15Z</updated>
    <published>2025-03-13T06:19:28Z</published>
    <summary type="html">https://bookk.co.kr/bookStore/67c1279944092ec70bbbb4b7   2022년 겨울부터 브런치북 10권으로 나누어 발행했던 &amp;lt;도산 안창호 사랑을 담다&amp;gt;를 수정 보완하여 부크크에서 종이책으로 출간하였다.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Pu0%2Fimage%2FjtMkMYpMUR2I5XN5yleMLZKnUfw.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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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10/10 &amp;nbsp;마지막 이야기 - 10화.&amp;nbsp;낙심마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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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7-11T06:20:40Z</updated>
    <published>2023-05-26T08:21:34Z</published>
    <summary type="html">10화. 낙심마오  일본은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을 수립했다. 내친걸음으로 상해를 점령하고자 했지만 홍구공원 사태로 인해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1937년 7월, 일본은 계획해 왔던 대로 중국 본토 침략을 감행했다. 북경 남서부지역 노구교 부근에 중국군 29군과 일본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1937년 7월 7일 밤, 실탄 사격 소리가 들렸고 이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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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9 (하) - 9화.&amp;nbsp;4평등 사회,&amp;nbsp;민주국가 디자인 (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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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4Z</updated>
    <published>2023-05-25T11:12:06Z</published>
    <summary type="html">9화.&amp;nbsp;4평등 사회,&amp;nbsp;민주국가 디자인 (하)  안창호는 서울에 도착하여 김병찬이 마련해 준 삼각정 중앙호텔(김병찬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광주, 순천, 부산, 대구, 안동 등을 순회했다. 인민들의 생활상은 예전 신민회 때의 상황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거늘, 일제의 수탈과 착취에 시달려 왔을 인민을 생각하니 눈시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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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9 (상) - 9화.&amp;nbsp;4평등 사회,&amp;nbsp;민주국가 디자인 (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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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4Z</updated>
    <published>2023-05-24T11:18:31Z</published>
    <summary type="html">9화.&amp;nbsp;4평등 사회,&amp;nbsp;민주국가 디자인 (상)  1935년 2월 10일 오후 1시 30분. 안창호는 주거 제한 및 요시찰을 전제로 대전 형무소에서 삼 년여 만에 가석방되었다. 안창호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김동원, 주요한, 박흥식, 여운형, 안맥결이 마중했다. 안창호는 이들과 대전역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3시 30분 대전역을 출발해 서울역에 도착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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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8/10 - 8화. 수기치인의 완성,&amp;nbsp;애기애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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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4Z</updated>
    <published>2023-05-23T09:28:11Z</published>
    <summary type="html">8화. 수기치인의 완성,&amp;nbsp;애기애타  상해에서 활동하던 많은 동지들은 안창호 불법 체포에 대해 항의하고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창호는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여 5월 30일 상해항을 떠나 6월 7일 오전 7시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경기도 경찰부에 인계되어 경성지방법원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다음 날 6월 8일부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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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7/10 - 7화. 이후 임시정부와 흥사단 동지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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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4Z</updated>
    <published>2023-05-17T11:47:30Z</published>
    <summary type="html">7화. 이후 임시정부와 흥사단 동지들  홍구공원 의거 이후 일본은 상해지역의 한국 독립운동 세력을 박멸하려고 작정했다.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 인사들은 상해를 떠나서 각 처로 피난했다. 흥사단 동지들도 상해를 떠나야 했다. 이들은 만주, 화북, 화남 등지로 흩어져 다음 길을 모색했다. 특히 중국혁명의 중심지인 광동 지역에는 김성숙과 김산을 비롯하여 안병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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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6/10 - 6화. 안창호 체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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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0-10T08:39:12Z</updated>
    <published>2023-05-16T10:55:47Z</published>
    <summary type="html">6화. 안창호 체포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안창호가 주장했던 한인각단체연합회는 1931년 7월 18일에 부활했다. 단체의 통일과 일원화를 통해 한중대일전선통일동맹 결성에도 한발 다가섰다. 예견했던 것처럼,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봉천 교외에서 만주철도를 폭파시켰다.&amp;nbsp;이 사건은 일본 관동군이 만주 전역을 점령하기 위해 시동을 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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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5/10 - 5화. 경제정의 실천운동, 흥사단 공평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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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8-13T20:35:13Z</updated>
    <published>2023-05-13T11:03:32Z</published>
    <summary type="html">5화. 경제정의 실천운동, 흥사단 공평사  안창호가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경제정의 실천 운동은 1930년 들어 흥사단대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공립협회와 신민회 때는 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민족자본을 일으키고자 했고. 연해주 망명 시절에는 민족의 교화와 경제를 개량, 진보할 목적으로 공제회를 설립했다. 또한, 망명 시기 미주에서는 공기업 형태의 북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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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4/10 - 4화. 상해,&amp;nbsp;한국독립당 창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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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3Z</updated>
    <published>2023-05-12T09:49:22Z</published>
    <summary type="html">4화. 상해,&amp;nbsp;한국독립당 창당  1930년 1월, 임시정부에는 이동녕, 김구, 조완구, 김철, 조소앙, 이시영, 엄항섭 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은 좌우합작의 민족유일당운동이 결렬되자 한국독립당 결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일당운동을 선도해 온 안창호는 다소 조급해진 마음을 눌렀다. 안창호는 이유필과 차리석을 앞장세워 흥사단 동지들과 긴밀한 회합을 열고 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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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3/10 - 3화. 여운형 체포와 이탁의 서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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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3Z</updated>
    <published>2023-05-11T10:56:28Z</published>
    <summary type="html">3화. 여운형 체포와 이탁의 서거  한편, 여운형은 상해 복단대학교 체육교수로 취직했다. 1928년 12월 20일, 한중 친선경기로 연희전문학교 축구단을 초청하고 교류했다. 여운형은 안창호를 초대하여 훈화시간을 마련했다. 안창호는 환영 훈화를 통해서 대공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대중 앞에 드러냈다.  안창호는 청년들에게 말했다. &amp;ldquo;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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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2/10 - 2화. 유일당운동의 수난,&amp;nbsp;김좌진과 김동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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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3Z</updated>
    <published>2023-05-10T12:59:37Z</published>
    <summary type="html">2화. 유일당운동의 수난,&amp;nbsp;김좌진과 김동삼  1928년. 안창호는 중국이 국공내전을 벗어나 항일투쟁에 집중해야만 우리 혁명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정은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국민혁명당 우한정부는 북벌 전쟁으로 인해 결국 재정난에 봉착했다. 우한정부는 재정적 불안을 공산당 지도부의 급진적 농민운동 탓으로 돌렸다. 국공합작에 균열이 생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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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10장. 낙심마오 #1/10 - 1화. 민족유일당 강령 구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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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29T10:02:53Z</updated>
    <published>2023-05-09T10:36:10Z</published>
    <summary type="html">1화. 민족유일당 강령 구상  안창호는 민족유일당의 강령을 구상하고 있었다. 안창호는 자기 생각과 계획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친구 이강이 필요했다. 이강에게는 무엇이든 토로할 수 있었다. 안창호가&amp;nbsp;이강의 집으로 들어서자 어찌 된 영문인지 이강의 아내 안혜빈이 뛰어나와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이강은 안창호가 만주 순회를 떠나자 화남지방 일대를 돌아&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Pu0%2Fimage%2FgYtFBebL7KO0zt3i0IwOoz32TaY.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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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10/10 - 10화.&amp;nbsp;민족유일당촉성회 연합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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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4T13:11:29Z</updated>
    <published>2023-05-04T11:03:35Z</published>
    <summary type="html">10화.&amp;nbsp;민족유일당촉성회 연합회  민족유일당은 작년 10월, 안창호가 불을 붙인 북경촉성회에 이어서 1927년 3월 21일 상해촉성회를 결성했다. 그러자 5월 8일, 광동에서는 의열단이 &amp;lsquo;독립당촉성운동선언&amp;rsquo;을 발표했다. 김원봉과 김성숙이 불을 지핀 것이다. 이후 광동촉성회와 우한촉성회도 결성되었다. 북경촉성회는 조성환이 대표요, 회원으로는 안창호, 원세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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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9/10 - 9화. 국내 흥사단의 고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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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4T11:32:45Z</updated>
    <published>2023-05-03T11:08:08Z</published>
    <summary type="html">9화. 국내 흥사단의 고뇌  안창호와 유기석은 1927년 8월 16일 상해로 귀환했다. 삼일당에서 만주순회 보고회를 열었다. 만주 동포의 비참한 생활상을 토로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농민호조 결성 및&amp;nbsp;만주 군벌과 일본 간의 삼시협정 실태에 대해서도 보고했다. 길림강연회에서 체포되었다가 상해 교민단과 한국노병회의 도움으로 풀려난 이야기도 했다.  이날 보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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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8/10 - 8화. 만주&amp;nbsp;3부 통합운동과 오동진 체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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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4T11:32:45Z</updated>
    <published>2023-05-02T10:46:28Z</published>
    <summary type="html">8화. 만주&amp;nbsp;3부 통합운동과 오동진 체포  영고탑 회의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모두 흩어졌다. 이탁과 김동삼이 가장 안타까워했다. 모두 신민부를 걱정했다. 김동삼과 김응섭 일행은 서둘러 각 기지로 돌아갔다. 양기탁도 김동삼을 따라 반석현으로 돌아갔다. 안창호와 유기석은 영고탑 회의에서 이탁을 다시 만났다. 이탁의 안내를 받으며 흑룡강성 남쪽 오상현 충하로 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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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7/10 - 7화. 중국 국공결렬과 유일당운동의 전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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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4T11:32:45Z</updated>
    <published>2023-05-01T11:05:27Z</published>
    <summary type="html">7화. 중국 국공결렬과 유일당운동의 전망  안창호는 길림에 머무는 동안 국민당 장개석의 반공 유혈 쿠데타 소식을 들었다. &amp;lsquo;중국이 난리가 났다. 국공합작은 깨졌다.&amp;rsquo; 여운형이 귀띔해준 사실이 기억났다. 손문 사후 지도부 간의 갈등 속에서 국민당은 1926년 12월 13일 우한에 국공합작 정부를 수립하고 군벌 타도를 시작했다. 장개석이 혁명지휘권을 장악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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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6/10 - 6화. 만주 사랑,&amp;nbsp;손정도와 이상촌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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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4T11:32:45Z</updated>
    <published>2023-04-28T10:46:47Z</published>
    <summary type="html">6화. 만주 사랑,&amp;nbsp;손정도와 이상촌 운동  안창호와 유기석은 예정대로 이탁, 손정도와 함께 양기탁 선배를 앞장세워 만주 각지 순회에 나섰다. 손정도는 이미 경박호 일대 액목현에 수전(水田) 50향을 사서 벼 농장을 시작한 상태였다. 목릉에도 3천 평의 농장을 구매해서 한인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양기탁과 손정도는 만주농업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경박호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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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5/10 - 5화. 길림강연회 구금사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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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10T11:59:01Z</updated>
    <published>2023-04-27T10:24:33Z</published>
    <summary type="html">5화. 길림강연회 구금사건  이탁은 안창호의 순회 유세 이야기를 꺼냈다.&amp;nbsp;&amp;ldquo;유일당 촉진을 위한 선생님의&amp;nbsp;순회 유세는 길림성 대동문 밖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사전 답사를 해 두었습니다. 1월 27일입니다.&amp;rdquo; &amp;ldquo;오, 그렇소? 사람들을 모았소?&amp;rdquo; 안창호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손정도가 말했다. &amp;ldquo;길림에 최명식(1880~1961) 선배가 정미소 공장을 크게 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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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4/10 - 4화. 유기석과 길림으로, 3차 만주 순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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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4T11:32:44Z</updated>
    <published>2023-04-26T11:32:10Z</published>
    <summary type="html">4화. 유기석과 길림으로, 3차 만주 순회  홍진 국무령 취임과 안창호의 임시정부경제후원회 발족으로 임시정부는 활기를 되찾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독립운동의 방향이 민족유일혁명당 조직으로 결집되는 분위기였다. 이동녕과 이시영을 비롯하여 조소앙 등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다. 흥사단 소속인 이유필과 조상섭, 송병조 등이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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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9장. 민족혁명의 길 #3/10 - 3화. 밝아오는 새벽,&amp;nbsp;『동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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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5-04T11:32:44Z</updated>
    <published>2023-04-25T10:24:13Z</published>
    <summary type="html">3화. 밝아오는 새벽,&amp;nbsp;『동광』  홍진을 만나 국무령 취임 수락을 받아 낸 안창호는 6월 26일 남경 동명학원으로 갔다.&amp;nbsp;안창호가 부재한 동안 동명학원은 선우혁과 선우훈 형제 그리고 차리석과 장덕로가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어느새 개교 3년 차가 되었다. 그런데&amp;nbsp;동명학원 신축교사 준공을 눈앞에 두고 화재가 발생하여 모두 소실되었다는 비보가 있었다. 조상섭</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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