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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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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작은 용기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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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4-03T08:41:1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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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난 괜찮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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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6T02:38:10Z</updated>
    <published>2026-03-16T02:38:10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4년 8월 일본에서 귀국 후 일본어 강사, 무역 회사, 관광 공사, 면세점 매니저, 쉼 없이 달려오던 &amp;nbsp;직장 생활의 마침표를 드디어 찍었다. 마지막 직장이었던 면세점을 희망퇴직을 하고, 수고한 나에게 주는 보상 휴가로 &amp;nbsp;&amp;nbsp;퇴직금으로 엄마와 부르나이 공화국을 다녀왔다. &amp;nbsp;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amp;nbsp;하는지 &amp;nbsp;고민이 많았다. 도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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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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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6T02:31:28Z</updated>
    <published>2026-03-16T02:31:28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3년 1월 관광산업이 직격타를 맞은 코로나가 끝나고 단축 근무에서 정상 근무가 시작되었다. 면세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여전히 입점객은 없고, 환율은 점점 높아져 매출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1인 근무체제가 이어지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본사에서는 매출 압박과 인원 감축을 해야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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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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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3T07:32:43Z</updated>
    <published>2026-03-03T07:32:43Z</published>
    <summary type="html">2023년 1월 관광산업이 직격타를 맞은 코로나가 끝나고 단축 근무에서 정상 근무가 시작되었다. 면세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여전히 입점객은 없고, 환율은 점점 높아져 매출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1인 근무체제가 이어지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본사에서는 매출 압박과 인원 감축을 해야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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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구 대가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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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03T07:29:35Z</updated>
    <published>2026-03-03T07:29:35Z</published>
    <summary type="html">1947년 전라도 광주 부잣집에 첫 손녀가 태어났다. 아들만 셋을 낳으신 할머니. 스무 살 큰 아들에게 꽃다운 열일곱 살 아내가 생겼다. 그다음 해에 첫 손녀를 맞이했다. 남존여비사상이 심하던 그 시절에 딸이 없던 할머니에게는 손녀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였다. 스무 살 아들은 딸을 낳고 7년 동안 군대 생활을 했다. 열여덟 살 며느리와 손녀는 남편과 아빠 없</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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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웰컴 투 코리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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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8T11:42:16Z</updated>
    <published>2026-01-18T11:40:11Z</published>
    <summary type="html">2008년 9월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amp;nbsp;앞으로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막막함을 위로하듯 관광비자 3개월까지 받고 퇴사 후 &amp;nbsp;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세심하게 &amp;nbsp;눈과 마음으로 일본을 담고 또 담았다. 일본 유학 때의 설렘과 기대와는 달리 내 나라로 돌아오는 길은 &amp;nbsp;참 무겁고 막연하기만 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출발 전에 집에 연락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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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 특별한 이별 문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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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8T11:30:29Z</updated>
    <published>2026-01-18T11:30:29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의 역마살 덕분에 글로벌 인재로 한창 성장하던 그때, 안도 산업 VIP 거래처였던 대만 유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의 집에 불운이 닥쳐왔다. 친구 어머니가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일본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녀도 병명을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황이 6개월 이상 지속되었다. 난 나고야에서 근무하면서 친구네 &amp;nbsp;집안의 소식을 접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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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1. 차이나는 차이나 비즈니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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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2T09:15:09Z</updated>
    <published>2025-12-02T09:15: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본은 아무리 더워도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상대방을 맞이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한국 거래처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정도 친밀하다고 느끼는 시점이 오면 복장을 자유롭게 입고 비즈니스를 진행하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의 중간역할을 하며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세심하게 거래처에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가 &amp;nbsp;다름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거래처는 &amp;nbsp;</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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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 한국인 참견 시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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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12T05:30:12Z</updated>
    <published>2025-11-12T05:3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본 생활 6년 차. 우여곡절 속에 일본 대학에서 졸업을 하고 학생 비자가 2주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 친구 아버지의 소개로 나고야의 상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대만에서 귀국하자마자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난 또다시 동경에서 나고야로 홀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일본은 출퇴근 거리가 편도 2시간 이상이 되면 회사에서 교통비 및 기숙사를 지급해야 하는 근로기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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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 예술 사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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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05T00:01:35Z</updated>
    <published>2025-11-05T00:01: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본 대학에서 엔화로 15만 엔 정도 생활비와 학비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교환 유학생 들은 부산대, 경기대학교 20대 초반의 &amp;nbsp;중문과 학생들로 &amp;nbsp;능숙하게 중국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이었다. 일본에서 파견된 나에게 관심은 많은 듯 보였으나, 난 일본 대학에서 파견된 겉모습마저 일본인 같은 얼굴로 일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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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8. 외국인 노래자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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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0-26T13:52:03Z</updated>
    <published>2025-10-26T13:52:03Z</published>
    <summary type="html">폭우 속에서 시작된 나의 두 번째 유학생활은 &amp;nbsp;도전의 연속이었다. 대만에 온 지 &amp;nbsp;한 달쯤 되었을 무렵 학교에서는 &amp;nbsp;축제 시즌이었다. 교내에 붙어 있는 &amp;lsquo;외국인 노래자랑&amp;rsquo; 포스터였다. 나와 같이 온 일본인 친구가 도전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조건이 중국어로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난 말도 안 된다며 거절했었다. 우리의 중국어 실력이란 인사말 정도와 겨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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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7. 말하는 대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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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0-26T14:04:52Z</updated>
    <published>2025-10-13T07:30:28Z</published>
    <summary type="html">2005년 2월 첫째 주 어느 날. 일본의 겨울은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두 번째 유학을 떠나던 그날은 영하의 날씨가 아닌데도 체감 온도는 영하권이었다. 다시 한번 새로운 시작을 &amp;nbsp;하는 나는 설렘보다 &amp;nbsp;낯선 환경에 &amp;nbsp;적응해야 하는 두려움이 컸다. 함께 출국하기로 한 만 18세 일본인 친구도 긴장한 탓인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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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6. 두 번째 유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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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6T06:46:53Z</updated>
    <published>2025-09-16T06:46:53Z</published>
    <summary type="html">2년 만에 어학당을 졸업하고 2002년 국제비즈니스 학과로 일본 대학에 입학했다. &amp;nbsp;아르바이트와 대학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수면 부족과 배고픔, 고됨이 일상이 되었다. 한국은 중국어 붐으로 한국에 귀국해서 직장 생활이라도 하려면 중국어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일본 대학은 '제미'라고 해서 복수 전공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amp;nbsp;난 복수 전공으로 중</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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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5. 일본 속 Thailand를 만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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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3T10:02:02Z</updated>
    <published>2025-09-03T10:02:0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학생 비자로 아르바이트 조건은 1일 4시간, 주 28시간만 가능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쉽게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지만, 난 조금은 더디더라도 일본인 운영 하는 곳만 찾았다. 기무라 타쿠야 선생님 덕분에 2개월 반 만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amp;lsquo;ERAWAN&amp;rsquo; 일본땅에서 첫발을 내딘 곳이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태국요릿집. &amp;lsquo;에라완&amp;rsquo; 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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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4. 기무라타쿠야 선생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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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25T06:36:27Z</updated>
    <published>2025-08-25T06:36:27Z</published>
    <summary type="html">3개월의 여유 생활비를 가지고 시작한 유학 생활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곳은 온통 일본어로 가득한데 한국에서 1년간 배운 일본어로는 발음도 다르고, 단어 부족으로 현지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의기소침해져서 그나마 알던 단어까지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꿈에 부풀어 오고 싶어 했던 곳인데 답답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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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3. 나는 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는 걸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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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4T03:31:53Z</updated>
    <published>2025-08-14T03:31: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출국하기 3일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극한 배신감으로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지내셨다. 어차피 떠날 아이 마음이라도 편하게 보내주자던 엄마의 무던한 설득 끝에 아버지는 절대로 막내딸에게 놓고 싶지 않던 마음을 극적으로 내려놓으셨다. 99년 4월 첫째 주 어느 날 드디어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그날이 왔다. 공부하러 떠나는 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던 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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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2. 터닝포인트 &amp;lsquo;이십 춘기&amp;rsqu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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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4T03:30:49Z</updated>
    <published>2025-08-14T03:30:49Z</published>
    <summary type="html">보수적인 집안의 답답함으로 갓 20살이 되던 해 나는 유학을 가고 싶었다. 공부에는 흥미도 없었고 막연하게 해외에서 살고 싶어서 어떻게 한국을 벗어날 수 있을까 &amp;nbsp;궁리했다. 고교시절 배짱 좋게 일본어학원을 등록하여 새벽반을 다녔던 아이가 학교 공부는 잘할 리가 없지 않은가. 4년제 대학은 보란 듯이 불합격. 부모님은 재수를 권하셨다. 난 잘됐다 싶어 재수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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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1.&amp;lsquo;아프면 바다를 건너야 돼요&amp;rsqu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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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4T03:29:36Z</updated>
    <published>2025-08-14T03:28:16Z</published>
    <summary type="html">01.&amp;lsquo;아프면 바다를 건너야 돼요&amp;rsquo; 우리 집은 삼 남매와 &amp;nbsp;수제화를 만드는 부모님. 오래된 단독주택을 앞뒤 반으로 나눠서 수제화 공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새벽부터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셨고, 집안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두 분 모두 장남과 장녀로 각각 동생들이 여섯일곱 명이 있었다. 수제화를 만들던 아빠는 전문적인 기술을 동생들에게 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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