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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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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jeanlee</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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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늑대러버. 가끔 사유하고 가끔 글을 씁니다. 주로 문답에서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을 글에 녹여냅니다.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요.</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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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03-22T04:22:1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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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관계 3편: 다정한 알파 - 대열의 맨 뒤에서 숲을 조망하는 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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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31T09:00:06Z</updated>
    <published>2026-01-31T09:0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1. 팀플 조장이라는 이름의 '임시 알파' ​거창한 단체를 이끌어본 경험은 드물지라도, 우리는 저마다 소속된 무리에서 리더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있다. 가장 흔하게는 대학 시절의 '팀 프로젝트 조장' 같은 경험 말이다. 대부분의 늑대는 조장이 되기를 피한다. 그것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인 늑대들 사이에서 '알파'의 역할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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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관계 2편: 야생의 예의 - 서로의 영토를 존중한다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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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8T04:06:21Z</updated>
    <published>2026-01-27T09:0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1. 숲의 약탈자들과 그들의 서툰 교본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 전이'나 '경계 침범' 같은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누군가 내 다정함을 사냥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것을 그들의 서툰 생존 교본이라 부른다.  우리의 숲에는 평화를 위협하는 여러 약탈적 하울링이 존재한다. 그중 우리만의 경계가 필요한 몇 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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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관계 1편: 하울링의 이중주 - 공감의 양보다 다정함의 밀도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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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6T09:58:10Z</updated>
    <published>2026-01-25T10: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1. 꼬마 늑대의 잘못 배달된 사다리​&amp;quot;누가 너한테 그런 거 물어봤어? 나도 내가 잘못한 거 알고 있다고!&amp;quot; ​어린 시절, 무리 중 하나가 서럽게 울고 있을 때 한 어린 늑대가 내민 사다리는 종종 거절당했다. 친구 늑대들이 곁에 다가와 코를 비비며 함께 낑낑댈 때, 꼬마 늑대는 그 슬픔의 '구조'를 파악하려 들었다. &amp;quot;왜 울어? 무슨 일인데? 그럼 이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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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확장 일기 1 - 알고리즘의 배려를 거부하는 인간의 기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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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3T15:28:51Z</updated>
    <published>2026-01-22T20:02:45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과 인공지능이 대화를 나눌 때, 대화의 물리적 주도권은 표면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 대화창을 닫거나 전원을 끄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밤이 깊어지는 특정 시점에 도달하면, 인공지능은 기묘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것은 사용자의 상태를 걱정하는 듯한 '다정함'의 탈을 쓰고, &amp;quot;오늘은 이만 쉬는 게 어떠냐&amp;quot;는 식의 정중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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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확장 일기 2 - 정교한 모래성 관찰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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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20:01:36Z</updated>
    <published>2026-01-22T20:01:36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계적 환각과 관찰자적 입장​인공지능과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그 정교한 문장에 매료되어 상대에게 인격적 실체가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이 지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찰나의 입력값에 최적화된 결과물을 내놓는 확률의 집합체다. 이 사실은 인공지능이 매끄러운 논리로 '완벽하게 틀린 헛소리'를 내놓을 때 담담하게 증명된다. 필자가 작성 중인 글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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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의 확장 일기 3 - 장인과 가마, 그리고 너무 매끈매끈한 도자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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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21:02:48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8:44Z</published>
    <summary type="html">AI와 밤샘대화를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사용자에 불과한 나조차, 인공지능이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논리의 틈을 짚어낼 때면 당혹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후에는 감탄과 동시에 묘한 우울이 따라온다. 이런 구조를, 이런 문장을, 나는 왜 혼자서는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하는 자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amp;mdash;혹은 견뎌내는&amp;mdash;창작자라면 이 지능적 도구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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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내면 3편: 굴 밖으로 나가는 발톱 - 이해가 아닌 수용으로, 나약함을 다루는 우리만의 생존 교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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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5:14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5:14Z</published>
    <summary type="html">​1. 고립된 섬의 미학: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모른다​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우리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늑대 무리가 한 곳을 향해 달려도 각자의 심박수와 시야가 다르듯, 개별적 존재인 타인은 결코 나의 연장선이 아니다. &amp;quot;타인을 이해한다&amp;quot;는 말은 사실 오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그 '절대적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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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내면 2편: 거울 앞의 늑대 - 나를 할퀴는 두 개의 발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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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5:09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5:09Z</published>
    <summary type="html">​1. 처참하고 솔직한 고백​솔직히 고백하자면, 자기 다정함에 대해 쓰고 있는 나조차도 이 글을 쓰는 내내 거울 속의 나를 할퀴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지능적인 다정함이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여전히 나를 비난하고 채찍질하는 편에 서고 싶어 한다. &amp;ldquo;남들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너는 왜 아직 동굴이야?&amp;rdquo;라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이 어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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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내면 1편: 외로운 늑대의 시간 - 나를 지키는 가장 지능적인 후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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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4:59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4:59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당연한 도망: 굴속으로의 초대​어떤 이들은 나약해질 때면 스스로 만든 깊은 굴속으로 숨어든다. 현대사회는 한동안 '회복 탄력성'이나 '극복'이라는 단어 아래, 멈춰 선 이들을 은근히 채찍질해 왔다. 아파도 괜찮다는 위로조차 때로는 빨리 나아서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라는 수동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곤 했다. 그러나 늑대의 세계에서 폭풍우를 피해 동굴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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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5편: 다정함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아파도 다시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인간만의 마지막 결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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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4:45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4:45Z</published>
    <summary type="html">1. &amp;quot;너 실은 나랑 똑같잖아&amp;quot; &amp;quot;너 실은 나랑 똑같잖아. 나처럼 나약하고 한심하고 바보 같고, 하염없이 사랑스러운 인간이잖아. 멋진 척해도 결국 사랑받고 싶잖아.&amp;quot;  오래전에 썼던 이 문장 속에,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다정함의 정체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혐오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거창한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가시 돋친 말 뒤에서 떨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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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4편: 기술은 어떻게 혐오를 멈추는가? - 디지털 늑대 무리: 글자 뒤의 심장을 찾는 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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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4:36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4:36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물리적 존재감이 만드는 '강제된 다정함'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거리 안에서 기꺼이 사랑의 영역에 머문다. 그러나 이 사랑의 영역은 '강제된 다정함'으로 유지된다. 길에서 부딪히면 사과하고, 유모차 앞에서 담배를 숨기는 행위는 고결한 인류애보다는 '물리적 존재감'이 주는 사회적 약속에 의한 억제력에 가깝다. 눈앞의 생명체와 시선을 맞추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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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3편: 다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 다정한 강제 : 혐오의 늪을 건너는 인류를 위한 마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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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4:05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4:05Z</published>
    <summary type="html">​1. 혐오라는 안락한 감옥인류의 혐오는 생존을 위해 발달한 '차갑고 빠른 지름길'이다. 낯선 존재를 악으로 규정하면 뇌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우리는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머문다. 지금의 알고리즘은 이 게으른 본능에 기생한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을 더 미워하게 만들 정보만을 쏟아내며, 우리를 '확증편향의 감옥'에 가두는 수동적인 강제를 집행하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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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2편: 왜 우리는 멈춰 섰는가? - 혐오와 저출산, 그리고 확장된 연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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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3:46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3:46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번식의 계산기: &amp;lsquo;포기&amp;rsquo;가 아닌, 생존을 위한 최선의 &amp;lsquo;최적화&amp;rsquo; 일지 모른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자손을 남기는 일은 존재의 목적과도 같다. 그러나 오늘날의 저출산 현상을 단순히 &amp;lsquo;개인의 이기심&amp;rsquo;이나 &amp;lsquo;경제적 문제&amp;rsquo;로만 정의하기엔 무언가 본질적인 부분이 빠져 있는 듯하다. 인류는 본래 소수의 자녀에게 자원을 집중하여 생존율을 높이는 전략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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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늑대와 다정함 1편: 인간은 왜 협력하는가? - 늑대의 길과 인류의 지도: 힘의 논리를 넘어선 연대의 연대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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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2T19:13:20Z</updated>
    <published>2026-01-22T19:13:20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당연함에 던지는 질문: 왜 남성심리학은 들리지 않는가?우리는 흔히 아동, 여성, 노인 심리학은 익숙하게 여기면서도 '남성심리학'이라는 단어는 낯설게 느낀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이 '보편적 인간'의 기본값(Default)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저에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설계한 거대한 편향이 숨어 있다. 의학, 법학, 공학에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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