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title>김상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 />
  <author>
    <name>06ee6f39356d48d</name>
  </author>
  <subtitle>중세 역사, 종교 그리고 정치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subtitle>
  <id>https://brunch.co.kr/@@fYpZ</id>
  <updated>2023-09-27T12:03:30Z</updated>
  <entry>
    <title>페르디난트와 종교화해 -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25" />
    <id>https://brunch.co.kr/@@fYpZ/25</id>
    <updated>2023-12-14T01:56:38Z</updated>
    <published>2023-12-13T20:04:18Z</published>
    <summary type="html">페르디난트와 종교화해 세상사에 행운이 오면 그에 따른 재앙도 함께 온다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처남의 죽음으로 헝가리 왕관을 차지할 기회를 얻었고 경쟁자를 패배시켰으나 상대방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페르디난트에게 패배한 야노시는 외세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자신의 왕국을 지키고 싶어 했다. 이교도인 오스만의 신하가 되는 조건으로 슐레이</summary>
  </entry>
  <entry>
    <title>형과 동생 - 카를5세와 동생 페르디난트&amp;nbsp;1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24" />
    <id>https://brunch.co.kr/@@fYpZ/24</id>
    <updated>2023-12-05T22:15:39Z</updated>
    <published>2023-12-05T13:15:23Z</published>
    <summary type="html">덕의 실천자 페르디난트&amp;nbsp;1세 1503년 한 사내아이가 스페인 왕가에서 태어났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랍인들을 몰아낸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이 아이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였다. 그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외손자였다. 이사벨 여왕에게는 아들이 있었으나 6년 전에 죽어 버려, 왕가를 이어갈 남자라고는 외손자밖에 없었다. 외손자가 한 명 더 있었으나 유</summary>
  </entry>
  <entry>
    <title>카를5세의 기난긴 여행 - 전쟁과 종교, 신은 종교개혁을 지지했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23" />
    <id>https://brunch.co.kr/@@fYpZ/23</id>
    <updated>2023-12-03T03:04:42Z</updated>
    <published>2023-12-02T22:40: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카를5세의 기난긴 여행 카를5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신대륙을 포함한 &amp;lsquo;해가 지지 않는 제국&amp;rsquo;을 통치했다. 신대륙 개척 등으로 영토를 늘리며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루었고 끝없는 반란과 전쟁에서 제국을 지켜냄으로써 황제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던 시기로 루터를 지지하는 독일 제후들과, 그리고 욱일승천하</summary>
  </entry>
  <entry>
    <title>어려울 때는 사과나무를 심듯이 - 어려울수록 원칙을 따라야</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22" />
    <id>https://brunch.co.kr/@@fYpZ/22</id>
    <updated>2023-11-23T23:20:58Z</updated>
    <published>2023-11-23T13:13:36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려울 때는 사과나무를 심듯이 종교는 국가의 통치를 수월하게 한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도록 마음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규제완화가 저절로 되므로, 종교가 제 역할을 하면 국가는 강건해질 것 같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최고의 정치가는 모세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교가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종교지도자들은 대중들의 마음에 영향</summary>
  </entry>
  <entry>
    <title>카를5세를 만든 여인들 - 어머니, 고모, 그리고 아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21" />
    <id>https://brunch.co.kr/@@fYpZ/21</id>
    <updated>2023-11-23T15:25:46Z</updated>
    <published>2023-11-23T13:08: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카를5세를 만든 여인들 괴테는 &amp;ldquo;그 시대의 여성을 모르면 그 시대를 알 수 없다.&amp;rdquo;는 말을 했다. 세상은 남자가 주연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를 움직이는 것은 커튼 뒤의 여자인 것 같다. 어머니가 없으면 황제도 있을 수 없다. 카를 5세도 그를 음으로 양으로 도운 여인들의 힘으로 &amp;lsquo;해가 지지 않는 제국&amp;rsquo;을 이룩한 것 같다. 1.&amp;nbsp;어머니 광녀 후아나 프랑스는</summary>
  </entry>
  <entry>
    <title>인노첸시오 8세와 마녀재판 - 무속의 성행과 마녀재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20" />
    <id>https://brunch.co.kr/@@fYpZ/20</id>
    <updated>2023-11-02T17:33:26Z</updated>
    <published>2023-11-02T12:24:11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만히 앉아서 된 교황:&amp;nbsp;왕권신수설 식스토 4세가 사망하고 로마에서는 폭동이 발생했다. 전임교황의 독재와 축재에 따른 반발인지, 폭도들이 교황의 조카인 지롤라모 리아리노의 궁전과 곡물창고를 습격했다. 이러한 혼란으로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콘클라베는 교황 사후 14일이나 지나서 열렸고, 전임교황의 조카인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훗날의 율리오 2세)추기경은 자신</summary>
  </entry>
  <entry>
    <title>철인왕 요한22세교황 - 재정확충과 영적 부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9" />
    <id>https://brunch.co.kr/@@fYpZ/19</id>
    <updated>2023-10-23T16:16:27Z</updated>
    <published>2023-10-22T11:48:53Z</published>
    <summary type="html">교황과 철인정치 철인정치는 허구이며, 유토피아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세 유럽의 천년은 오랜기간 교육과 훈련을 받은 교황들이 군대도 없이 질서를 유지하고 도덕을 고양했다. 이들이 철인 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훌륭한 통치와 재정개혁을 이루어낸 교황으로 요한22세가 있었다. 그는 1245년 프랑스 카오르에서 제화공의 아들</summary>
  </entry>
  <entry>
    <title>해가지지않는 제국과 끝없는 전쟁 - 카를5세와 종교 개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8" />
    <id>https://brunch.co.kr/@@fYpZ/18</id>
    <updated>2023-10-23T05:13:12Z</updated>
    <published>2023-10-20T01:04: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카를5세의 기난긴 여행 카를5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신대륙을 포함한 &amp;lsquo;해가 지지 않는 제국&amp;rsquo;을 통치했다. 신대륙 개척 등으로 영토를 늘리며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루었고 끝없는 반란과 전쟁에서 제국을 지켜냄으로써 황제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던 시기로 루터를 지지하는 독일 제후들과, 그리고 욱일승천하</summary>
  </entry>
  <entry>
    <title>알렉산데르 6세와 냉혹한 국제정치 -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7" />
    <id>https://brunch.co.kr/@@fYpZ/17</id>
    <updated>2023-10-23T05:13:16Z</updated>
    <published>2023-10-19T11:39: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알렉산데르&amp;nbsp;6세와 냉혹한 국제정치 1492년 인노첸시오 8세 교황의 선종후 스페인 출신인 로드리고 보르지아 추기경이 새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선거에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개입했다. 피렌체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넉달 전에 죽어 대책이 없었고 베네치아는 중립을 지키고 있었지만, 밀라노공국의 섭정인 &amp;lsquo;일모로&amp;rsquo;는 조카를 몰아내고 왕좌를 찬탈하기 위해 교황의 도움이</summary>
  </entry>
  <entry>
    <title>이단 박해와 당내민주화 - 당내민주화가 총선 승리의 관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6" />
    <id>https://brunch.co.kr/@@fYpZ/16</id>
    <updated>2023-10-23T05:13:19Z</updated>
    <published>2023-10-19T10:14:46Z</published>
    <summary type="html">이단 박해의 원인 중세 교회권력이 절정에 달한 인노첸시오 3세 교황 때 남프랑스에 카타리파라 불리는 이단이 등장했다. 이 이단들은 육식을 하지 않는 금욕적인 삶을 살았고 화려한 교회도 짓지 않았다. 때때로 부자들이나 고위성직자들의 사치를 비난하기도 했는데, 신도들에게 금전적 부담이 적어서인지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었다. 교황청은 이단을 엄격하게 대했다.</summary>
  </entry>
  <entry>
    <title>알렉산더 6세 교황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 - 마키아벨리가 격찬한 교황군 사령관 체사레 보르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5" />
    <id>https://brunch.co.kr/@@fYpZ/15</id>
    <updated>2023-10-14T20:41:12Z</updated>
    <published>2023-10-10T07:42:17Z</published>
    <summary type="html">교황과 아들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에 의해 군주론의 모델로 제시된 인물이다. &amp;lsquo;새로운 군주&amp;rsquo;의 모범이라며 새로 권좌에 오른 군주라면 반드시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부언했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가 기만과 술책을 통해 교황령의 군주들을 신속하게 몰아내고 자기 영토로 만들어가는 능력에 경탄했던 것 같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영감을 얻은 체사레를 불멸로 만</summary>
  </entry>
  <entry>
    <title>알렉산데르 6세 교황과 그 주변 여인들 - 루크레치아의 고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4" />
    <id>https://brunch.co.kr/@@fYpZ/14</id>
    <updated>2023-10-24T11:12:07Z</updated>
    <published>2023-10-10T07:36:01Z</published>
    <summary type="html">역사의 진실과 여인들  &amp;ldquo;여자를 아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그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여인을 연구해야 한다.&amp;rdquo;고 괴테는 말했다. 역사무대의 주인공에 남자가 많았지만 커튼 뒤의 여인이 함께 서술되지 않으면 반쪽짜리 역사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귀족 가문의 여인들은 정략결혼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자기 가문의 안정과 발</summary>
  </entry>
  <entry>
    <title>율리오 2세 교황과 예술진흥 -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3" />
    <id>https://brunch.co.kr/@@fYpZ/13</id>
    <updated>2023-10-12T11:50:50Z</updated>
    <published>2023-10-08T09:51: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율리오&amp;nbsp;2세와 예술가들 율리오 2세는 전쟁을 자주 일으킨 잘못에도 불구하고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만큼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외적을 쫓아낸 업적도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한데 있지 않나 생각된다.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라파엘로로 하여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성베드로 성당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했다</summary>
  </entry>
  <entry>
    <title>율리오 2세교황의 전쟁과 외교전략 - 전사교황의 이이제이 외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2" />
    <id>https://brunch.co.kr/@@fYpZ/12</id>
    <updated>2023-10-12T11:51:13Z</updated>
    <published>2023-10-08T09:48: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율리오&amp;nbsp;2세교황의 젊은 시절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의 부친은 가난한 양치기였고 본인도 어릴 때 부모를 도와서 양을 돌봤을 것이다. 추기경이던 숙부의 도움으로 신부가 되었으며, 숙부가 교황 식스토 4세로 즉위하자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줄리아노 로베레는 식스토 4세의 그늘아래서 인맥을 쌓았고, 식스토4세가 죽었을 때 그는 한 당파의 리더가 되어있었다. 그래서</summary>
  </entry>
  <entry>
    <title>&amp;nbsp;로마 대약탈(사코디 로마)  - 잔머리로 재앙을 초래한 클레멘스7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1" />
    <id>https://brunch.co.kr/@@fYpZ/11</id>
    <updated>2023-10-12T11:51:16Z</updated>
    <published>2023-10-07T14:35:48Z</published>
    <summary type="html">클레맨스&amp;nbsp;7세와 로마 대약탈(사코디로마) 하드리아노 교황 사후 줄리오 메디치가 클레멘스 7세 교황으로 즉위했다. 그는 키가 훤칠하고 외모가 준수했으며 철학, 신학, 건축 등 모든 분야에 탁월한 식견이 있었다. 레오 10세 교황 시절에 2인자로서 교황청의 외교, 내정 등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실무경험도 있었다. 더욱이 예술과 학문에 호의적인 메디치 가문 출신</summary>
  </entry>
  <entry>
    <title>헨리8세와 전쟁 없는 종교개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10" />
    <id>https://brunch.co.kr/@@fYpZ/10</id>
    <updated>2023-10-12T11:51:18Z</updated>
    <published>2023-10-07T14:28:12Z</published>
    <summary type="html">헨리8세와 이상한 종교개혁 헨리8세는 &amp;lsquo;천일의 앤&amp;rsquo;이란 영화에서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인과 결혼한 후, 그 여인도 사랑이 식자 이내 사형에 처한 비정한 왕이다. 여성편력이 심해서 우리 조선의 숙종과 장희빈이 연상된다. 6명의 왕비를 뒀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했지만, 헨리8세를 여성편력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첫 번째 왕비와의 이혼, 두 번째</summary>
  </entry>
  <entry>
    <title>박해 속에서 꽃을 피운 영어성경  - 윌리엄 틴들의 영어성경과 토마스 모어의 박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9" />
    <id>https://brunch.co.kr/@@fYpZ/9</id>
    <updated>2024-04-26T06:30:29Z</updated>
    <published>2023-10-07T13:50: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윌리엄 틴들의 영어성경과 토마스 모어의 박해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amp;ldquo;아주 옛날에는 전 세계의 말과 문자가 하나였다.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주하면서 바빌로니아 평원에 정착했는데, 그들은 벽돌을 굽고 역청을 이용해서 하늘에 닿는 탑을 건설하려고 했다. 신을 찬미하기보다 이 건축물을 통해 자신들의 위대함을 과시하고, 그들 공동체를 결속하</summary>
  </entry>
  <entry>
    <title>츠빙글리의 종교개혁  - 용병제도 폐지 주장과 내부 전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8" />
    <id>https://brunch.co.kr/@@fYpZ/8</id>
    <updated>2023-10-12T11:46:49Z</updated>
    <published>2023-10-07T13:09:57Z</published>
    <summary type="html">츠빙글리의 종교개혁과 용병제도 &amp;ldquo;돈을 벌기 위해서 죄 없는 나라를 약탈하고 황폐화시킨 행위를 당신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전쟁을 하면 안 되는 교황과 주교들의 돈을 받고 싸우겠습니까?&amp;rdquo; 스위스의 종교개혁가인 츠빙글리의 외침이다(정미현, 용병제도를 통해 본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사회 경제적 배경). 그는 용병제도에 반대했다. 스위스는 가난했기 때</summary>
  </entry>
  <entry>
    <title>하드리아노 6세 교황의 개혁 실패 - 로마 시민 등의 저향</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7" />
    <id>https://brunch.co.kr/@@fYpZ/7</id>
    <updated>2023-10-12T11:46:31Z</updated>
    <published>2023-10-07T12:41:11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드리아노&amp;nbsp;6세와 교회개혁 실패 &amp;ldquo;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많은 흉악한 일들이 바로 이 교황보좌에서 발생하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적 문제의 남용, 하느님 명령에 대한 불순종 등 모든 문제가 더 악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질병이 머리에서부터 각 지체로, 교황에서 고위성직자들로 번졌음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고위성직자들 및 우리 모든 성직자들은 올바른 정도에서</summary>
  </entry>
  <entry>
    <title>종교개혁과 루터의 광기 - 에라스무스와 자유의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brunch.co.kr/@@fYpZ/6" />
    <id>https://brunch.co.kr/@@fYpZ/6</id>
    <updated>2023-10-12T11:43:24Z</updated>
    <published>2023-10-07T12:16:54Z</published>
    <summary type="html">루터의 종교개혁과 에라스무스 종교개혁은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고 루터가 부화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하면 면죄부, 95개조 면죄부 반박문, 그리고 비텐베르크 성당 문이 떠오른다. 개혁의 주인공은 루터였고, 에라스무스는 조연인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에라스무스는 &amp;lsquo;우신예찬&amp;rsquo;이란 책으로 유명해졌다. 교황과 성직자에 대한 심각한 비판을 담고 있</summary>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