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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책 읽는 소방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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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책 읽는 소방관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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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3-12-03T23:57:3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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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트럼프 현상과 미국 민주주의의 시험 - 선출된 권위주의, 부정적 당파성, 그리고 공백의 정치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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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1T01:00:12Z</updated>
    <published>2026-04-01T01: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들어가며: 하나의 의심에서 출발하며 미국 민주주의는 지금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와 행동은 세계 최강대국의 지도자에게 기대되는 것과 현저히 다르다. 그는 대통령 문장(紋章)을 자신의 골프장 마커로 사용하고, 자신의 이름을 국가 브랜드처럼 공공 상징물에 투영하려는 시도를 반복해왔다. 2020년에는 라파예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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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디지털 신탁의 시대 - 정확성과 정당성 사이에서 인간은 어떻게 남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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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26T01:00:14Z</updated>
    <published>2026-02-26T01:00: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 사유의 장치를 만들어 왔다. 번개와 역병이 초월적 의지의 징표로 해석되던 시대에 신탁은 단순한 정보 제공 수단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인식론적&amp;middot;정치적 기제였다. 중요한 점은 신탁의 권위가 판단의 정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반증 불가능성과 초월성에 기반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신의 말을 해석함으로써 세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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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용적 제도의 임계점과 인식론적 전환 - 현대 민주주의의 정체와 &amp;lsquo;제2세대 제도 혁명&amp;rsquo;에 관한 고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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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2T01:00:25Z</updated>
    <published>2026-01-12T01:00:25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들어가며: 애쓰모글루 패러다임의 유산과 그 이후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현대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분석 틀을 제시했다. 그들에 따르면 권력이 분산되고 사유재산권과 법치가 보장되는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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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후감 - '무겁고 높은(김기태)'을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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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10T01:00:16Z</updated>
    <published>2025-07-10T01:00: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선다.&amp;nbsp;작은 것이라면 당장 오늘 점심 메뉴부터 고민할 테고 큰 것이라면 장래 진로를 정하는 것,&amp;nbsp;배우자를 정하는 것, 부동산을 사고파는 것 &amp;nbsp;따위도 있겠다.&amp;nbsp;그러나 때로 인생은 나의 선택권이 완전히 배제된 영역에서 오롯이 결정된다.&amp;nbsp;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amp;nbsp;것은 출생 그 자체일 것이다.&amp;nbsp;가령 나는 나의 국적, 부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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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학기술의 발전 속도, 정말 가속화되고 있는가? - 인류의 관측 능력의 확장을 통해 본 과학기술 진보의 궤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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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8T02:05:43Z</updated>
    <published>2025-06-08T01: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들어가며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기술 혁신의 소식들 속에서 과학기술이 전례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우주 탐사, 유전자 편집 등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주관적 인상과는 달리 실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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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머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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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8T02:15:53Z</updated>
    <published>2025-05-08T01:00:21Z</published>
    <summary type="html">아래 글은 내가 몇 년 전,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께 쓴 편지다. 기억을 위해 여기 적어놓는다.   Dear J여사님모친. 아들입니다. 영영 안 올 것 같던 이런 날도, 결국에는 왔군요. 37살, 이제 장가가려 합니다. 37년. 짧지는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전혀 기억나지 않는 갓난쟁이 때부터,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어찌어찌해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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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교육 위상 추락과 경쟁 중심 사회에서의 교육의 한계 - 한국과 미국의 비교를 중심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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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2T01:00:18Z</updated>
    <published>2025-05-02T01:00:18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들어가며공교육은 근대국가 형성기부터 사회 통합, 계층 이동, 시민 양성이라는 중요한 공공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공교육은 점차 보편적 평등보다는 선발과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사례는 각기 다른 역사와 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의 위기라는 공통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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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춘 찬미(讚美)</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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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28T03:08:26Z</updated>
    <published>2025-04-28T02:00:10Z</published>
    <summary type="html">고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amp;nbsp;날씨마저 우중충하던 어느&amp;nbsp;아침,&amp;nbsp;유난히 아이들이 졸았다. 0교시니 야간 자율 학습이니 하는 것들이 당연하던 시절이라 피곤해하는 아이들 마음&amp;nbsp;나라고 모를 리 없고, 나도&amp;nbsp;덩달아&amp;nbsp;지루하여 아이들도 깨울&amp;nbsp;겸&amp;nbsp;이런저런 잡담을 함께 했다.  그때&amp;nbsp;나는 기간제 교사였다.&amp;nbsp;그날따라&amp;nbsp;정규 교사가 되지 못한&amp;nbsp;나의&amp;nbsp;불안한 미래, 같은 일을 영원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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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후감 - '참 괜찮은 태도(박지현 작가)'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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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24T08:15:48Z</updated>
    <published>2025-04-24T07:20:06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러고 보면, 난 어려서부터 냉소적인 아이였다. 밤톨만 한 것이 씹어 뱉듯 톡톡 던지는 바른말이 어른들 눈엔 꽤나 신기하고 즐거웠던 모양이고, 난 그 반응을 칭찬이라 생각하고 즐겼던 것 같다.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며, 냉소적이란 것은 전혀 칭찬이 아니고 그 누구도 즐겁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도 여지까지 그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이만큼 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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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원(祕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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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24T07:42:56Z</updated>
    <published>2025-04-24T02:53:02Z</published>
    <summary type="html">책을 읽다 보면 어떤 문장이 지닌 강력한 힘에 미혹(迷惑)되어 정신이 얼떨떨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 힘을 처음 마주한 것이 아닌, 마치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나는 분명히 이 책을 처음 읽는다. 다시 곰곰이 생각을 되짚어 보면 이 책 아닌 다른 책에서 같은 함의(含意)를 지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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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위스키의 아우라, 그리고 과학의 도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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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24T02:49:02Z</updated>
    <published>2025-04-24T02:49:02Z</published>
    <summary type="html">과학은 언제나 전통의 적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생산 체계가 구축해 놓은 독점적 이익과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며, 효율과 평등을 대의로 내세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왔다. 위스키도 그 흐름 앞에 서 있다. 이 술은 오랫동안 오크통과 시간, 장인의 손길이라는 비가시적 가치를 통해 높은 가격과 희소성을 정당화해 왔지만, 과학은 이제 그 본질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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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죽음을 경계로 한 철학의 분기 - 서양 전통철학, 현대철학, 그리고 불교의 사유 구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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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24T07:20:49Z</updated>
    <published>2025-04-24T02:46:02Z</published>
    <summary type="html">1. 들어가며 철학은 본질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사유의 시도이며, 그 탐구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특히 서양 철학은 고대부터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 종말로 이해하기보다는, 존재와 진리를 향한 경계이자 이행의 지점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철학은 이러한 전제를 재검토하며, 죽음을 통한 초월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한 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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