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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의단</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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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11-30T04:51:0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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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헤어짐의 삼각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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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9T01:07:40Z</updated>
    <published>2026-03-19T01:07:40Z</published>
    <summary type="html">연애는 감정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복되는 판단의 구조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구조가 흔들릴 때, 우리는 흔히 &amp;ldquo;마음이 식었다&amp;rdquo;거나 &amp;ldquo;힘들다&amp;rdquo;는 말로 그것을 표현한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변화는 막연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삼각형이 무너지는 과정처럼 보인다. 나는 이것을 &amp;lsquo;헤어짐의 삼각형&amp;rsquo;이라고 부르고 싶다.  첫 번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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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or와 and, 충분과 필요의 언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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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7T05:48:28Z</updated>
    <published>2026-02-27T05:48:2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mdash; 조문을 읽는다는 것  법조문에서 &amp;ldquo;또는&amp;rdquo;과 &amp;ldquo;그리고&amp;rdquo;는 단순한 접속사가 아니다. 이는 충분과 필요를 배열하는 기술이다. &amp;ldquo;A 또는 B&amp;rdquo;는 각각이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충분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amp;ldquo;A 그리고 B&amp;rdquo;는 둘 모두를 통과해야만 성립하는 필요의 구조를 뜻한다. 접속사는 곧 판단의 설계도다.  그러나 조문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or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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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그냥의 충분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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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2T14:40:04Z</updated>
    <published>2026-02-22T14:4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그냥 했어. 그냥 좋았어. 그냥 싫었어. 그냥 계속하게 되더라.  이 &amp;ldquo;그냥&amp;rdquo;은 대개 설명을 포기하는 말처럼 들린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 생각 없이 했다는 말, 혹은 말하기 귀찮다는 말처럼 취급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amp;ldquo;그냥&amp;rdquo;은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이 지나간 뒤에 남은 말이다.  처음에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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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선과 악, 충분과 필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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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2T01:38:56Z</updated>
    <published>2026-02-22T01:38:5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선과 악을 말할 때, 먼저 논리학의 교과서에서 잠시 물러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은 형식논리의 정확한 정의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람을 보고 마음을 읽고 어떤 행동을 평가할 때 실제로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 생활 속의 구조를 붙잡아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법정의 판결문도 아니고, 종교적 교리도 아니다. 내가 살아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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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반사실조건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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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8T08:34:48Z</updated>
    <published>2026-02-18T05:02:10Z</published>
    <summary type="html">⸻  부정은 길이 아니라 경고등이다  우리는 논증을 할 때 자주 &amp;ldquo;만약 ~가 아니었다면&amp;rdquo;으로 들어간다. 반사실적 조건문이다. 이 문장은 강하다. 한 번에 구조를 드러내는 것 같고, 상대의 주장에 균열을 내는 데도 유용하다. 그런데 이 방식이 글의 중심이 되는 순간, 논증은 이상하게도 멈춘다. 정교해질수록 건조해지고, 정확해질수록 움직임이 사라진다.  반사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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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구조의 끝자락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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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8T02:50:34Z</updated>
    <published>2026-02-16T17:00:00Z</published>
    <summary type="html">흐름이 새로운 곳에 닿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 그 순간에는 늘 압박과 불안, 긴장과 두려움이 함께 따라온다. 그런데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그 감각을 &amp;ldquo;버텨야 할 비용&amp;rdquo;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용을 즐긴다. 자기 세계의 경계를 직접 확장하는 즐거움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amp;ldquo;자유의 현기증&amp;rdquo;이라 불리기도 한다. 절벽 가장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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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틈의 자유(10) - 종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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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6T04:00:03Z</updated>
    <published>2026-02-16T04: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 책은 자유를 선언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대신 자유가 어떤 지점에서 발생하고, 어떻게 멈추며, 다시 어떤 방식으로 호출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왔을 뿐이다.  자유는 선택의 순간에 갑자기 탄생하는 마법이 아니다. 불일치에서 의식이 깨어나고, 그 의식의 지속 속에서 욕구가 태동하며, 마침내 견고한 구조와 어긋나는 그 틈새에서 자유라는 이름의 흐름은 비로소 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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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틈의 자유(9) - 경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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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6T04:00:03Z</updated>
    <published>2026-02-16T04: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욕망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선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반복된 판단은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은 자연스러움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 판단은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배경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견고하게 굳어진 방향 위에서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상태를 경직이라 부를 수 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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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결론은 기준이, 과정은 판단이 내린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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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5T23:00:24Z</updated>
    <published>2026-02-15T23:00:24Z</published>
    <summary type="html">결론은 기준이, 과정은 판단이 내린다  우리는 종종 &amp;ldquo;결정은 내가 했다&amp;rdquo;고 말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amp;lsquo;내가&amp;rsquo;는 두 겹으로 나뉜다. 하나는 결론을 먼저 알고 있는 나, 다른 하나는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경로를 설계하는 나다. 전자가 기준이고, 후자가 판단이다. 내가 무엇을 옳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지, 무엇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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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충분의 원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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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5T05:00:03Z</updated>
    <published>2026-02-15T05: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공부에서 충분(充分)은 &amp;lsquo;대충&amp;rsquo;이 아니라 &amp;lsquo;원석(原石)&amp;rsquo;이다. 원석이라는 말에는 중요한 함의가 하나 있다. 대략의 정답이 이미 들어 있다는 것. 우리는 문제를 풀기 전에, 혹은 지문을 읽기 전에, 종종 &amp;ldquo;과정은 모르겠는데 결론은 이쪽일 것 같다&amp;rdquo;는 감각을 먼저 얻는다. 이것은 찍기가 아니라 충분의 형성이다. 충분은 방법의 지식이 아니라 도착점의 지식에 가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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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틈의 자유(8) - 욕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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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5T04:00:02Z</updated>
    <published>2026-02-15T04: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판단이 반복되면 그 방향은 점점 단단하게 굳어진다. 처음에는 우연한 하나의 선택이었을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은 나의 성향이 되고 나의 기준이 되며 마침내 나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이때 비로소 자유는 이름을 획득한다. 우리는 그것을 욕망이라 부른다.  욕망은 욕구와 엄밀히 다르다. 욕구가 아직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날것의 기울기였다면, 욕망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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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단의 구조* - 절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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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4T21:00:09Z</updated>
    <published>2026-02-14T21: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끼는 행위가 도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변수를 줄이고, 한 변수에 의존하고, 비용을 깎아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태도. &amp;ldquo;나는 흔들리지 않는다&amp;rdquo;는 감각이 생기고, 그 감각은 이상하게도 도전할 때의 쾌감과 닮아 있다. 둘 다 결국 불확실한 세계를 한 줄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도전은 &amp;ldquo;이 한 줄만 잡으면 뚫린다&amp;rdquo;는 쾌감이고, 절약은 &amp;ldquo;이 한 줄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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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틈의 자유(7) - 판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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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4T04:00:02Z</updated>
    <published>2026-02-14T04: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유는 흐른다. 그러나 이 흐름은 언젠가 멈춘다. 틈에서 새어 나온 자유는 결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방치하기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정리하려 한다. 이때 발생하는 사건이 바로 판단이다. 판단은 자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조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흐르고 있던 자유를 단 하나의 방향으로 고정하는 행위다. 가능성으로 존재하던 여러 갈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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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실생활 속 LEET_밸런스게임(1)_최대와 최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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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3T04:50:02Z</updated>
    <published>2026-02-13T04:5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밸런스게임은 가치의 우열을 가리는 게임이다.  우리가 사용할 도구는 최대와 최소이다.  (1) 최소를 따져봄으로써 필수적인 가치를 알 수 있다.  (2) 최대를 따져봄으로써 충분한 형태를 가늠해볼 수 있다.  (3) 최소를 따져봄으로써 출발점을 알 수 있으며 (4) 최대를 따져봄으로써 도착지를 알 수 있다.  중간은 현실이다.   (1) 행복한 결혼을 하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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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장 - 멈추지 않는 박동의 주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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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3T04:50:02Z</updated>
    <published>2026-02-13T04:5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존재를 가리고 있던 무수한 외피를 하나씩 걷어내며 이 서늘한 심연까지 내려왔다. 자유라는 미명 아래 흩어지던 에너지가 어떻게 판단이라는 구조를 만나 길이 되는지, 그 구조의 배후에서 기준이라는 중력이 어떻게 민감도의 다이얼을 돌리며 우리를 세계와 마찰시키는지, 그리고 그 모든 비명과 파동이 의식이라는 투명한 장 위에서 어떻게 &amp;lsquo;나&amp;rsquo;라는 동일성으로 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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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Ⅵ. 존재 - 박동의 단일성과 동일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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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3T04:50:02Z</updated>
    <published>2026-02-13T04:5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존재를 설명한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amp;lsquo;충분&amp;rsquo;을 깎아내며 여기까지 내려왔다. 이제 남은 문제는 동일성이다. 무엇이 흐려지고 무엇이 사라져도, 우리는 왜 스스로를 &amp;lsquo;같은 존재&amp;rsquo;로 느끼는가. 이 질문은 더 많은 요소를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제거해도 끝내 남는 최소를 확인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자유와 판단, 기준과 감정, 의식에 대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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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Ⅴ. 의식 - 드러남의 방식과 지속의 장(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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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2-13T04:5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의식은 존재의 박동이 신체라는 매질을 통해 전방위로 흐르며 만들어낸 가장 투명하고도 거대한 장이다. 사람들은 의식을 깨어 있는 동안의 명징한 사유나 논리적 판단의 총합으로 오해하곤 하지만, 그것은 의식이 수행하는 수많은 기능 중 일부가 표면으로 드러난 단편에 불과하다. 만약 의식이 오직 지적인 연산이나 인지적 자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라면, 사유가 멎는 무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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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신과 외부의 만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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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6-02-13T04:5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외부 변화는 우리 안으로 &amp;lsquo;정보&amp;rsquo;로 들어오기 전에 먼저 &amp;lsquo;일치/불일치&amp;rsquo;로 번역되어 들어온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전에 이미 편안하거나, 이미 불쾌하거나, 이미 긴장한다. 외부는 판단의 회로로 곧장 들어오지 않는다. 먼저 기준의 경계에 닿고, 그 접촉이 일치이면 흐름은 매끄러워지고, 불일치이면 흐름은 주춤한다. 그래서 외부 변화의 첫 효과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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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Ⅳ. 감정 - 기준과 외부의 마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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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우리는 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생각보다 먼저 울리는 소리를 만난다. 아직 이성이 문장으로 정리되기 이전, 외부의 자극 위에 논리적 해석이 덧씌워지기 이전에 이미 몸은 반응한다. 같은 말인데 어떤 날은 스쳐 지나가고, 어떤 날은 뼈를 건드린다. 이유를 대기 전에 불쾌가 먼저 떠오르고,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긴장이 먼저 붙는다. 사람들은 감정을 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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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Ⅲ. 기준과 민감도 - 흐름의 기울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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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3T04:50:01Z</updated>
    <published>2026-02-13T04:50:01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준(基準)은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판단이 기대는 중력이다. 필요(必要)가 호출되는 순간, 판단은 기준을 불러 정당성을 얻고 집행력을 확보한다. 그래서 판단과 기준은 필요로 이어진다. 기준은 찰나의 결심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시간 속에서 귀속과 반복이 퇴적(堆積)되며, 그 퇴적이 기울기로 굳을 때 기준은 중력이 된다.  다만 이 중력은 하나가 아니다. 기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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