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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묭작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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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myong123</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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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워커홀릭에서 육아홀릭으로 전향한 삶을 살아갑니다.비혼주의자에서 가족의 행복을 알기까지의 발자취를 써내려갑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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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4-10T13:55:1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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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매육아의 준비, 둘째를 결심하다. - 첫 아들이 복돋아준 용기와 자신감으로 나의 마지막 사랑을 준비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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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1T11:13:15Z</updated>
    <published>2025-06-01T09:57: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첫째를 낳고 벌써 21개월이 지났다.  둘째를 품은지도 37주을 넘어서 언제 나와도 괜찮은 몸무게가 되었다. 첫째때는 일을 하다보니 37주에 2.65kg으로 간신히 미숙아를 넘겨 나오다 보니 둘째는 그보다는 조금 더 키워서 출산하고 싶었다.   첫째는 남아로 정기검진때는 머리만 아주 조금 크다고 했지만 낳고 보니 내가 보기에는 너무 작았다. 37주를 간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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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홀로떠난 유학길에서, 결혼결심 - 대공황속에서 느끼게 된 외로움은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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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20T07:08:28Z</updated>
    <published>2025-04-20T03:00:02Z</published>
    <summary type="html">때는 2019년도 가을이었다.  오래 일하던 가게를 그만두고 다른 가게로 옮겼지만  역시나 번아웃은 그대로 였고 번아웃을 계기로  망설이기만 하던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인건비 인상으로  사실 시급이 높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못하던 월급쟁이로 있던 이유는  경력을 위해 감안하던 부분이지만 목표가 달라진 지금은 경력보다는 돈이 더 먼저였기에 망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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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 오답노트 - 불행했던 가정사도 인생의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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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1-24T00:53:19Z</updated>
    <published>2024-11-23T21:21:16Z</published>
    <summary type="html">20살에 서울살이에 실패하고 내려와 알바를 전전하다가 역시 제과제빵이 가장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된다. 인연이 있던 지방의 대형 제과점에 취직하게 된다. 그때 당시의 월급 146만 원은 한 달에 26일을 근무하고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 시급에 비해 나쁘진 않았다. 월세와 생활비가 들지 않는 본가에서 지내며 일했기에 146만 원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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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시절에는 없던 단어, 비혼주의 - 알지 못하는 행복보다 보장된 평화를 원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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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1-17T05:27:21Z</updated>
    <published>2024-11-17T01:05:15Z</published>
    <summary type="html">가부장적이고 명령조의 아빠와  마음에 안 들면 아이에게 아빠의 뒷담을 하는 엄마.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부모님의 성격과 행동이다.  물론 매일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니 좋은 말과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엄빠, 아빠에게 전화가 오면 짜증 났던걸 보면 대화다운 대화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은 주에 1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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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등학교 때의 목표, 홀로서기 - 홀로서기라고 쓰고 탈출이라고 속으로 돼 내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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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1-10T04:25:05Z</updated>
    <published>2024-11-09T21:29:45Z</published>
    <summary type="html">중학교 2학년, 때는 2010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정부는 고졸취업을 선전하고 대학의 의미가 불투명해져 가던 자본주의에 걸맞은 시대였다. 중학교졸업 후 일을 해오던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때부터 4살 터울의 언니에게 줄기차게 말해왔다.  &amp;quot;우리 집은 대학 보내줄 돈도 없고, 대학 다 그거 쓸모없어 전문기술을 배워서 취업해라.&amp;quot;  고졸이던 엄마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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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만드는 가족이야기 - 프롤로그. 독립을 바라던 외로운 아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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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1-07T21:57:51Z</updated>
    <published>2024-11-07T21:57: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중소도시의 작은 동네에서 10여 년을 살다 가족을 피해 독립을 위해 산골 기숙학교로 입학을 할 정도로 집이 싫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19살에 첫 현장실습을 서울로 가면서 그 집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생활고로 그 싫고 싫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음 독립엔 꼭 성공해야지!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틴 7년,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gJeH%2Fimage%2F6eoh-PZpHOjN_7PGEE2MmXJ9YSY"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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