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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기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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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두메! 땅의 바램을 하늘로 전하고 하늘의 뜻을 땅에 심는 곳. 제비꽃 만발한 밭이랑에서 나의 바램을 살피고 샛노란 국화꽃 옆에서 하늘의 뜻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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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1-17T07:10:4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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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오래된 거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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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8T22:00:52Z</updated>
    <published>2026-01-18T22:00:52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의 애초 문제는 접근 방식이었다. 접근 태도이어야 했다. 우리는 거목 앞에 서면 먼저 안도한다. 이 나무의 종류는 무엇인지, 수령은 얼마나 되었는지, 보호수인지 아닌지. 이러한 지식은 대상을 이해하게 해 주지만, 동시에 사유를 멈추게 한다. 더군다나 거목 앞에 세워진 친절한 안내문을 읽는 것으로 생각은 끊겼다. 안다는 감각은 곧 판정의 완료로 이어지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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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삶의 리더 - 함양의 발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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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9T00:00:33Z</updated>
    <published>2026-01-09T00:00:33Z</published>
    <summary type="html">99.9라는 수치는 순도를 설명한다. 금속&amp;middot;재료의 성분, 화학&amp;middot;의약&amp;middot;실험에 사용되는 물질, 산업&amp;middot;공정의 신뢰성, 환경&amp;middot;에너지 분야의 기준 등에 적용된다. 우리가 평소에는 떠올리지 않는 분야이기는 하다. 이 중에서 순금의 함량 99.9는 아주 익숙한 수치이다. 우리에게 금은 성분보다는 함량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함량은 수렵&amp;middot;채집 시기의 결핍에서 농경을 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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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자성어 이야기 - 개미,&amp;nbsp;토끼,&amp;nbsp;까마귀,....&amp;nbsp;한자 성어 속에 등장하는 인간 아닌 존재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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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8T23:00:5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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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지혜란 무엇인가? 도대체 지혜는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 지혜를 얻고, 찾는다는 말을 좋아해서 열심히 책을 읽는다. 어떤 사람들은 한 권을 반복적으로 읽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반복하면서 지혜를 얻으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함으로써 지혜를 얻으려고 한다. 도대체 지혜가 무엇이길래 지혜를 얻고 찾는 것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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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마흔에 흔들리는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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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6T11:44:49Z</updated>
    <published>2025-12-26T11:44:49Z</published>
    <summary type="html">'늦서리를 견디며 간신히 가지에 매달려 있는 내삶을 가을바람이 위협하기 전에 겨울바람이 불어와서 파멸시키지 전에 가지에 매달여 있을 때 변화해야 한다.'  우리에게 &amp;lsquo;사기(史記)&amp;rsquo;로 더 알려진 &amp;lsquo;태사공서(太史公書)&amp;rsquo;를 남긴 &amp;lsquo;사마천&amp;rsquo;의 인생은 아주 극적이었다. 아마도 정치적인 이유였겠지만, 대를 이은 집안 임무인 황제의 순례기를 남기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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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함량(含量)에서 함양(涵養)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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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4T23:00:3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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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우리의 손끝에는 언제나 &amp;lsquo;무엇&amp;rsquo;이 묻어있다. 그리고 내몸에는 언제나 &amp;lsquo;어떤&amp;rsquo;이 새겨지고 있다. 모두가 &amp;lsquo;무엇&amp;rsquo;으로 목표를 정하고 바쁘게 두리번거린다. 그러면서 &amp;lsquo;어떤&amp;rsquo;이 내몸에 어떻게 남는지는 관심이 덜하다. 나폴레옹의 &amp;lsquo;프랑스어에는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amp;rsquo;는 말이 우리에게는 어째서 &amp;lsquo;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amp;rsquo;는 말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번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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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내삶에 묻어있는 함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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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3T22:13:05Z</updated>
    <published>2025-12-23T22:13:05Z</published>
    <summary type="html">함양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함양이라는 말은 종종 멀게 느껴진다. 어딘가 고전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수련이나 인격의 문제가 일어나면 슬며시 고개를 내밀지만 낯설다. 그래서 함양을 말하려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윤리와 도덕, 바람직함과 올바름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된다. 오히려 그것들이 마치 친숙한 이웃처럼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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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삶의 도구를 보는 시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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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1T11:19:13Z</updated>
    <published>2025-12-21T11:19:13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상에서 작은 관심만으로도 자신의 태도나 행동의 흐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도구들이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도구란, 삶의 흐름을 인식하고 조정하게 만드는 사유의 매개다. 도구의 선택에 획일화된 기준은 없다. 도구의 의미를 부여하는 획일화된 기준도 없다. 기준이란 단어에는 함정이 있다. 어떤 선택이든 책임은 따르게 마련이다. 설사 튀어 오르거나 자유로이 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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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함량(含量)과 함양(涵養)</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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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0T07:13:44Z</updated>
    <published>2025-12-20T07:13:44Z</published>
    <summary type="html">물리적 함량(含量)이 언제부터 사람의 관심사가 되었는가? 수렵&amp;middot;채집 사회에서 사람의 관심사는 거의 전적으로 존속에 놓여 있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오늘,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 오늘, 이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가? 에 집중되었다. 오로지 생존이라는 명제 앞에서 &amp;lsquo;얼마나 들어 있는가?&amp;rsquo;라는 질문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결과는 언제나 있음과 없음, 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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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직업에서 얻는 함량과 영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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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6T08:08:30Z</updated>
    <published>2025-12-16T08:08: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직업에서 보이는 능력 노동과 관련된 많은 논쟁의 해박한 이해가 필요한 시대는 아니다. 노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도 자신의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며 사라져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이러한 평가가 가능해지게 된 것은 결국 교육 기회의 확대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어쨌든 노동과 관련된 논쟁의 대부분을 내려놓게 되면 남게 되는 것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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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삶의 리더 - 삶이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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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14T21:00:12Z</updated>
    <published>2025-12-14T21: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삶이란? 삶의 무게: 독립 선언과 능동적 책임 아주 오래전 인간은 자신의 삶을 하늘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독립선언을 했다. 이 결심의 이면에는 선택과 책임도 감내하겠다는 무게가 실린다. 이때부터 인류는 자신의 선택과 책임으로 역사와 흐르고 있다. 역사는 인류 삶을 압축시킨 기록이다. 우리의 삶은 역사가 압축파일로 우리 앞에 던져놓은 스팸메일일지도 모른다. 삭</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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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삶의 리더 - 삶의 리더가되는 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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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8T22:00:36Z</updated>
    <published>2025-12-08T22:00:36Z</published>
    <summary type="html">고독한 존재에서 나오는 시선 자기가 고독한 존재임을 인식하며 자신은 자기실현 가능성의 총합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시선을 얻는다. 이러한 변화는 각성한 본인도 그를 대하는 사람들도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이 오래되어 변하지 않기를 고집하는 습관, 사고방식, 관습, 문화에 젖어 있기 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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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천륜(天倫): 서로가 인식해야 할 책임의 무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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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8T21:00:15Z</updated>
    <published>2025-12-08T21:00:15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회성 곤충들에 대한 풍부한 연구자료와 분석에 따르면 생물학적으로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우위를 가지는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효가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강요되는 듯한 현실은 왠지 석연찮은 뭔가 감춰진 의도가 있어 보인다. 서로가 존재를 인정하는 전제에서라면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두 행위의 무게는 같지 않을까? 부모의 입장과 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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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진&amp;middot;선&amp;middot;미: 존재를 위한 세 갈래 흐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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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8T13:19:52Z</updated>
    <published>2025-12-08T13:19: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원효대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도 그 일을 겪은 때처럼 발길을 돌렸을까? 참으로 생뚱한 생각을 한다고 느꼈을 때 내 머릿속에는 &amp;lsquo;흐름&amp;rsquo;이라는 거대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펼쳐 드는 책마다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자는 자신의 연령대별 경험을 흐름으로 설명했다. 노자는 너무도 쉽게 물의 성질을 이용했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으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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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자성어 이야기 - 역린과 괄목상대, 그리고&amp;nbsp;&amp;lsquo;나&amp;rsquo; 다움의 흐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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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7T21:00:22Z</updated>
    <published>2025-12-07T21:00:22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squo;나&amp;rsquo; 다움이라는 대화에 매번 등장하는 MBTI는 정지된 목적지가 된 듯하다. 분명히 그것은 발견되어 고정되는 본질이 아니라고 개발한 사람들이 경고하고 있다. 이 검사는 검사할 때마다 미묘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러니 &amp;lsquo;나&amp;rsquo; 다움은 매 순간 흔들림, 채움과 비움으로 생성되는 상태에 가깝다. 진정한 '나다움'은 바로 이 흐름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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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읽는 논어 - 지천명(知天命),&amp;nbsp;내면의 소리를 듣는 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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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7T01:09:20Z</updated>
    <published>2025-12-07T01:09:20Z</published>
    <summary type="html">흔들림 너머에서 비로소 &amp;lsquo;나&amp;rsquo;의 목소리를 감지하는 찰나는 카메라 소리처럼 일순 정적이 흐른다. 사진은 그 순간을 영원히 기록할 것 같지만 기억은 퇴색되고야 만다. 인간이 신에게서 독립하겠다는 선언이 &amp;lsquo;천명&amp;rsquo;이다. 하늘의 노여움을 두려워한 인간은 하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맹세로 하늘(天)을 남겨두었으나 하늘을 지워나가고 있다. 애초에 인간은 하늘에 대한 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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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 아침에 들은 도는 저녁에는 죽여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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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5T11:42:59Z</updated>
    <published>2025-12-05T11:42:59Z</published>
    <summary type="html">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공자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이 표현은 공자의 사상적 흐름에 따라 &amp;lsquo;아침에 도를 들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amp;rsquo;라고 해석해 오고 있다. 아마도 이 해석은 공자가 이 말을 한 후로 변함없는 해석이었을 것이다. 공자의 사상적 흐름에서 질문을 해보자. 이 문장에서 다른 관점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글자는 도(道</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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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다움으로 읽는 논어 - 지천명(知天命): 내면의 앎과 세계의 울림이 교차하는 자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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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9T21:00:09Z</updated>
    <published>2025-11-29T21: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지천명을 다시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하늘을 삶의 상징적 기둥으로 삼았다. 중국에서도, 메소포타미아에서도, 고대 그리스에서도, 하늘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질서의 원천이자 인간사를 규정하는 절대 권력이었다. 농경의 주기, 국가의 흥망, 한 사람의 삶의 길흉까지 모두 하늘의 뜻으로 이해되곤 했다. 이 긴 문화적 흔적 속에서 &amp;ldquo;하늘의 명(命)&amp;rdquo;이라는 말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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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혹(佳惑)한 불혹&amp;nbsp;가혹(苛酷)한&amp;nbsp;마흔 - 불혹(不惑), 존재의 중심을 묻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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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7T13:29:27Z</updated>
    <published>2025-11-27T13:29:27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불혹(不惑).&amp;rdquo; 이 단어는 동양의 고전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말한 인생의 한 시기를 지칭한다. 그가 말한 &amp;lsquo;불혹&amp;rsquo;은 문자 그대로 &amp;lsquo;미혹되지 않는&amp;rsquo; 상태, 즉 &amp;lsquo;흔들리지 않는&amp;rsquo; 상태를 뜻한다. 그는 자신이 마흔 살에 이르러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미혹하거나 혼란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생각이 20~30대의 제자들에게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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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혹(佳惑)한 불혹&amp;nbsp;가혹(苛酷)한&amp;nbsp;마흔 - 나의 불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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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7T12:59:59Z</updated>
    <published>2025-11-27T12:59:59Z</published>
    <summary type="html">불혹-홀씨가 된 날,&amp;nbsp;존재가 깨어나다 오랜 세월 나는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었다.&amp;nbsp;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많은 언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amp;nbsp;그중 어느 것도 &amp;lsquo;나&amp;rsquo;라고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한다.&amp;nbsp;성공, 성취, 꿈, 희망, 목표, 열망 등.&amp;nbsp;삶을 움직이게 해주는 힘이라고 배우고 믿었던 것들은&amp;nbsp;어느 순간부터 나를 짓누르는 무게로 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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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자성어 이야기 -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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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1-27T12:21:20Z</updated>
    <published>2025-11-27T12:21:20Z</published>
    <summary type="html">경전이나 경서들이 어려운 이유는 평소 접하는 일상의 단어들이 아니라는데 있다. 일상의 많은 단어를 하나로 묶으려고 하거나 구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왕조시대의 궁궐 문화나 궁궐 언어들이 서민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못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임금의 변을 &amp;lsquo;매화&amp;rsquo;라고 하였던가? 당시의 논리가 충분히 납득은 되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왠지 탐탁지 않다. 이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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