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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아르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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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기독교 정신과 철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영어 교육(학원 운영)과 홈스쿨링(자녀교육)을 실천하는 진보적 사상가 입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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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5-18T10:37:5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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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이 끝낼 것 같을 때, 지혜가 말을 건넨다 - 사무엘하 20:14-2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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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8T01:00:20Z</updated>
    <published>2026-04-18T01:00:20Z</published>
    <summary type="html">세바의 반란은 단순한 소동이 아니었다.그것은 가까스로 봉합되려 하던 공동체의 상처를 다시 찢는 일이었다. 압살롬의 반역이 지나간 뒤에도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여전히 서운함과 긴장이 남아 있었다. 세바는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다윗과 상관없다고 외치며 사람들을 흩어 놓고, 상처 입은 감정을 반란의 연료로 삼았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공동체 안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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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음의 쓴뿌리를 다스린다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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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22:00:20Z</updated>
    <published>2026-04-17T22:00:20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즘 나는 &amp;ldquo;마음의 쓴뿌리&amp;rdquo;라는 표현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이 말은 단순히 기분이 상했다는 정도를 넘어선다. 그것은 어떤 사건 이후 내면 깊은 곳에 남아, 반복해서 생각을 끌어당기고 감정을 흔들며,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의 결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어떤 힘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작은 상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것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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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열은 상처를 먹고 자라고, 권력은 피를 부른다 - 사무엘하 20:1-13 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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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01:40:09Z</updated>
    <published>2026-04-17T01:40:09Z</published>
    <summary type="html">압살롬의 반역은 끝났지만, 공동체의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다윗은 왕궁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무너진 나라를 다시 하나로 묶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냉정하게 보여 준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상처가 곧바로 봉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큰 혼란 뒤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은 서운함과 불신과 분노가 더 쉽게 터져 나온다. 사무엘하 20</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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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면의 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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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01:23:00Z</updated>
    <published>2026-04-17T01:23:00Z</published>
    <summary type="html">성경은 인간의 삶을 전쟁으로 묘사한다.이 비유는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을 실제로 살아 본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정확한 표현에 가깝다. 성경이 말하는 전쟁은 대개 바깥의 칼과 창보다,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더 집요하고 치열한 싸움을 가리킨다. 그것은 선과 악의 싸움이며, 거룩과 죄의 싸움이고, 진실과 자기기만의 싸움이다. 신앙인의 전쟁터는 세상&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t1sdvY55pjSQca2Dc19hpjL3MzQ"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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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함께 건넜지만 함께 하나 되지는 못했다 - 사무엘하 19:40-43 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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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6T01:03:11Z</updated>
    <published>2026-04-16T01:03:11Z</published>
    <summary type="html">왕은 돌아왔다.요단강을 건너 다시 자기 자리로 향한다. 바르실래가 천거한 김함도 함께하고, 유다 백성도 왕을 호위하며, 이스라엘 사람들도 일부 함께한다. 겉으로 보면 회복의 장면이다. 반역은 지나갔고, 왕은 돌아오며, 공동체는 다시 질서를 찾는 듯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짧은 장면 속에서 불편한 진실 하나를 보여 준다. 왕은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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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장 큰 기적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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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5T22:00:36Z</updated>
    <published>2026-04-15T22:00:36Z</published>
    <summary type="html">신자들은 기적을 원한다.하나님의 음성을 더 직접적이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듣고 싶어 한다. 눈에 보이는 표적, 귀에 들리는 음성, 상식을 넘어서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기대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우리는 초월을 갈망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것이 가장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오기를 원한다.과연 무엇이 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qflv4b23hlqfN--ESKKkZGiKcq0"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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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은혜를 아는 사람의 얼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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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5T02:00:14Z</updated>
    <published>2026-04-15T02:00:14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무엘하 19장 24절부터 39절까지는 겉으로 보면 조용한 본문이다.전쟁이 끝난 뒤의 장면이고, 왕이 돌아오는 길목에서 몇몇 사람들이 왕을 맞이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본문은 단순한 귀환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격동의 역사 한복판에서, 사람의 진짜 품성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큰 사건이 사람의 본색을 드러내듯, 왕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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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뜻을 듣는다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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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4T22:00:36Z</updated>
    <published>2026-04-14T22:00:36Z</published>
    <summary type="html">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분별하며, 어떻게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신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는 것은 종교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선택의 기준에 관&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y2ar2LLUieuW_ZdgpE91k7Np_Ps"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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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긴 뒤에 시작되는 더 어려운 일 - 사무엘하 19:9-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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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4T03:41:06Z</updated>
    <published>2026-04-14T02:41:30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쟁은 끝났지만, 공동체의 상처는 끝나지 않았다.압살롬은 죽었고, 다윗은 돌아온다. 겉으로 보면 반역은 진압되었고 왕권은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더 어려운 문제를 꺼내 놓는다. 칼로 전쟁을 끝내는 것과, 갈라진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묶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이다. 적을 이기는 일보다, 자기 편이었던 사람들과 다시 함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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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통의 삼중고와 인간의 지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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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15:00:19Z</updated>
    <published>2026-04-13T15:00: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인간의 육신은 참으로 연약하다.그리고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그 깊은 원인을 따라 올라가 보면 결국 이 연약한 육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인간의 고통은 단순하지 않다.나는 그것을 &amp;lsquo;고통의 삼중고&amp;rsquo;라고 부르고 싶다.첫째는 육체의 고통이다.질병, 피로, 통증, 노화.이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lm1orjOdJ7W-o3shuLLagUAlUuE"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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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울어야 할 사람과 일어나야 할 사람 - 사무엘하 19: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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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05:55:25Z</updated>
    <published>2026-04-13T05:55:25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쟁은 끝났지만, 다윗의 내면은 끝나지 않았다.압살롬은 죽었고, 반역은 진압되었으며, 왕권은 지켜졌다. 그러나 승리의 날에 다윗은 무너져 있다. 왕은 살아남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잃었다. 성경은 여기서 승전의 환호를 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비극을 보여 준다. 공적인 승리가 사적인 상실을 지워 주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사적인 상실이 공</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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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 속에서 검증되는 진리 - 존 듀이의 『철학의 개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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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2T21:45:24Z</updated>
    <published>2026-04-12T21:45:24Z</published>
    <summary type="html">존 듀이의 『철학의 개조』를 마지막으로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철학은 책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삶 속에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듀이의 철학을 비유하자면, 나는 그것을 서양의 실학에 가깝다고 느낀다.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향해 나아가는 사유, 관념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검증되는 지식을 추구하는 태도. 그것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91JkMtS0jAj06UNsfX-gv8Dk53k"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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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활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  고린도전서 15:12&amp;ndash;19 주일설교 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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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2T07:13:44Z</updated>
    <published>2026-04-12T07:13:44Z</published>
    <summary type="html">기독교 신앙은 수많은 가르침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질문이 있다.&amp;ldquo;그리스도는 정말 다시 살아나셨는가.&amp;rdquo;사도 바울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오히려 정면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매우 단순하면서도 날카로운 논리로 말한다.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고,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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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실을 전하는 사람의 무게 -  사무엘하 18:28&amp;ndash;33을 묵상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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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1T01:05:39Z</updated>
    <published>2026-04-11T01:05:39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람은 소식을 전할 때 자신도 모르게 두 가지 기준을 따라 움직인다.하나는 얼마나 빨리 전할 것인가,다른 하나는 얼마나 잘 전할 것인가이다.우리는 보통 첫 번째에 더 마음을 둔다.빠르게, 정확하게, 남보다 먼저. 그것이 좋은 전령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조용히 묻는다.정말로 중요한 것은 속도인가, 아니면 무게를 감당하는 능</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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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한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다 -  하나님 사랑의 증거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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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22:00:14Z</updated>
    <published>2026-04-10T22:00:14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은 단지 감정이나 말에 머무르지 않는다.사랑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흘러간다.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싶고,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고 싶어 한다.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선택의 방향으로 드러난다.이 질문 앞에서,&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K1hXm6GWrcBz7GqSXSI_IMx20U8"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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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좋은 소식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  사무엘하 18:19&amp;ndash;27을 묵상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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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13:08:45Z</updated>
    <published>2026-04-10T13:08:45Z</published>
    <summary type="html">우리는 종종 &amp;ldquo;좋은 소식은 빨리 전해야 한다&amp;rdquo;고 생각한다.기쁜 일은 나누면 더 커지고, 승리는 알리면 더 빛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묻는다.그 소식이 정말 &amp;lsquo;모든 사람에게&amp;rsquo; 좋은 소식인가.압살롬과의 전쟁은 끝났다.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한 승리다. 반란은 진압되었고, 왕권은 다시 안정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그 사실을 왕</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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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견된 것인가, 만들어진 것인가 - 신앙에 대한 실용주의적 변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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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22:00:28Z</updated>
    <published>2026-04-09T22:00:28Z</published>
    <summary type="html">무신론자이면서 철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신이라는 개념, 종교라는 체계는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낸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인류의 정신이 발달하는 과정 속에서, 문화적 특수성과 결합되어 형성된 결과일 뿐이라고.나는 이 주장 앞에서 즉각적으로 반박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한다.특히 그들이 사용하는&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XUoWxn0MldR9O4UjWN1WB-si97U"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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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붙잡은 것이 나를 붙든다 - 사무엘하 18:9&amp;ndash;18을 묵상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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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12:00:08Z</updated>
    <published>2026-04-09T12:00:08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람은 무엇인가를 붙잡고 살아간다.어떤 이는 명예를 붙잡고, 어떤 이는 관계를 붙잡고, 어떤 이는 자신의 능력이나 외모를 붙잡는다. 그것이 자신을 설명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때때로 묻는다.&amp;ldquo;네가 붙잡고 있는 그것이, 결국 너를 붙잡는 것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amp;rdquo;압살롬의 마지막 장면은 그 질문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그는 노새를</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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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뜻밖의 손, 보이지 않는 손 - 사무엘하 17:24&amp;ndash;18:8을 묵상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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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03:53:04Z</updated>
    <published>2026-04-09T03:53:04Z</published>
    <summary type="html">전쟁은 힘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사람들은 칼의 날과 병력의 수를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그 이면에 있는 더 깊은 흐름을 보여 준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투이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 엮어 가시는 보이지 않는 질서다.다윗은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에 이른다.&amp;lsquo;두 진영&amp;rsquo;이라는 뜻을 가진 그곳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지금 그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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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회개 이후에도 남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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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9T01:44:47Z</updated>
    <published>2026-04-09T01:44:47Z</published>
    <summary type="html">사무엘하를 읽다 보면 한 가지 불편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다윗은 분명 회개했다. 그것도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침상이 눈물로 젖을 정도의 깊은 회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후 삶은 이전과 같지 않다. 오히려 그의 판단은 흔들리고, 그의 가정은 무너지고, 그의 왕국은 균열을 겪는다.이것은 우리에게 묻는다.회개는 과거를 완전히 지워 버리는 &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TWU%2Fimage%2F70QfShaUvAd_GtI0C1P9JlpYeL4"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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