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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ay On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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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솔직히 말해서 타성에 젖기 싫습니다.</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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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4-10-31T09:32:3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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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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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7T15:25:18Z</updated>
    <published>2026-02-17T15:25:18Z</published>
    <summary type="html">&amp;lt;해뜰날&amp;gt;(1975) - 송대관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나는 가끔 &amp;lsquo;희망&amp;rsquo;이라는 말이 싫어진다. 너무&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ne7%2Fimage%2F-KlDyR4igZI96oFj_FUH-wZ6HLo.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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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적당히 븅신처럼 살자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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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24T05:54:06Z</updated>
    <published>2026-01-24T05:54:06Z</published>
    <summary type="html">역사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 말이다. 그들은 모두 큰일을 하기 전까지 살아있었다는 것.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간과한다. 강해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 공룡은 강했지만 멸종했고, 바퀴벌레는 약하지만 살아남았다. 역사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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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의 본성과 좋은 삶에 대하여 - 철학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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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5T14:59:33Z</updated>
    <published>2026-01-15T14:59:33Z</published>
    <summary type="html">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답하려 한 철학자들은 많다. 소피스트들의 인간 중심주의적 인간관,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자아(ego cogitans), 흄의 경험론적 인간학 등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 본성을 규정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인간학에 대한 고찰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만 여러 철학자의 대답이 곧 궁극의 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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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은 어떻게 설계되었는가 - 철학#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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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7T05:36:22Z</updated>
    <published>2026-01-14T12:19:01Z</published>
    <summary type="html">현대사회에서 가치 있는 삶은 부 또는 명예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데에 있다고 간주한다. 사람들은 더 좋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성취하려 한다. 하지만 성취를 실현하기 전에 자신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어야 하며, 어떤 마음의 습성을 가졌는지, 어떤 사고방식과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을 파악한 후 현대</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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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은 바둑과 같다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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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9T13:39:25Z</updated>
    <published>2026-01-09T13:38:51Z</published>
    <summary type="html">시야를 넓히는 순간, 판이 보인다 바둑을 배우면서 제일 어려웠던 게 '한 곳에서 눈을 떼는 것'이었다. 상대가 내 돌을 치러 오면 거기만 보인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 같고, 이 돌만 살리면 판이 풀릴 것 같다. 근데 그렇게 부분전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판 전체를 잃고 있다. 복기를 하면 명확하다. 내가 진 판들은 대부분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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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끈기인가, 미련인가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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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15:19:23Z</updated>
    <published>2026-01-08T15:18:39Z</published>
    <summary type="html">요즘 계속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amp;quot;지금 하고 있는 일 계속 밀고 나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방향을 틀었어야 했던 걸까?&amp;quot;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부터 많이 겼었다. 예를 들면 수학문제를 풀 때 아니다 싶으면 푸는 설계를 빠르게 바꾸던가 아니면 이제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끝까지 우직하게 식 전개를 해나가던가 둘 중 하나의 선택지였다. 요</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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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해 다짐 - 대충 살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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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9T00:26:32Z</updated>
    <published>2026-01-01T16:27:20Z</published>
    <summary type="html">25년을 회고해 보니 몇 가지 느낀 점이 좀 있다. 진작에 좀 썼어야 했는데 게을러서 글쓰기를 잘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글은 좀 다듬어서 쓰려고, 좀 더 멋있게 쓰려고 하다가 미루는 경향이 좀 있었다.. 앞으로는 그냥 대충 내 생각 적어내려고 한다. 나만의 공간은 아니긴 한데 뭐 다른 사람이 봐도 좋을 내용들로 써보려고 한다.  25년 1월 1일에는 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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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좀 꺼드럭대라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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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8T16:17:44Z</updated>
    <published>2025-12-28T16:17:44Z</published>
    <summary type="html">한국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 아니라 '성장의 오만함'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한국 사회에서 이 속담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신입생에게도,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루키에게도, 심지어 자신의 분야에서 10년을 갈고닦은 전문가에게도, 우리는 무조건적인 겸손을 미덕으로 강요한다. 하지만 이 오래된 농경 사회의 격언을 현대의 '성장 방정식'에</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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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quot;일단 중립기어 박습니다.&amp;quot;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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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07T08:03:19Z</updated>
    <published>2025-12-07T08:03:19Z</published>
    <summary type="html">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온라인 공간을 잠식하는 익숙한 문장이 있다. &amp;ldquo;일단 중립기어 박습니다.&amp;rdquo; 이 말은 겉으로만 보면 신중함과 이성의 언어처럼 들린다. 감정에 휩쓸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충분한 정보가 모일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합리적인 선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초기 이 표현은 감정적 마녀사냥을 경계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서 긍정적 역할을</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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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주에서 나는 - 우주론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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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12-28T16:35:11Z</updated>
    <published>2025-11-07T16:02:06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우주의 시작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쌓일수록, 시작을 찾는 과정은 점점 더 미로처럼 느껴진다. 오늘 이 글은 이전까지의 사유 위에 끝이 보이지 않는 다음 질문을 던지는 시도다. 빅뱅이 신화이고 반복하는 우주가 진실이라면, 나라는 개인은 이 영원의 회전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한 번의 흔들림으로 끝나는 세계가 아니라 무수한</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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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주의 시작은 없다. - 우주론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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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2-17T15:27:08Z</updated>
    <published>2025-11-07T15:51:38Z</published>
    <summary type="html">시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우주에 던지는 질문 끝에서 마주하는 결론은 그렇다. 우리는 늘 사건의 기원, 모든 것의 첫 장면에 집착한다. &amp;ldquo;언제 우주가 시작됐나?&amp;rdquo; &amp;ldquo;무엇이 최초의 불꽃을 만들었나?&amp;rdquo; 하지만 물리학의 시선은 점점 더 &amp;lsquo;영원의 반복&amp;rsquo;이라는 기묘한 풍경 쪽으로 기울고 있다.  빅뱅이라는 신화, 그리고 그 너머 중학교 때 나는 &amp;lsquo;빅뱅(&lt;img src= "https://img1.kakao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kakao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hne7%2Fimage%2FqiBSJaBpnxxtu2vxxMECbzvUELs.jpg" width="500" /&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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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자의 집 - 오비탈 - 전자의 물리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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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1T17:33:42Z</updated>
    <published>2025-09-21T17:33:42Z</published>
    <summary type="html">행성 궤도에서 확률 구름으로 초기 원자 모델은 전자가 행성처럼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원자핵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명확한 궤도를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현대 원자 모형은 오비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오비탈은 전자가 지나다니는 길이 아닙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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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양자역학적 전자의 움직임 - 전자의 물리#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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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1T17:28:46Z</updated>
    <published>2025-09-21T17:28:46Z</published>
    <summary type="html">고전적 입자의 종말 1화에서 우리는 전자를 당구공 같은 입자로 생각했습니다. 이 고전적 모델은 거시 세계의 전기 현상을 설명하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하지만 전자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이 모델은 한계를 보입니다.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의 법칙은 전자가 우리의 상식과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양자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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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자는 어떻게 움직일까? - 전자의 물리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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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21T17:21:34Z</updated>
    <published>2025-09-21T17:19:09Z</published>
    <summary type="html">보이지 않는 흐름, 전류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기 기기들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강물,&amp;nbsp;전류&amp;nbsp;덕분에 살아 숨 쉽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숙한 물의 흐름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거대한 펌프(전지)가 강력한 압력(전압)으로 물을 밀어내면, 이 물방울들(전자)은 파이프(전선)를 따라 흐르며 그 힘으로 물레방아(전구)를 힘차게 돌립니</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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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신에게 진리란 무엇인가요? - 철학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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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19T17:18:36Z</updated>
    <published>2025-09-19T17:15:17Z</published>
    <summary type="html">진리를 묻는 질문 앞에서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진리가 &amp;ldquo;있다&amp;rdquo;고 단정하기보다 어떻게 우리에게 &amp;ldquo;온다&amp;rdquo;는 점이다. 진리는 고정된 물성이라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 다시 말해 세계와 인간의 마주침에서 피어나는 &amp;lsquo;드러남&amp;rsquo;의 순간이다. 먼저 고전적 정의들을 돌아본다.        대응 관점은 문장과 세계의 상태가 일치할 때 참이라 말한다. 그러나</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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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테니스의 물리학 - 운동의 과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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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5T16:48:37Z</updated>
    <published>2025-09-05T16:48:37Z</published>
    <summary type="html">나는 물리학 대학원생이다. 실험실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나는 테니스 코트로 향한다. 라켓을 쥐고 공을 치는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테니스 조차 과학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테니스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부터 양자역학의 미세한 뉘앙스까지 모든 것이 공 한 알과 라켓 한 자루에 압축되어 있다. 오늘은 이 '테니스의 물리학</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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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떤 이야기를 할까 - feat. 대학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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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5T04:59:49Z</updated>
    <published>2025-07-26T15:34:37Z</published>
    <summary type="html">물리학과를 졸업했지만 물리가 싫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표정을 짓는다. 눈썹이 미간 한복판에서 만나고, 입꼬리는 묘하게 비틀어진다. 마치 &amp;quot;치킨집 사장이 치킨을 안 먹는다&amp;quot;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이다. 하지만 이게 내 이야기다. 그리고 아마 많은 물리학과 학생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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