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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Zoroaster 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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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철학서 읽는 걸 좋아하는 아마추어 독자입니다. 지금은 질 들뢰즈를 주로 읽고 있어요.느리게 읽고, 멋대로 생각하고, 당위적 귀결이 없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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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05-30T01:26:2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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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긋지긋한 가난의 느낌 - 들뢰즈-과타리, 스피노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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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0-02T07:37:33Z</updated>
    <published>2025-10-02T06:57:50Z</published>
    <summary type="html">욕망은 필요들에 기대고 있지 않으며, 역으로 필요들이 욕망에서 파생된다. 필요들은 욕망이 생산하는 현실계 속에 있는 역-생산물들이다. 결핍은 욕망의 역-결과이며, 그것은 자연적&amp;middot;사회적 현실계 속에 공탁되고 설비되고 액포(液胞)화된다. 욕망은 항상 대상적 실존의[이라는] 조건들 가까이에 있다. 욕망은 이 조건들에 합류하고 또 뒤따르며, 이 조건들보다 오래가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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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까마귀라 불리는 소년이 넘어선 것 - 해변의 카프카, 안티 오이디푸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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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2T02:41:25Z</updated>
    <published>2025-09-22T02:2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그대로 있었다면 어차피 군인으로 외지에 끌려갔을 거야&amp;quot; 하고 건장한 병사가 말한다. &amp;quot;그리고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했겠지. 우리는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았어. 나는 원래 농사꾼이고 이 친구는 대학을 갓 졸업했지. 둘 다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고 죽게 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거든.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야. 넌 어때? 사람을 죽이거나 또는 죽임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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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격자 - 해변의 카프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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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0T04:07:32Z</updated>
    <published>2025-09-19T23:35:28Z</published>
    <summary type="html">운동을 갔다가, 아주 진저리나게 매너 없는 한 인간을 보았다. 돌아와서 아내에게든, 아니면 인터넷 공간에라도 그의 실상을 보고하지 않으면 분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무례와 뻔뻔스러운 몰상식으로 단련된 그 개체와 같은 류의 기호로 불리고 싶지 조차 않은 기분이 들어 나는, 그녀를 쓰레기라 분별해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잠 자기 직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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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쇼츠 중독  - 빅터 프랭클, 무라카미 하루키, 소크라테스, 아시모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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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8T08:42:08Z</updated>
    <published>2025-09-17T06:47:48Z</published>
    <summary type="html">서울대 철학과 이석재 교수가 소개한 철학자들이 묻는 다섯가지 물음 중 철학사와 관련된 마지막 것을 제외한 네 가지. 정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존재론),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인식론), 좋은 논증은 어떤 것인가?(논리론(학)), 좋은 것은 무엇인가?(윤리론(학)).이 중 마지막 물음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다른 층위의 물음들로 파생된다. 가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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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림자 - 무라카미 하루키, 들뢰즈, 스피노자, Juve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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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6T09:08:56Z</updated>
    <published>2025-09-16T06:38:55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림자는 대지에 깃든다. 즉 내가 태양 아래서 대지를 딛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amp;lt;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amp;gt;에서 벽 안의 도시로 들어가려면 그림자를 버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란 어떤 관념의 세계일 것이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책 속의 온갖 기호와 관념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관념들을 초인적인 속도로 흡수하고 그 안에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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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퍼센트의 마음 - 무라카미 하루키, &amp;lt;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amp;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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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6T00:54:18Z</updated>
    <published>2025-09-15T08:39:18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식의 자유? 헤르만 헤세 식으로 온전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 스피노자 식으로 지복? 이 작품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것을 &amp;ldquo;백퍼센트의 마음을 회복하기&amp;rdquo;라고 부르기로 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 방법은 주인공인 &amp;lsquo;나&amp;rsquo;와 &amp;lsquo;옐로 서브마린 소년&amp;rsquo;이라는 두 인물의 교감과 선택의 과정 가운데 두 가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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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맨정신으로 살려 한 잘못</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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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1T09:05:09Z</updated>
    <published>2025-09-01T03:18:42Z</published>
    <summary type="html">확고부동의 진리가 없다는 철학을 그렇게 읽으면서도, 아니 그 이전부터 스스로 유연함이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하면서도, 대체 왜 마치 불변의 진리가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진리를 위반할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소심하게 살아왔는가?철학 학습의 종착지(구간 안에서의 무한한 라는 왕복달리기를 각오한 채)라 여겨온 들뢰즈가 말하는 것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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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피노자에게 반하다 - 철학TV 김양현 교수 강의를 듣는 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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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21T06:03:07Z</updated>
    <published>2025-08-21T03:3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필연과 자유외부로부터의 개입이 없는 한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우주를 아우르는 모든 존재들의 &amp;lsquo;필연적인&amp;rsquo; 본성이다. 스피노자는 그런 외부의 개입, 영향으로부터 자기 보존의 노력이 침해받지 않는 상태를 자유라고 규정하는 듯 하다. 그리고 정동, 감정, 아펙투스는 외부의 어떤 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 남기는 것이다. 영향과 감정이 어떤 관련이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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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욕망의 명예회복 - 시나페홀로-철학하다(유튜브)를 보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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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9T07:08:45Z</updated>
    <published>2025-08-19T04:53: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스피노자가 말하는 욕망, 즉 코나투스는 존재가 자신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왠간한 깊이에서는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데카르트에게 사유가 존재의 보증이었다면, 스피노자에겐 이 욕망, 즉 자기 보존의 지향 자체가 존재를 보증합니다. &amp;lsquo;나는 존재하고자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amp;rsquo;가 되겠죠.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좀 더 상식적인 듯 합니다. 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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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격의 거인 4: 존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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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8T03:14:57Z</updated>
    <published>2025-08-18T03:14:57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영토적 배치물이 이 배치물을 탈영토화하는 운동에 휩싸일 때마다 반드시 하나의 기계에 시동이 걸린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제시하고 싶어하는 기계와 배치물의 차이이다. 기계란 탈영토화 과정에 있는 배치물에 삽입되어 배치의 변화와 변이를 그려내는 첨점들의 집합이다. 기계론적(mecanique) 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효과는 언제나 기계적(machinique)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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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구냐, 나? - 들뢰즈 시네마,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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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4T06:34:49Z</updated>
    <published>2025-08-14T01:56:55Z</published>
    <summary type="html">베르그송이미지는 지각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실재이다. 그것은 형상/질료, 이데아/모상에서 후자를 차지하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진상 그 자체를 말한다. 실재는 우리의 지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받아들였던, 받아들일 모습과 다르지 않은 정태와 동태로 존재한다. 미완인 것은 물질, 이미지가 아니라 항상 인간의 지각 자체일 뿐이다. 들뢰즈대표적으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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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격의 거인 3: 시간-이미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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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3T08:50:50Z</updated>
    <published>2025-08-13T08:47:50Z</published>
    <summary type="html">목마름을 느낀다 - 냉장고를 연다 - 빨간 캔을 발견한다 - 갈증이 증폭된다 - 따서 마신다 - 갈증이 풀린다.현재들의 행위와 공간의 선형적 연쇄. 그 속에 시간이 있는가?목마름을 느낀다. 살아오면서의 경험상 냉장고 안에는 마실 것이 있었다.과거의 기억이 나타나 냉장고를 감싼다. 빨간 캔을 발견한다. 기억이 빨간 캔을 감싸고 그 안의 내용물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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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부함에 대한 판결문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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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3T07:01:16Z</updated>
    <published>2025-08-13T05:11:42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돌프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그는 붉은 포도주 한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을 마셨다. 그는 그에게 성서를 읽어주겠다고 제안한 개신교 목사 윌리엄 헐 목사의 도움을 거절했다. 그는 두 시간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amp;lsquo;낭비할 시간&amp;rsquo;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감방에서 형장에 이르는 50야드를 조용히 그리고 꼿꼿이 걸어갔다. 간수들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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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혼에 대한 가설 2 - 베르그송, 스피노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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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12T05:09:24Z</updated>
    <published>2025-08-12T02:05: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기 동일성.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다는 인식 혹은  그 같음 자체를 말한다. 자기 동일성을 가질 수 있는 조건에 대한 탐구가 기억에서 출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베르그송에 따르면,기억은 반복을 통해 신체나 뇌회로에 저장되는 습관기억과 상관 연상 등 유사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기억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어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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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시무시한 평화 - 천개의 고원을 검색하면 대치동 학원 이름이 뜨니, 국평오는 개탄스런 현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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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8T03:04:20Z</updated>
    <published>2025-08-08T03:04:20Z</published>
    <summary type="html">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로부터 소위 &amp;ldquo;재출현&amp;rdquo;하는 이 전 세계적 전쟁 기계는 두 개의 형태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먼저 파시즘. 이것은 전쟁을 전쟁 자체 외에는 다른 목적을 갖지 않은 무제한적 운동으로 만들어버렸다. &amp;hellip; 두번째로는 파시즘 이후의 형태. 이것은 &amp;lt;공포&amp;gt;의 평화 또는 &amp;lt;생존&amp;gt;의 평화로서, 평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삼는 전쟁 기계이다. 808  의문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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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격의 거인 2: 자유의 노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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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7T22:50:56Z</updated>
    <published>2025-08-07T22:49:53Z</published>
    <summary type="html">자유에 대한 열망은 어디에서 왔는가?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벽그것은 시조 유미르가 이천년간 모래와 물로 하나하나 쌓아올린 견고한 거인들의 벽시조 유미르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원한,타자에 대한 맹종적 사랑,그리고 예속적 삶으로부터 오는 악마적 고통이 결합된 고대의 존재에렌은 말한다.나는 자유다너희들도 자유다그러나 지크가 아닌 에렌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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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느 텍스트 소비자의 모난 취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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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7T09:05:32Z</updated>
    <published>2025-08-07T08:16:10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t;hate&amp;gt;1. 토대 없는 단언(unfounded assertion)을 뼈대로 삼는 글- &amp;lsquo;~~~하라, 하지 말라, 할 필요 없다, 해야만 한다.&amp;rsquo; 오잉? 누구신데요?2. 일반화에 호소하는 표현이 많은 글- &amp;lsquo;한국인은 유독 ~&amp;rsquo;, &amp;lsquo;인간은 이기적이다.&amp;rsquo;, &amp;lsquo;인간은 원래 선하다&amp;rsquo;. 그 자체로는 공기같을 뿐인 말과 말들...을 클릭해서 버린 내 시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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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격의 거인 1: 증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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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7T01:28:12Z</updated>
    <published>2025-08-07T01:28:12Z</published>
    <summary type="html">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벽그 너머에는 내가 꿈꾸던 자유가 아닌 분주하게 살아가는 타인들이 있었다. 에렌은 자신들을 지키려는 마음 이전에 내 자유의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있던 그들을 모조리 없애고 싶어했다. 내 안에서 만들어내는 밑도끝도 없는 이 증오는한 맺힌 시조 유미르가 이천년간 물과 모래로 제조해 온 더 깊고 오래되고 거대한 증오와 접속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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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의 좌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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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6T02:13:39Z</updated>
    <published>2025-08-06T02:13:39Z</published>
    <summary type="html">병렬 독서를 하는 중이다. 근무, 휴게 시간 전후로 사무실에서 짬이 날 때 플라톤의 &amp;lt;대화&amp;gt;를 읽고, 자기전이나 주말에 들뢰즈-가타리의 &amp;lt;천개의 고원&amp;gt;을 읽는 식이다. 난독증 급의 느린 속도로 읽는 독서 고자인 처지이지만, 천페이지 짜리의 새빨간 벽돌책을 사무실까지 들고 다니기 버거워 선택한 절충안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읽으니 2,500년의 시간 간격</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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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목민의 호불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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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06T00:33:36Z</updated>
    <published>2025-08-05T06:33:28Z</published>
    <summary type="html">1. 영토  영토라는 건 면적으로 표현된다. 특정 좌표를 포함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0,0) 주변으로 100만큼이 내 영토였는데, 이러저러해서 (0,0)으로부터 떠나왔지만 내 영토의 면적이 110으로 늘었다면 10만큼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영토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이다. 코나투스. 그런데 영토를 보존한다는 것의 의미는 좌표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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