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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율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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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책을 동경하는 사람. 낮에는 마케터, 밤에는 책읽고 글쓰는 중.</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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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5-08-06T12:13:5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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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람이 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 &amp;lt;행복의 기원&amp;gt; 을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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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6T12:53:46Z</updated>
    <published>2026-04-26T12:53:46Z</published>
    <summary type="html">행복. 이 단어 앞에서 움츠러드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막연히 따뜻한 무언가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행복은 곧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오래 혹은 너무 깊이 믿어왔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고, 행복은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며, 행복은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을 능동적인 것으로 배워왔다. 긍정적으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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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타인의 파편이 나의 언어가 될 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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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9T10:03:51Z</updated>
    <published>2026-04-19T10:03: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명언을 사랑한다. 누군가의 한 문장이 마음에 박히는 순간을 안다. 수첩에 적고, 사진을 찍고,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해두는 그 행위. 괴테의 이름은 특히 자주 그 자리에 등장한다. 티백 태그에도, 달력 귀퉁이에도, 누군가의 SNS 프로필에도. 우리는 그 문장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위로를 받고, 때로는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괴테라는 이름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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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낙하하는 저녁&amp;nbsp; - 조용한 저녁이 내리기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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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1T23:57:46Z</updated>
    <published>2026-04-11T23:57:46Z</published>
    <summary type="html">저녁은 원래 내려오는 시간이다. 해는 지고, 빛은 사라지고, 하루는 끝을 향해 간다. 그런데도 '낙하한다'는 표현은 어딘가 과하다. 저녁은 흐르는 것이지, 추락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낙하라는 단어에는 방향이 있고, 속도가 있고, 무게가 있다. 그것은 의지와 무관하게 떨어지는 것들에 붙이는 말이다. 과연 저녁이 그런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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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실격 - 우리는 언제부터 스스로를 탈락시켰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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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9T13:35:18Z</updated>
    <published>2026-03-29T13:35: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 그리고 실격. 강렬하다. 인간과 실격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합쳐지는구나.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말. 잔인하다. 과연 그 자격은 누가 정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내리는 판결일까, 아니면 타인이 찍어주는 낙인일까.  너무 단정적이고, 너무 잔인한 단어의 조합이라 책의 내용을 상상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거기에 작가의 삶이 겹쳐졌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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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면도날 - 선택과 구원의 경계에 선 인간의 은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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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20T07:37:20Z</updated>
    <published>2026-03-20T07:37:20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머싯 몸의 소설&amp;nbsp;&amp;lt;면도날&amp;gt;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amp;ldquo;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한국어 제목은 〈면도날〉, 영어 제목은 The Razor's Edge. 소설을 읽기 전부터 나는 이 제목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왜 하필 면도날일까. 이렇게까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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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대답보다 먼저 도착하는 질문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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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5T11:21:56Z</updated>
    <published>2026-03-15T11:21:56Z</published>
    <summary type="html">프랑수아즈 사강.나는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면, 공기가 약간 달라지는 듯하다. 차갑고, 세련되고, 약간은 쓸쓸한 공기. 『슬픔이여 안녕』을 읽으며 &amp;ldquo;이 작가는 내가 오래 좋아할 사람이다&amp;rdquo;라고 직감했다. 그 직감이 확신으로 굳어진 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만났을 때였다.  사강의 문장은 감정에 취하지 않는다.슬픔을 말하지만 지나치게 슬프지 않고, 욕망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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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 부재를 묻는, 사라진 세계에 대한 애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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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8T13:03:06Z</updated>
    <published>2026-03-08T13:03:06Z</published>
    <summary type="html">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질문이지만 감탄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문장은 어딘가 허공에 걸린 채 끝난다. &amp;ldquo;누가 먹었을까&amp;rdquo;라는 말이 품고 있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이미 사라져버린 어떤 세계에 대한 애도의 뉘앙스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은 &amp;lsquo;싱아&amp;rsquo;라는 단어를 잘 모른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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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토너 - 이름 하나로 견뎌낸 삶의 무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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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1T14:06:06Z</updated>
    <published>2026-03-01T14:06: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소설의 제목이 한 사람의 이름일 때, 나는 더 빠르게 몰입한다. 이야기보다 사람을 먼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빨강머리 앤』,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제목들. 세계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그 중심을 바라볼 때 감정은 훨씬 더 날 것으로, 또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우리는 제목</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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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롤로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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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2T13:31:50Z</updated>
    <published>2026-02-22T13:31: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등을 따라 늘어선 제목들을 읽는 시간을 더 좋아했을런지 모른다. 서가를 천천히 걸으며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펼쳐지는 건 '제목이라는 이름의 작은 우주들'이다. 몇 글자에 불과한 그 문장들이 품고 있는 건 한 권의 책 전체이고, 때로는 작가의 인생 전부이기도 하다. 그 압축의 밀도를 생각하면 경이롭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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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우리는 여전히 작가를 필요로 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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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5T13:59:32Z</updated>
    <published>2026-02-15T13:59:32Z</published>
    <summary type="html">거장 황석영이 AI를 &amp;lsquo;조수&amp;rsquo;로 활용해 집필한 소설 『할매』를 보며, 나는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꺼내 들게 되었다.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호흡을 맞추는 그의 행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기술을 거부하지 않되, 기술에 잠식되지 않는 태도. 그 균형감각에 정말 깊은 존경을 보낸다. AI와 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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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여주기식 인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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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8T14:42:17Z</updated>
    <published>2026-01-18T12:55:54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스럼없이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amp;quot;우리 딸은 꼭 보여주기식으로 공부하는 것 같아.&amp;quot; 초등학교 5학년. 친구의 눈에 아이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이로 보이고 있었다.  보여주기식 공부라..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그건 사실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였다. &amp;quot;넌 늘 남들을 의식하고, 보여주기식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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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걱정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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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1T13:34:13Z</updated>
    <published>2026-01-11T13:34:13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amp;quot; 인생을 살아오며 나는 자주 이 말을 믿었다. 적어도 그 말은 나에게 꽤 효과적인 주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 원치 않는 상황, 억울한 순간들까지도 결국 지나가는 것들이었고,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뒤는 나름 괜찮은 결말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피할 수 없어도 즐길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직면하기 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걱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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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두가 치러야 할 자백의 대가  - 넷플릭스 &amp;lt;자백의 대가&amp;gt;를 보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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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4T12:45:00Z</updated>
    <published>2025-12-14T12:38: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백(自白). 스스로 자, 흰 백. 글자 그대로 스스로를 희게 만드는 행위. 얼마 전 넥플릭스 &amp;lt;자백의 대가&amp;gt;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내용의 전개를 비롯해 드라마 속 영상미, 음악이 지속적인 긴장감을 만들어 주었다. 전도연님이 연기한 윤수와 김고은 님이 연기한 모은. 이 두 주인공을 비롯해, 극의 인물들이 대사를 통해, 행동을 통해 주고받는 자백은 문자처&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zk%2Fimage%2FIbYR0hDVru7UJo8lt81xIDRZvqQ.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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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과 상처의 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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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3T13:06:19Z</updated>
    <published>2025-11-23T13:06:1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솔직함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다&amp;quot;는 말을 한 TV 프로그램에서 접했다. 이 문장을 듣고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말이 폭력처럼 다가오고, 상처받을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상처를 주는 것 사이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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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파민의 시대,&amp;nbsp;잃어버린 리듬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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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02T13:21:51Z</updated>
    <published>2025-11-02T13:21: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즘 나의 도파민은 넷플릭스 &amp;lt;셀링 선셋&amp;gt;과 유튜브 쇼츠로 채워진다. 하루가 끝나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손끝은 자동적으로 그저 자극적인 스토리에 몰두하고, 15초짜리 짜릿한 영상들로 쉼 없이 나를 자극한다. 그 단순하고, 짧은 쾌락의 연속 속에서 '자극적이다'와 '멍하다'는 감각이 동시에 찾아온다. 도파민이 터지는 건지, 아니면 정말 뇌가 바보가 되는 건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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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서를 &amp;lsquo;취미&amp;rsquo;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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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0-26T13:42:14Z</updated>
    <published>2025-10-26T13:42:14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책을 쓴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독서를 취미로 하지 말고 일처럼 하라.&amp;quot; 최재천 교수님이 한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크고 묵직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주저 없이 &amp;quot;독서요&amp;quot;라고 말하던 내게, 새로운 시각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한 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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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이듦을 발명하는 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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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0-12T14:13:35Z</updated>
    <published>2025-10-12T14:13: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할 때 시작된다  언제가 메모해 둔 이 문장을 바라보며, 나는 내 나이 '마흔'을 생각한다. 마흔이 된다는 건, 단순히 숫자가 바뀌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어느 날 문득, &amp;lsquo;나는 이제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amp;rsquo;를 묻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요즘 SNS에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려는 40대를 향한 말들이 넘쳐난다. &amp;lsquo;영포티&amp;rsquo;,</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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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부와 외부, 그 사이 - 릴케의 시 &amp;lt;장미의 내부&amp;gt;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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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0T06:19:53Z</updated>
    <published>2025-09-20T06:19: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릴케의 시 〈장미의 내부〉를 읽으며 나는 내 안과 바깥을 함께 떠올린다.  누군가, 잘 정돈된 집.옷장을 열자 쏟아져 내리는 옷더미. &amp;ldquo;이건 내부야.&amp;rdquo;쓰지도 않는 노트북을  가리키며 그는 &amp;ldquo;이건 외부&amp;rdquo;라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우리는 모두 내부를 감추며 살아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내 외부를 보고 잘한다고 말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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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혜를 모르는 지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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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4T12:18:29Z</updated>
    <published>2025-09-14T12:18:2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amp;nbsp;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amp;nbsp;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amp;quot;  22살. 휴학을 하고 본가로 내려가 세례를 받고 한창, 기도에 빠져 있던 시절. 그 어떤 기도문 보다 저 내용이 참 좋았다. 단순히 좋았다기 보다 저 한 줄 하나하나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안되면 되게 하라', '무조건 뭐든 도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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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내가 만난 사람의 총합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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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31T12:45:58Z</updated>
    <published>2025-08-31T12:43:27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내가 만난 사람의 총합이다.' 은유 작가님의 『아무튼 인터뷰』표지에 적힌 이 문장을 마주했다.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아니 무서운 전율이라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 무서움은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과 닮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는 나는, 내가 살아오며 만난 모든 사람들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결과라는 깨달음. 그것은 마치 내 존재의 뿌리를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zk%2Fimage%2FLIq-1qn3LpIJYzqO4kxu40TBbE8.pn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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