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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becekonyv</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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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우리의 일상의 사유를 관찰합니다. 삶을 관찰하여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합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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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01T11:45:5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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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는 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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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30T17:21:57Z</updated>
    <published>2025-12-30T17:21:57Z</published>
    <summary type="html">삶이란 흘려보내기엔 그 시간의 틈새가 비어있는 것을 보는 게 아깝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인간의 삶이란 무언가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는 근본적인 상념에서 부터 시작하는게 아닌지. 변연계만 존재하는 파충류가 아니라 대뇌가 존재하여 복잡한 연산을 처리해 나가는 인간의 두뇌로 모래알 마냥 손 안에서 흐트러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하는 인간의 충동이란 때로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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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생에 문제라는게 - 해결되지 않을지라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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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0T16:42:52Z</updated>
    <published>2025-09-20T16:42:52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생에서 문제라는 것들은 정녕 해결되는 것들일까. 아니면 그것에 단지 익숙해져만 가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는 애매모호한 말들로 치부할 수도 있다. 혹은 나아진다거나 변함이 없다는 선언으로 치부 할 수도 있다. 인생의 문제라는 것은 특이점이다. 그것을 무한하게만 돌아갈 뿐, 그것을 거치지 않는다. 무한하게 회전하는 각운동량의 힘을 느끼면서도 문제라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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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력에 대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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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7T10:41:46Z</updated>
    <published>2025-09-17T10:41:4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에게 노력이란 인간적인 것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노력努力이란 한자가 주지하듯이 노예의 측면이 분명 들어있다. 따라서 나에게 노력이란, 어짜피 할 수 밖에 없는 것에 속한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의 행동이다. 나의 노력에는 부정적인 것이 없다. 노력이 부정적일 때는 타인의 입에서 나올 때이다. 누군가 나의 노력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 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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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5.9.1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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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6T14:04:56Z</updated>
    <published>2025-09-16T13:53:39Z</published>
    <summary type="html">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데미안의 문장을 상기시켜보자. 그 말에는 결과라는 것이 없다. 알을 깨부수고 태어났는지, 알 안에 갇혀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투쟁한다는 행위의 언어로만 말해진다. 이것은 주목 할 만한 이야기이다. 알을 깨지 못하는 병아리들을 위해 닭들은 쪼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알을 깨지 못하고 방치되어 썩어가는 병아리들도 생겨난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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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본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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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5T23:57:02Z</updated>
    <published>2025-09-15T23:56:49Z</published>
    <summary type="html">20세기 초반의 논리실증주의자들과 영국 경험론 전통의 철학자들이 하던 말들이 있다. 학문이나 철학이나 뗏목과 같아서 시대에 따라 유지 보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은 어렵지만, 내게 이런 식으로 다가온다. 유기적인 발전, 현실과 관계하여 뻗어나가는 사상의 모험. 이들의 문체는 지금의 미국과 닮아 있다. 그들을 묶어서 영미철학이라고 부르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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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재능에 대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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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5T23:15:17Z</updated>
    <published>2025-09-15T10:56:24Z</published>
    <summary type="html">말에 대한 믿음을 나는 고전주의라 부른다. 말에 대한 의심은 낭만주의라 부른다. 고전주의자는 미래를 믿는다. 낭만주의자는 자신이 실망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욕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는 세상이 말로 표현될 수 없으며 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amp;lt;1967년 폴오스터 산문집&amp;gt; 김석희 민승남 이종인 황보석 옮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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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중생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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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4T21:00:35Z</updated>
    <published>2025-09-14T21:00:35Z</published>
    <summary type="html">새벽의 결연함은 사람을 어떨 때는 사람을 일깨운다. 자정이 되어 갈 무렵, 자갈을 흐트리며 걸어오는 사람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호롱불이 부유하는 영혼들을 인도하듯이 길을 비추고, 스님의 도포 자락이 차락 차락 흔들리며 자갈들을 이리저리 굴린다. 그의 반질반질한 머리 위는 땀 구슬들이 맺혀있다. 등잔燈盞의 빛이 한 여름의 무더위를 가중시키고 있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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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무 것도 하지 않기 - 깊은게 마냥 우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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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3T23:21:30Z</updated>
    <published>2025-09-13T23:21:30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인생을 단순화하면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깎는 것과 넓히는 것. 이것은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자면 실력과 새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깎는 것은 사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연필을 깎을 때 의식해서 깎는다. 바늘 끝에 분자 단위까지  갈아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의식을 첨예하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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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음악의 재능 - 유쾌하던 진지하던 넘어서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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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2T15:17:29Z</updated>
    <published>2025-09-12T15:17:29Z</published>
    <summary type="html">술 같은거 마셔도 인생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듯이 모든 일에 실효를 따질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취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술 한잔에 잊을 수 있는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은 꼬여버릴 수도 있다. 추운 곳을 나기위해 보드카를 마셔야 했던 러시아인들을 제외하고는 술에 대한 실용성을 따져보지는 않았던게 아닐까. 실용</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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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누구에게나 하는 말이잖아 - 귀여움의 가면을 쓰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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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2T12:31:24Z</updated>
    <published>2025-09-12T11:43:06Z</published>
    <summary type="html">타카네노 나데시코라는 일본 여자 아이돌 그룹이 있다. 그들의 노래 중 '멜랑콜릭 허니'에서 '귀엽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줘, 누구나 하는 말이잖아.' 라는 가사가 있다. 일본어 카와이는 남자가 여자들에게 주로 쓰는 말 같아 보였다. 귀엽다는 말이 직접적이고 예쁘다를 돌려말하는 느낌이랄까. '키레'가 아름다움의 표현이라면, 카와이는 일상적이고도 여자친구에게</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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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환상특급 - 내가 발을 딛는 바로 이 곳이 꿈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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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1T15:24:28Z</updated>
    <published>2025-09-11T15:24:2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응, 나 역시 아직 도락에 실증이 난 것은 아니야. 하지만 놀러 나가 본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는가. 나는 이제 흔해 빠진 거리 여자들이나 술맛 같은 것은 그저 역겹기만 해. 참으로 유쾌한 일이 있기만 하다면야 언제라도 함께 어울려 놀러 나가겠지만......&amp;quot; 귀공자의 시선으로 보면 일 년 내내 거기서 거기인 유곽 여자에 빠져 천편일률적인 방탕을 구가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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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설의 풍경 - 그냥 그려낼 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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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0T23:15:42Z</updated>
    <published>2025-09-10T23:15:42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림이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우리의 생각을 그리는게 아닐까. 철학의 모든 문제는 사실 심신이원론의 문제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곧 실재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 질문은 현대 뇌과학과도 연결되는 질문이다. 감각질의 문제. 그리고 영국 경험주의자들과 데카르트를 이어서 현대 과학에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큰 질문이다. 그것이 언제쯤 밝혀질 지는 요원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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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생의 주사위 - 생각해보면 괴로울 이유가 없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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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0T11:04:35Z</updated>
    <published>2025-09-10T11:04:35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quot;서양 책인가요? 어려운 것이 쓰여 있겠네요.&amp;quot; &amp;quot;아니......&amp;quot; &amp;quot;그럼 뭐가 쓰여 있는데요?&amp;quot; &amp;quot;글쎼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amp;quot; &amp;quot;호호호호. 그래서 공부하시는 거예요?&amp;quot; &amp;quot;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책상에 이렇게 펼치고, 펼쳐진 데를 적당히 읽고 있는 겁니다.&amp;quot; &amp;quot; 그래, 재미있나요? &amp;quot;그게 재미있습니다.&amp;quot; &amp;quot;왜요?&amp;quot; &amp;quot;왜라니요, 소설 같은 건 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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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텍스트의 절망 - 좌절하는 언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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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9T23:40:45Z</updated>
    <published>2025-09-09T23:40:45Z</published>
    <summary type="html">'텍스트를 읽지 마라' 이 글은 자기모순이다. 러셀의 이발사 마냥 자기모순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읽기 전에 내용을 파악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명령조의 이 문구는 우리에게 지시한다. 그러나 읽는 순간 바로 우리의 지령은 좌절된다. 소설은 사실 이런 자기모순에 의한 것 같다. 텍스트는 우리에게 지시한다. 감정이든, 이성이든 어디론가 향하게 한다. 그러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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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머니의 마음으로 - 이성과 감정을 초월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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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8T22:07:35Z</updated>
    <published>2025-09-08T22:07:35Z</published>
    <summary type="html">Message 메세지 - 오 년 전, 스칸디나비아 번역자가 내게 &amp;lt;이별의 왈츠&amp;gt;를 펴낸 출판사 사장이 이 책의 출간을 무척 망설였다고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amp;quot;여기 사람들은 모두 좌파거든요. 당신의 메세지를 좋아하지 않아요.&amp;quot; &amp;quot;무슨 메세지 말인가요?&amp;quot; &amp;quot;낙태를 반대하는 소설 아닌가요?&amp;quot; 물론 아니다. 사실 마음속 깊이 나는 낙태를 찬성할 뿐 아니라 낙</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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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해석이 먼저냐, 힘이 먼저냐 - 미시적 영원회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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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7T20:17:50Z</updated>
    <published>2025-09-07T19:56:52Z</published>
    <summary type="html">그런데 바울은 부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의 부활을 상상하듯 그렇게 생각한다. 저마다 특별한 영광과 함께 천상적인 육신과 지상적인 육신이 있다. 불후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자연적 몸이 있다면 그에게는 정신적 몸도 있다. 첫 번째 몸이 자연적 몸이고, 그 다음이 정신적 몸이다. 자연적 몸은 지상적 몸의 형상이고, 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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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안해, 나는 지쳤어 - 그렇다고 전부 포기할거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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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7T16:03:50Z</updated>
    <published>2025-09-07T15:55:10Z</published>
    <summary type="html">Kitsch 키치 (중략)... 프랑스에서는 오락을 진정한 예술과 대립시킨다. 가벼운 예술 대對 무게 있는 예술로. 마이너 예술 대 메이저 예술로. 하지만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벨몽도의 범죄 영화에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 영화들은 정직하며, 아무것도 가장하지 않는다! 반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바랜 장밋</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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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 - 인간의 중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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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7T10:15:19Z</updated>
    <published>2025-09-07T10:15:19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를 불편하게 하는 단어들이 있다. 하나의 예로 '형이상학形而上學' 같은 말이다. 내 글을 조금 보았던 독자라면 철학을 이야기 할 때 이 단어를 거리낌 없이 쓰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쓰는데 생각보다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말을 쓰는 이유는, 사실 이런 불쾌한 감정을 초월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온다. 이 단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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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후회 - 진실된 후회는 없는지도 모르겠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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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6T17:22:2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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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후회란 사실 반추 이상의 가치는 없다. 이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많다. 부엌의 물이 제대로 잠겼나 살피는 강박증 환자 처럼 돌아보는 것을 그만두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이 단지 청량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찜찜함이기에, 지나친 점검으로 인생이 피로해진다. 나의 후회란 청소년기 운동을 많이 해놓을걸, 잠을 많이 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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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실용주의 문화론 - 평양냉면의 정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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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5T20:16:52Z</updated>
    <published>2025-09-05T20:16:52Z</published>
    <summary type="html">문화적으로 평이하다는게 무엇을 말하는가. 사실 그런건 없는지도 모른다고 일축할 말인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걸 어렴풋이 느끼는 것 같다. 현재 예전 제 3세계라 불리웠던 국가들의 문학이 서점에 번역되어 올라온다. 그것들을 서서 가끔 읽다 보면 이국적인 맛에 가끔은 부러워 질 때가 있다. 과거 철학과 교수님이랑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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