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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심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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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삶의 체험을 감정으로 쌓고, 그 감정을 사유로 다시 표현해봅니다. &amp;ldquo;겪은 것을 써야 한다&amp;rdquo;는 태도는, 제 글이 조금은 입체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제 작은 소망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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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4-29T07:09:4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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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처했고 그래서 자초되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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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21T14:55:38Z</updated>
    <published>2025-07-21T14:55:38Z</published>
    <summary type="html">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이라는 무대에서 춤을 춘다. 뇌주름 하나하나가 본인의 자리를 어필하듯 꼬이고 엉킨 생각들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 마음까지 쿡쿡 찌른다.   무수한 질문은 알맞은 답을 끌어안지를 못한 채 이성은 물음표만을 띄우고 감정은 느낌표만을 띄운다.   원했던 삶이 무엇인지 망각하여, 최선의 선택이 현재를 자초했다. 그렇게 원하지 않던 삶이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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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만의 종교를 정립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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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04T09:00:16Z</updated>
    <published>2025-07-04T09:00:16Z</published>
    <summary type="html">성경이 진실이라 말했고, 그걸 따져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따져봤다. 그리고 그것이&amp;lsquo;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amp;rsquo;를 진심으로 적용해봤다.  &amp;ldquo;기독교인들은 그 믿음이 삶을 &amp;lsquo;올바르게&amp;rsquo;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amp;rdquo; 나는 &amp;lsquo;믿지 않음&amp;rsquo;이 나를 올바르게 이끌고 있으니까.&amp;rdquo;  &amp;ldquo;결과적으로 우리 둘 다 진심으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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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수의 삶을 따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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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7-02T09:59:03Z</updated>
    <published>2025-07-02T09:00: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했다. 진리를 위해, 자기 방식대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오랜 시간 끝까지 고민해서 내린 결론, 즉 &amp;lsquo;신을 믿지 않기로 한 신념&amp;rsquo;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간다면 그건 결국, 나 역시 내 신념을 지키며 살아낸 삶 아닌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기독교가 말하는 &amp;ldquo;자신의 신념을 지킨 자는 천국, 하나님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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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스칼의 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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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30T12:25:06Z</updated>
    <published>2025-06-30T08:0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dquo;왜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해? 믿어서 나쁠 건 없잖아. 파스칼의 내기처럼 믿는 쪽은 손해가 없어.&amp;rdquo;  파스칼의 내기란 간단히 말해서 신이 존재 유무로 내기를 한다면,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거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천국을 향하는 것이다. 반면, 신의 존재를 믿었는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시간과 돈이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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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절대자에게 호소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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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7T14:07:36Z</updated>
    <published>2025-06-27T10:21: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정말 전지전능한 그대가 존재한다면, 내 뜻을 알아주길 난 존재를 부정한 것이 아닌, 믿지 않음으로써 내 삶에 최선을 다했음을.   과연 믿음으로써 내가 나약해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그대는 좋아했을까. 난 아니라고 판단하고, 추후에 심판 앞에서도 그대의 말씀처럼 정당하게 따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옥이라면, 순수히 받아들이고, 끝</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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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실을 살기위한 발버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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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6T02:47:55Z</updated>
    <published>2025-06-25T09:25:44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독교의 교리로 인해, 믿지 않은 나는 지옥에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옥에서도 나는 &amp;lsquo;열심히 살아낼 것&amp;rsquo;이다. 그게 나의 방식이니까.  그리고&amp;hellip; 지옥에 간다 해도, &amp;lsquo;그곳이 지옥인지조차 모르지 않을까? 천국이 뭔지도 모르는데, 지옥이라고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성경의 지옥 묘사 &amp;ndash; 몸이 찢기고, 눈을 파내고 싶은 고통 &amp;ndash;사실은 우리가 지금 &amp;lsquo;삶&amp;rsquo;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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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squo;찾다&amp;rsquo;의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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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3T13:25:34Z</updated>
    <published>2025-06-23T09:00:12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독교인 친구는 내게 말했다. &amp;ldquo;찾아봐. 따져보고, 스스로 판단해 봐.&amp;rdquo;  성경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amp;ldquo;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amp;rdquo;  (마태복음 7:7)  그래서 나는 정말로 찾아봤다. 읽었고, 고민했고, 물었고, 따져봤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이렇게 판단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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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squo;나&amp;rsquo;를 택한 &amp;lsquo;나&amp;rsquo;의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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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0T12:10:52Z</updated>
    <published>2025-06-20T08:52:1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서 말씀을 살펴봤다. 그 안에서 분명 위로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하지만 &amp;lsquo;다름&amp;rsquo;을 &amp;lsquo;틀림&amp;rsquo;으로 말하는 그 문장 앞에서는 끝내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amp;ldquo;신의 존재는 믿지만, 그 말씀에 반기를 든다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나는 틀린 걸까?&amp;rdquo;  나는 어디에 있든, 나 자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심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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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리와 자유, 다름과 틀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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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8T12:14:10Z</updated>
    <published>2025-06-18T09: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진리란, 사람을 자유롭게 해야지 갇히게 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amp;ldquo;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mp;rdquo; &amp;mdash; 요한복음 8:32  하지만 어떤 경우엔, &amp;lsquo;진리&amp;rsquo;라는 말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틀림을 규정하고, 그 틀림을 통제하는 도구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amp;ldquo;진리를 믿는 순간, 그 반대에 있는 모든 것은 틀렸</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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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흑과 백, 질문과 설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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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7T00:05:34Z</updated>
    <published>2025-06-16T09:0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믿는 자가 존재하려면, 믿지 않는 자도 존재해야 한다. 흰색이 의미를 갖기 위해선, 검정이 먼저 있어야 하듯이.  누군가 믿음의 확신을 말할 수 있다면, 나 같은 의심과 질문의 존재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흑의 자리에서, 묻고 살아간다. 절대자를 믿는다는 건, 결국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양립과 균형 속에서 인류는 신앙과 과학 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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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약함과 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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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3T23:26:56Z</updated>
    <published>2025-06-13T10:00:07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이 있다고 믿는 순간, 나는 그 신 아래에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 말은 결국, 내가 &amp;lsquo;아래에 있는 존재&amp;rsquo;라는 뜻이다. 그걸 인정하는 건 왠지 모르게,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싶었다. 그 어떤 존재도 내 위에 있어선 안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한 구절이 마음을 흔들었다. &amp;ldquo;나는 너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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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믿음과 앎</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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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1T15:27:00Z</updated>
    <published>2025-06-11T10:00:05Z</published>
    <summary type="html">믿음이란 무엇인가? &amp;ldquo;믿음=앎이다.&amp;rdquo;   성악설을 추구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짓고 태어난다고.  그렇다면 나의 의문 &amp;ldquo;앎이 없는 신생아는 모두 지옥에 가는가?&amp;rdquo; &amp;ldquo;기독교적 사상이 들어오기 전 과거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갔는가?&amp;rdquo;  기독교는 말한다.   &amp;ldquo;아니다. 그들은 책임능력이 없기에, 심판의 대상이 아니며,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amp;ldquo;  로마서 2:14~1</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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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유의지에 대한 의문 - 신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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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10T05:31:41Z</updated>
    <published>2025-06-09T10:00:04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께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줬다면, 왜 그 끝을 &amp;lsquo;천국/지옥&amp;rsquo;이라는 이분법으로 정해두는가?  자유롭게 걸어가라면서,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나면 낙오라니? &amp;ldquo;그럴 거면 애초에 자유의지를 주지 말았어야지.&amp;rdquo;  기독교는 말한다.  &amp;ldquo;지옥은 하나님이 보내는 게 아니라, 네가 그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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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믿음의 무거움 - &amp;lsquo;믿지 않음&amp;rsquo;을 믿기 시작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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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07T03:35:57Z</updated>
    <published>2025-06-06T11:00:03Z</published>
    <summary type="html">얼마 전, 건실한 기독교인 친구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말하길, &amp;ldquo;지금 세상이 성경처럼 흘러가고 있어. 이스라엘의 회복,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AI와 666&amp;hellip; 이건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야. 나는 성경이 맞다고 믿는 게 아니라, 맞기 때문에 믿는 거야.&amp;rdquo;  그 말을 듣고 저는 한동안 침묵했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는 조용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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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붉게 살아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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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6T06:43:09Z</updated>
    <published>2025-05-16T06:16:55Z</published>
    <summary type="html">터지면 안 될 듯한 붉은 빛깔이 연이어 퍼져 나온다. 그렇다, 피다.  불안해서였을까. 아니면 건조한 날씨 탓이었을까. 애꿎은 입술만 계속해서 물어뜯는다.  그 붉은 피로 &amp;lsquo;나&amp;rsquo;를 느낀다. 손끝이 무심코 가슴을 쓰다듬는다. &amp;lsquo;나, 살아있구나.&amp;rsquo;  피는 잠시 얼굴을 물들이고, 살아 있다는 착각을 조금 더 진하게 한다.  그리고 아픔이 따라온다. &amp;lsquo;아, 사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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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숭고한 자살 - 정설을 역설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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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6T06:53:00Z</updated>
    <published>2025-05-16T04:51:54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amp;lsquo;자살&amp;rsquo;이라는 행위를 단순히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낸다는 것&amp;mdash;그건 어쩌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이고, 가장 의식적인 결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사소한 것조차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런 삶의 끝에서, 삶 그 자체를 끝내기로 결정하는 건, 역설적으로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는 태도일 수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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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닿을 듯 닿지 않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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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5T03:37:27Z</updated>
    <published>2025-05-14T15:26:34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연이 인연이 되어, 우린 같은 자리에서 마주 보게 되었다.  늘 멀리서, 동경하며 바라만 보았던 사람. 마치 지구가 태양 주변을 맴도는 듯,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  나의 작은 한 걸음이 너에게는 큰 걸음이 될까 봐, 가느다란 줄을 놓칠까 두려워,  자라나는 새싹을 억지로 잘라내고, 밟았다.  그렇게 얇고 가늘게 이어졌던 줄이 어느 순간, 조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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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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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2T14:26:40Z</updated>
    <published>2025-05-12T14:18: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일주일에 세 번, 아니&amp;hellip; 많게는 여덟 번. 잠에 들기가 무서웠다.  베개에 머리를 붙이면 불쾌한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가 귀를 감싼다.   그들은 신나게 춤을 췄지만,  나에겐 그저 담담한 역겨움이었다.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성대에 피가나고 찢어지듯 외쳐도, 닿지 않았다.  나의 소리들은 목</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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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헤드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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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2T14:12:41Z</updated>
    <published>2025-05-12T14:12:41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저 음악이 좋아서 샀는데, 끼는 순간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혼자 있는 거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 귀를 감싸는 반주와 그 안에서 들려오는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들.   그 후 노이즈캔슬링 버튼을 누르면,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이 남들이 npc가 된듯한 기분. 가끔은 일상을 듣지 않는 게 행복할 때도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통제할 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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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항에서 든 생각 - 몇 가지 의문을 띄우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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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3T10:36:59Z</updated>
    <published>2025-05-01T11:39: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여행을 마치고 공항과 비행기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메모장을 켜 생각을 정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 다시 현실로 돌아가려니 약간은 우울한 감정이 올라오는 듯하다. 여행이 행복하고 재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일까. 일상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까.  ​ 2. 즉, 여행 동안 행복했다는 것은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다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QS3%2Fimage%2FUg1nTmVHeePUo8feZbhSn2w2pJo.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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